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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숙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두발 자율화'였습니다. 학급회의만 열리면 두발 자유화를 요구했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강조하며 머리를 짧게 자르길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머리를 마음껏 기르고 멋 내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과 같은 욕망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 학교 규정인 3cm를 넘기기가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공포의 두발검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 바리캉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자… 모두 눈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부터 두발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머리가 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납니다.

"이놈들 머리가 길구나. 내가 단정하게 깎아 주마."(쓱싹 쓱싹)

눈을 떠보면 저를 포함해 학생들의 머리는 쥐가 먹은 듯 움푹 패여 있습니다. 교실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떨어진 채 말입니다.

그때의 공포스런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머리가 긴 것과 공부하는 것이 무슨 관련성이 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매 견디기'

학창 시절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랑의 매'입니다. 반에서 하위권을 늘 유지했던 저에게 매를 맞지 않는 날은 너무나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두 대 맞는 것은 그냥 웃으면서 맞을 수 있을 만큼 훈련이 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가끔 재수 없는 날은 과목 선생님들마다 돌아가며 때리기도 했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학교는 하루종일 맞는 소리가 멈추질 않습니다.

떨어진 점수 숫자만큼 맞거나 반 평균에서 밑도는 수치만큼 사랑의 매를 대는 것은 전통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중간고사를 마치고 점수를 매겨 보니 모든 과목에서 점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취향에 맞는 막대기를 들고 들어와 신체 각 부위를 골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수학, 국어, 역사 등 과목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한번은 종아리, 한번은 손바닥, 엉덩이에다 심지어 뺨까지 선생님의 취향에 따라 다 맞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10년 훌쩍 지나고 있지만 그 날의 설움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온몸이 퉁퉁 부은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집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자다 너무 아파 잠을 깨 보면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눈으로 다리에 약을 발라주곤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루어지는 부모님 재산 조사,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체력훈련(기합),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 등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을 '그때 그 시절'로 치부하며 웃으며 얘기하기에는 지금의 학생 인권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학교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학생들을 단순히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권을 가지고 있는 사회의 주체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75년 전 암울한 우리나라의 운명을 고민하며 일제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던 학생들이 더는 사회적 약자로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요즘 고교등급제와 대입 개선안 문제로 사회가 떠들썩합니다. 하지만 이런 떠들썩함 속에 학생들의 의견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너무나 씁쓸합니다. 교육 문제에 학생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그런 사회가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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