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실은 한나라당은 오른쪽으로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더 가면 절벽이 있을 뿐이다. 절벽 밑에는 자민련이, 벼랑 끝에는 정형근이 있다."

▲ 이날 노회찬 의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학생들의 눈길을 끌었다.
ⓒ 박수호
최근 소모적인 '좌파'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진정한 좌파임을 자임하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대학강단에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16일 오후 5시,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 주최로 정경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번 강연에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평소 촌철 살인의 말솜씨에다 인터넷에 나도는 어록 등 네티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에 학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막걸리집, 최루탄 가스, 담장으로 기억되던 대학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모교(정외과 졸업)를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고 운을 뗀 그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투표권 주어지지 않아 못한 분 많으시죠?"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공무담임권, 중앙선관위 자원봉사자 자격도 만 18세 이상으로 되어 있는데 유독 투표연령만 20세 이상으로 정해진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으로 본격적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현행법으로는 4월 총선의 경우 제도권 내에서 정식으로 입학한 대학교 1학년 학생은 물론 2학년 학생의 절반 이상이 투표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이들을 정부가 '혁명할 능력은 있어도 구청장 뽑을 능력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 젊은이들의 투표를 제한하는 저변에는 '밀실'과 '사과상자'에는 자신 있는 '그분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해 좌중을 한바탕 웃음 속으로 몰아넣었다.

▲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로 강의실은 후끈후끈했다.
ⓒ 박수호
또한 최근 파업을 선언한 '전공노'와 관련해서는 경제가 악화일로에 있는 데 비해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가진 공무원들의 행보에 국민감정이 '싸늘'함을 인정하면서도, 1996년 OECD가입 당시 핵심이행 사항이었던 공무원노조에 대한 인정이 제한적으로 이뤄져온 데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보다 무게를 실었다.

1988년과 2002년에 거듭 국회에 상정되었던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에 관한 법안제출자 명단에 노무현, 이인제, 이해찬, 이부영, 김원기, 천정배 등의 이름이 올라 있지만 현 사태에 대해서 누구 하나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오늘날 경제 성장이 이른바 경제 5단체로 불리는 재계만 부각하고 노동자는 '봄마다 경제를 교란시키는 집단'으로 호도하는 시각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세계 26번째 인구를 가진 나라가 세계 12번째 경제규모인 현실에서 더 참아 몇 번째가 된다는 것인가"며 반문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유세' 역시 "평소 암소갈비 먹던 사람이 아무 것도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그보다 조금 싼 소불고기 먹으면서 못 먹는 사람에게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물론 암소갈비에서 소불고기로 격하되는 아픔이 있겠지만,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 갈비대 잡고 있는 것이 더 비인간적"이라고 말했다.

▲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는 노 의원
ⓒ 박수호
그의 정치기상도도 눈길을 끌었다. 44년만에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운 민주노동당이 점차, 한나라당이 몰락한 가운데 우경화된 열린우리당과 정책과 이념을 두고 다툴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2년 민주노동당 집권도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번 정형근 의원과의 1:1 토론에서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말해 객석에서는 또 한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이번 17대 총선을 지역감정의 시대를 넘어 정책과 이념 대결이라는 한층 성숙한 정치체계로 진일보하는 과도기라고 진단하며 따라서 지금의 젊은이들의 존재가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헌재의 판결을 수용해야 한다는 민주노동당의 당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학생에게 비록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갖다댄 헌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행정수도 문제의 경우에는 정략적 접근에 앞서 '과학적' 접근이 우선된다고 답했다.

실효성이 없는 양양, 무안 등 만성 적자인 공항에 대해서도 혈세를 낭비하면서 4~5년간 타당성 검토를 거쳤다는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2002년 대선 공약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 대선이 있는 2007년에 첫 삽을 뜨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략적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수도권 반경 150km안에 3000만명의 인구가 살게 되는 '메갈로폴리스'가 등장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노 대통령이 미국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있는가'라는 학생의 질문에 "너무 겁먹지 말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특정국가와의 군사적 동맹 관계가 향후 다른 나라와의 긴장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풀고 중·러·일 등 이웃나라와 다자간 평화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영구평화의 방법"이라고 답변했다.

지금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진보의 기로에 서 있는 때이며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며 강연을 마무리한 그는 학생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이끌어냈다.

학생들은 1시간 30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일부는 서서, 일부는 계단에 앉아서 노 의원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서진원(26)씨는 "민노당의 선명한 정책들을 통해 내 성향을 알 수 있었다"며 "아울러 시원시원한 그의 입담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