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전북 부안의 궁항에 다녀왔습니다. 채석강과 내소사가 먼저 떠오르는 부안은 그동안 여러 번 다녀왔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전라 좌수영' 촬영장이 있는 궁항은 이번에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으로 제공된 곳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송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영화나 드라마를 위해서, 우리 나라에서 경치가 빼어난 곳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촬영장으로 쓰인 곳들은 다른 데 비해 빨리 경치를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드라마나 영화 세트장을 설치하면 그나마 있던 자연스러운 경치마저 심하게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싫어하는 편이지요. 그래도 영화 촬영 세트를 멋지게 지어놨다는 말에 그곳을 다녀올 생각을 했습니다.
드라마 세트장은 경치 좋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찾고 있었지만 저는 그곳을 그저 한바퀴 휘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찾았던 궁항의 바다는 여행에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조용한 바닷가의 길이 등대로 향하고 있었는데, 썰물에는 건널 수 있지만 밀물에는 바닷속으로 빠져버리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저는 등대까지 한번 걸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넓은 S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길을 건너며 만나는 경치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바지락을 캐는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습니다. 소쿠리 가득 바지락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길 옆에 웅덩이에는 썰물에 빠져 나가지 못한 작은 물고기들이 한가하게 쉬고 있었습니다. 물이 들어오려면 한참 남은 듯했지만, 작은 물웅덩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 물고기들은 아쉬운 게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손을 펼치면 겁도 없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순한 물고기들이었습니다.
등대로 더 나가려고 하는데 다른 일행이 도착했다고 알려왔습니다. 결국 등대까지 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습니다. 가지 못한 길이 아쉬웠지만, 언젠가는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남겨 두고 예쁜 경치만 마음에 간직하고 되돌아 나왔습니다.
문득 길에서 자라는 작은 조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손톱만한 홍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차들까지 오가는 길에도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커다란 홍합으로 자라기는 어렵겠지요. 언젠가는 바닷물에 휩쓸려 좀 더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궁항을 빠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