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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밥상을 대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토장으로 진하게 끓여 유난히 입맛을 당긴다.
검소한 밥상을 대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토장으로 진하게 끓여 유난히 입맛을 당긴다. ⓒ 김규환
"컥!" "캑!"

이 소리는 젖 뗀 지 얼마 안 된 강아지에게 닭 가시를 줘서 난 소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개보다는 돼지가 그 뼈를 독차지했다. 그냥 주는 법 없이 언제나 구정물에 생선가시와 닭 뼈가 섞여서 비린내나 고기 뼈 냄새라도 맡으라고 했다. 멸치 국물이나 된장기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면 어찌나 맛나게 쭈욱 빨아대며 잘도 먹는지 바닥이 쉬 드러났다.

마당에 떨어진 온갖 곡식과 지렁이, 벌레를 잡아먹고 느릿느릿 자란 닭은 벼슬도 벼슬이거니와 외모 자체가 꾀꼬리나 공작에 뒤지지 않는다. 불그스름하고 포롬하며 울긋불긋하니 늦가을에 더 화려했다. 서너 마리로도 시골집 마당을 아름답게 바꿔 놓았다. 시시때때로 시각을 정확히 알려줬던 예쁜 짐승이다. 짚으로 한 줄을 싸서 선생님께 촌지로 보내던 그 시절의 작은 살림꾼이었다.

무 넣은 닭국. 무를 착착 쳐 넣어도 되고 채를 썰어도 좋다. 먼저 볶아서 먹되 식용유는 필요가 없다.
무 넣은 닭국. 무를 착착 쳐 넣어도 되고 채를 썰어도 좋다. 먼저 볶아서 먹되 식용유는 필요가 없다. ⓒ 김규환

닭 한 무리. 예전 그 화려했던 장닭은 힘의 상징이었다.
닭 한 무리. 예전 그 화려했던 장닭은 힘의 상징이었다. ⓒ 김규환
닭을 잘게 토막 내 마늘과 생강 넣고 조선간장 간하고 참기름으로 들들 볶으면 육수가 흘러나와 쫄깃쫄깃하면서 고소했다. 한 점 얻어먹으려고 온갖 수발과 수작을 다 부리는 우리였다. 불을 때고 물지게를 지고 냇가에서 소죽물을 퍼날라야 했다. 방바닥을 훔치기도 했다.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 "예있다"며 한 조각 입에 넣어주고 어머니는 하던 일을 하신다.

한 국자 가득 떠서 몇 점 넣고 무국, 떡국, 미역국, 만둣국이나 닭죽을 쒀서 온 가족이 먹었다. 다음날 아침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녁에도 "고깃국 먹고 잡다"면 어머니는 아껴뒀다가 또 끓여주셨다. 입이 궁금하면 몰래 몇 점 꺼내 먹으면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하고 고소했다.

국에 들어간 살점은 가능하면 잘게 썰거나 손으로 찬물 묻혀가며 찢었다. 그나마 없는 살림 골고루 나눠 먹으려면 달리 수가 있겠는가. 동동 뜬 그 때 닭으로 기름기 조금이라도 칠해서 우린 쓰러지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아 지금 여기까지 왔다.

닭으로도 십여가지 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나는 튀기지만 않으면 다 잘 먹는다. 미역이 유난히 부드러워 "후루룩~ 후루룩~"
닭으로도 십여가지 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나는 튀기지만 않으면 다 잘 먹는다. 미역이 유난히 부드러워 "후루룩~ 후루룩~" ⓒ 김규환
오늘 우리네 식탁을 보면 '과연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의문이다. 닭 한 마리, 돼지고기 한 근, 쇠고기 한 근이 지지고, 볶고, 튀기고, 구워져서 얼렁뚱땅 입으로 들어가니 칼로리는 그 때 몇 백배가 될까? 이 게 올바른 식생활인가?

날로 밥상, 식탁이 위협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풀이나 국은 사라지고 오염된 육류가 떡 버티고 있다. 한 때 풀만 준다고 야단이던 때도 있었다. 세상은 급변하여 비만이 질병의 근원이고 보면 다시금 나물과 국, 탕, 찜, 찌개를 상에 올릴 차례다. 맛난 김치 하나로 두어 그릇 비워내던 검소한 식탁, 생선 한 마리 기름 쫙 빼서 한 토막씩 나눠 먹던 우리였잖은가.

밥상은 농업에 있고 생명 연장의 꿈으로 이어진다. 장아찌가 사라지더니 저녁에 보글보글 끓는 구수한 된장국과 김치찌개 내음이 동네에 돌지 않는다. 다들 뭘 먹고 살까. '고깃국에 이밥' 먹는 게 소원이던 때가 불과 몇 십 년 되지 않았다. 대량생산으로 도시 어디서고 맘대로 싼 값에 먹을 수 있으니 세상살이 참 편리해졌고 풍족해졌다.

무밥 질리게 먹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건 지금도 그 시절 못지 않기 때문이다.
무밥 질리게 먹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건 지금도 그 시절 못지 않기 때문이다. ⓒ 김규환

해강이도 이젠 가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밥에 큰 김치 하나 싸서 오물오물 씹다 그대로 넘기면 가시가 없어진다.
해강이도 이젠 가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밥에 큰 김치 하나 싸서 오물오물 씹다 그대로 넘기면 가시가 없어진다. ⓒ 김규환
며칠 전 아련한 저 기억 한 구석에 쳐박혀 있던 기억을 들춰준 아이는 네 살 해강이었다.

"크큭!"
"왜, 해강아?"
"가시, 가시가 목구멍에 걸렸어요."

그 때 아내는 어떤 처방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무울~"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이를 안심시켰다.

"해강아, 물 먹어도 가시가 빠지지 않는단다. 엄마 아빠랑 고모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리면 밥에다 김치를 싸서 한두 번 씹다가 바로 삼키는 거야. 예전에 할머니가 그러셨거든. 알았지?"

보쌈처럼 김치를 싸 먹였다.

"아~"
"그만 씹고 얼른 삼켜라. 지금 얼른."
"꿀떡?"
"그래 꿀떡!"
"이제 안 아픈데요."
"그래, 우리 해강이 잘 했다."

가을 무 잎사귀를 넣고 생채를 만들어 밥을 비벼 먹어보자. 요즘이 제철이다.
가을 무 잎사귀를 넣고 생채를 만들어 밥을 비벼 먹어보자. 요즘이 제철이다. ⓒ 김규환
갈치나 고등어, 조기, 꽁치를 구워 먹다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그랬고 내 동생이 그랬다. 간들간들 목젖을 건드리며 사람 성가시게 하는 것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깊숙이 손가락을 넣어 꺼내보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다. 물을 마시면 오히려 싸한 아픔만 전해질 뿐이었다.

"아빠가 의사 선생님이지?"
"예."

예전엔 된장과 소금물에만 절여서 먹었는데 요즘은 날로 장아찌가 화려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소비자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상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건강은 뒷전이다.
예전엔 된장과 소금물에만 절여서 먹었는데 요즘은 날로 장아찌가 화려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소비자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상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건강은 뒷전이다. ⓒ 김규환
지금이 IMF 때보다 경기다 더 좋지 않다고 한다. 시장에서 무, 배추 처질거리를 갖다가 시레기국 끓여 먹든가, 무 하나로 십여 가지 음식을 해냈던 우리 부모님의 지혜와 검소함까지는 몰라도 몸에 좋지 않다는 육류 범벅에 저질 식용유에 튀긴 닭고기, 뭐든 튀겨야 먹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습성, 패스트푸드에 노출된 우리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며칠 고기 먹지 않는다고 당장 쓰러지는 시대가 이제 아니다. 건강을 위해 뭐든 팍팍 줄이고 김치에 나물 한 가지, 생선 한 토막과 된장국으로 다시 식생활 건전성을 되찾을 때다. 우리 어머니들은 닭 한 마리로 몇 인분을 만들어 주셨는지 모른다.

며칠 남지 않은 가을 끝자락에서 긴 겨울 날 생각하면 막막하다. 허나 어쩌랴. 어차피 맞이할 것 김장 넉넉히 하고 메주 풍족히 쑤면 가족 함께 있으니 다행 아닌가. 서로 보듬고 살면 체온으로도 가능하리라. 건강도 소식(小食)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무얼 먹느냐에 달려있다. 그 해결책은 어릴 적 어머니 손끝에 있다.

음식 하나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 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삼겹살을 굽더라도 요즘 한창인 고구마와 김치쪼가리 몇개만 함께 구워도 좋으리라.
음식 하나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 정성이 바로 그것이다. 삼겹살을 굽더라도 요즘 한창인 고구마와 김치쪼가리 몇개만 함께 구워도 좋으리라. ⓒ 김규환

튀긴 음식의 대명사 치킨. 예전 튀김엔 고구마가 다 였었지만 요즘은 자꾸 고기를 넣고 있거나 고기 자체를 튀겨서 내온다.
튀긴 음식의 대명사 치킨. 예전 튀김엔 고구마가 다 였었지만 요즘은 자꾸 고기를 넣고 있거나 고기 자체를 튀겨서 내온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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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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