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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밖 성문 바로 옆에 김 할아버지의 집이 있다.
낙안읍성 밖 성문 바로 옆에 김 할아버지의 집이 있다. ⓒ 서정일
순천시 낙안면엔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민속마을로 지정된 관광지가 있다. 66세대가 성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을 중심으로 일정거리 밖에 있는 초가집까지 포함하면 총 91세대가 된다.

성곽 정문 바로 옆 428번지, 성곽의 갈 길을 막기라도 하듯 'ㄷ'자로 성곽 속에 끼어 있는 김순택(72)·최성엽(70) 부부의 집. 열 대 여섯 평 정도 되는 초가집에 자그마한 헛간과 뒷간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 농가다. 성곽을 담 삼아 기댄 채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의 집 또한 민속마을로 지정된 가옥.

"우린 그냥 여기서 쭉 살았어. 우린 잘못한 것 없는디?"

첫 방문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집이 성곽의 길을 막고 있네요"하고 우스개 소리로 질문을 드렸는데 당신들이 뭔가 잘 못 한 줄 알고 순박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성곽밖 'ㄷ'자 모양으로 담에 붙어 있는 노부부의 집
성곽밖 'ㄷ'자 모양으로 담에 붙어 있는 노부부의 집 ⓒ 서정일
그리고 "이 양반이 여기서 5대째 살고 있어"하면서 쐐기를 박으시려는 듯 할아버지를 가리킨다. 순수함이 느껴지는 말투에서 얼른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꺼냈던 말을 추슬러 담았다.

하지만 성곽 위에서 보면 영락없이 김 할아버지의 집은 갈 길을 막고 'ㄷ'자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참 재미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연유야 어찌되었든 이렇게 자연미를 강조한 성곽의 구성이 어디 또 있으랴.

20여 년 전쯤 한 무더기 대학생들이 찾아와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더란다. 방은 몇 개냐, 화장실은 어디냐, 전기는 어떻게 쓰느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려주고 나니 어느 날인가 갑자기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는 얘기. 아마 민속마을 지정을 위한 조사를 얘기하시나 보다.

손님 대접을 위해 감을 따는 김 할아버지
손님 대접을 위해 감을 따는 김 할아버지 ⓒ 서정일
"많다고 헐 껄. 헛간도 방이라고 했어야 하는디"하고 말하는 최 할머니는 자식들이 찾아오면 어디서 잘 곳이 없다며 그때 "헛간이라고 했던 곳을 방이라고 말했으면 방으로 지을 수 있었는데"하면서 지금은 고칠 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더 넓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자식들이 오면 발 뻗고 잘 방이 없음을 서운해 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그거 말고 뭐 이곳에서 살면서 불편한 건 없냐는 질문에 "보다시피 성문 앞이잖소" 이렇게 말하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최 할머니. 잠시 후 한 무리 학생들이 성곽에 올라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면서 떠드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성문 앞이고 성곽을 돌기 위한 첫 오름대기에 재잘거리는 소리가 큰 건 당연한 일이다. 관광지에 사는 어려움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런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관광객이 호박을 가지고 봉투 하나만 달라기에 주면서 그 호박을 보니 영락없는 할머니 호박이었단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집에 돌아와 담벼락 위를 보니 호박이 없었다고 한다. 호박이 다 똑같지 않으냐는 질문에 호박도 다 모양이 다르다며 자신이 기른 호박은 다 안다고 말씀하신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별 일들이 다 벌어진다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늘그막에 사람 많이 구경하니까 좋다는 노부부.

"보다시피 집 안은 옛날 그대로여서 형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집값이 많이 올랐잖소?" 하면서 이런 말 저런 말 허심탄회한 속내를 말씀하시는 노 부부, 참 소박하고 진솔한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면서 김 할아버지는 긴 장대를 들고 집 앞 감나무로 향했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우리 모두 느끼는 전형적인 할아버지의 모습과 마음이 저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헛간을 보면서 아쉬워 하는 최 할머니
헛간을 보면서 아쉬워 하는 최 할머니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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