메뉴 건너뛰기

close

<그것은 꿈이었을까> 책표지
<그것은 꿈이었을까> 책표지 ⓒ 현대문학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술에 취한 듯한 느낌,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착각의 순간에 인생은 허무하기만 하고 우습기만 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술을 마시면서, 혹은 꿈을 꾸면서 말도 안 되는 착각의 세계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인생을 이처럼 '꿈'을 꾸듯이 묘사한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현상과 사실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이기도 하고 허구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는 꿈과 같은 환상의 세계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얼토당토않은 인물들의 경험과 이야기 속에 삶의 의미 또한 녹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 가는 길인데 언젠가 와봤던 곳 같고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 어딘지 낯이 익고, 그래서 기억해내려다가 끝내는 포기했던 일이 있다. 꿈에서 본 걸까.

꿈은 인생의 다른 버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현실에서도 살고 있고 꿈 속에서도 살아간다. 꿈 속의 나에게는 꿈이 즉 현실이므로 꿈 속의 꿈이 또 존재하고 말이다. 삶은 그렇게 겹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 삶 속에 존재하는 꿈, 꿈 속에 존재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삶은 곧 꿈이고 꿈은 곧 삶이라는 사실은 옛날 장자가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꿈꾸는 세계가 있으며 또한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에 삶은 꿈처럼 가볍고 허무하고 엉뚱한 것이기도 하다.

비틀즈의 노래들을 가지고 소제목과 부제를 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 또한 꿈을 꾸는 듯한 사건 전개에 도움이 된다. 비틀즈만의 독특한 시적 가사들은 노래가 아닌 삶이 되어 글 속에 녹아 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있으며 가능하지 않은 일도 있고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러한 일들만 모아 놓은 듯한 책 속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이게 주인공이 꾸는 꿈일까, 아니면 진짜 그가 경험한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도록 한다. 의사면허시험을 치르기 위해 깊은 산 속의 고시원을 찾는 주인공과 친구 '진'은 우연히 독특한 의상과 멍한 눈빛의 한 여인을 만난다.

상처와 아픔을 갖고 있는 이 여인의 묘한 매력에 이끌리는 주인공은 꿈 속에서 그녀를 보고 만난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우연하게 그녀를 외딴 숲에서 만나기도 하고 또 잃기도 한다. 그녀가 말하는 과거는 아픔과 상처로 가득하고 그 이야기 또한 꿈에서 들은 것인지 현실에서 들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기만 하다.

이런 독특한 경험 끝에 현실로 돌아와 안과 의사가 된 주인공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다시 병원으로 찾아온 그녀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실재하는지 허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자신 또한 혼돈 속에 빠진다. 그리고는 직업을 그만두고 늘 꿈꾸어 오던 소설 카프카의 <성>의 배경이 된 프라하를 찾아간다.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는 여자들도 이상하기만 하다. 그가 찾아간 클럽의 춤추는 여인과 남자들. 그리고 갑자기 걸려온 전화와 다시 만나는 두 여자. 이들이 밝히는 과거 이야기는 동성애자로서의 삶과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아픔들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또한 거짓인지 진실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사건 전개 속에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 꿈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사색이다.

"어쩐지 이 모든 것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삶의 순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내 자신의 삶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중략) 취해서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은 그 사람의 인생에 속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게 아닐까."

"꿈속의 인생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이곳의 인생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인생을 해석하는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 꿈에서는 발목을 잠시 끊어서 갖고 돌아다닐 수 있고 진의 말처럼 누이나 어머니와도 잤다. 사람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했다.

꿈은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만들어진, 이곳 인생을 변형시킨 부수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세계였다. 꿈에서는 거리라는 것도 성립되지 않고 사건이 시간 순으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꿈 속에 또 꿈이 있고 다시 그 속에 꿈이 있었다. 죽음도 끝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현실에서 살아가듯 꿈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깨어보면 모든 것은 조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 꿈과 현실을 뒤섞어 놓았다."


저자는 꿈과 현실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사건 전개를 통해 인간이 꾸는 꿈들의 허무함과 현실의 한계성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 주인공의 말처럼 인간은 '환각을 하나 마련해두고 있으면 쓸모 없는 외로움이나 질문 따위는 쓰레기처럼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서 폐기되는' 것이다.

이런 도피를 통해 인간은 자기의 현실 속에서 그럭저럭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에 엉뚱한 꿈과 망상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면서 자기의 현실 속에서 그럭저럭 건전하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런 꿈이 없다면 세상만사 힘든 일들을 어찌 극복할 수 있으랴.

하지만 지나치게 꿈만 꾸는 것은 금물이다. 저자는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 진의 입을 통해 인간이 꾸는 꿈이 필요하긴 하지만 현실에 머무를 때에 그것은 진정으로 가치 있음을 드러낸다.

"인생이 기차 여행이라면 네가 꾸는 꿈은 차창 밖을 스쳐 가는 수많은 풍경 가운데 하나라구. 조금 매혹적인 풍경이라고 해서 역도 아닌 곳에 굳이 기차를 세워달라고 할 필요 있어? 잠깐 딴 생각이나 하면서 그냥 지나쳐 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갖고. 그러다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모든 걸 잃게 돼."

꿈을 꾸며 사는 인간. 그것이 지나치거나 과대망상이 아닌 한 꿈은 우리의 빡빡한 삶을 부드럽게 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진의 말처럼 꿈은 인생이라는 기차 여행에서 차창 밖을 지나가는 수많은 풍경 중 하나일 뿐이다. 주인공과 같이 꿈 속에 젖어 지내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주인공의 말처럼 꿈을 꾸지 않는다면 떨어질 곳도 날아오를 곳도 없다. 꿈을 꾸는 뇌가 있는 한, 인간은 떨어지는 순간의 아찔함을 느끼기도 하고 날아오르는 행복감을 얻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런 뇌의 한 부분에 대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순간 나를 꿈꾸게 하여 주어 고맙다고,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2008)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