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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득량만 간척지 중간에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드넓은 득량만 간척지 중간에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 서정일
전남 보성군 예당리 팔구 거대한 간척지가 있는 득량만. 넓이로 보나 쌀 생산량으로 보나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평야다. 가로 길이가 5km에 육박하니 걸어서는 몇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한 이곳에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지만 눈으로 봐 거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가옥 한 채가 있다. 빨간 지붕 탓에 더욱 눈에 띄는 홍일점 '중강슈퍼'. 일반주택이 아닌 과자 잡화 주류를 판매한다고 쓰여진 가게인 것이다.

의문점이 아닐 수 없다. 이 넓고 황량한 벌판에 누구를 위한 상점일까? 그 궁금증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어 무작정 기다려 보길 20여분. 멀리 오토바이 한 대가 나타나더니 가게 앞에서 섰다.

헬멧을 벗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뉘시요?"하는 경계심 속에 인사말을 던지는 박시춘(86) 할아버지, 다름 아닌 중강슈퍼의 주인.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해서 지어진 이름, 중강슈퍼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해서 지어진 이름, 중강슈퍼 ⓒ 서정일

"여기도 마을이 있었지 한 50여 가구 있었는데 옛날에 모두 이사갔지."

자신을 터줏대감이라 말하는 박 할아버지. 40여년 가게를 운영하면서 운영이 잘 될 때도 있었다면서 배도 두 채나 가지고 있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6·25 때 쫓기는 경찰들을 저 앞 방파제에서 건너편인 녹동 풍리로 내 배로 많이도 실어다 줬네. 내가 실어다 준 경찰만도 한 만 명은 될 거야. 그 사람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구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옛날 얘기를 물어보면 가장 먼저 끄집어내 놓는 이야기보따리인 6·25, 박 할아버지에게도 역시 6·25는 특별하게 기억되는 듯싶었다.

"20여년 전 수해로 이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고 나락이 쓰러져서 방파제를 막았는데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모두 떠났지. 이 근처에 나 밖에 없잖아? 나는 자연을 이긴 거야"하고 껄껄 웃는 박 할아버지는 10여년 전에 상처하고도 그 외로움까지 이겨가며 이곳을 지킨 것이다.

"며칠 전에 가게 접었네. 집 앞으로 해안도로가 난다면서 집을 비우라고 하더군. 보상도 받았으니 이젠 순천으로 나가 살아야지. 사실 지금도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종종 먹을 것을 사려고 오는데"하면서 말꼬리를 흐린다.

오토바이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박 할아버지
오토바이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엔 정비공사를 한다는 푯말이 크게 세워져 있다. 근처에 집은 없어졌지만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막걸리며 먹을거리들을 사러 왔었는데, 하는 섭섭함을 내 보였다.

험한 시국에도 커다란 자연재해에도 우직스럽게 가게를 지킨 박 할아버지. 행여 들판에서 일하다가 목이 컬컬해서 막걸리라도 먹고 싶은 농부들이 몇 km나 떨어진 가게로 가는 것보다는 가까운 이곳을 이용하면 좋지 않느냐며 중강슈퍼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던 터줏대감 박 할아버지도 이제 이곳을 떠난다.

넓은 벌판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 '중강슈퍼'는 며칠 후면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들판에서 일하다 자전거로 막걸리를 사러오던 농민들은 따뜻한 웃음을 지어주던 박 할아버지와, 발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던 중강슈퍼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해안도로 공사로 가게를 그만두시는 박 할아버지
해안도로 공사로 가게를 그만두시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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