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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음지의 사상검증소'라는 오명을 들어온 공안문제연구소. 5공 때까지 치안본부 대공분실 산하에 있다가 1988년 경찰대학 산하 공안문제연구소란 이름으로 '재설립'된 뒤에도 여전히 국회 통제 밖에 있어온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한 국회 첫 증인심문이 있었다.

출판, 유인물의 국가보안법 이적성 여부를 판단해온 공안문제연구소가 더 이상 감정업무를 하지 않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과 최기문 경찰청장이 감정업무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실무책임자인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소장 역시 "감정업무를 민간에 맡기는 것이 맞다"는 뜻을 피력했다.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용희)에 출석한 전병룡 소장은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의 "감정업무를 민간에 맡길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앞으로는 그런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답했다.

하지만 감정업무 중단의 이유는 애매했다. 전 소장은 "감정업무가 사회과학적 판단이라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최근 언론의 집중타를 맞아 앞으로 법원이나 검찰이 우리가 작성하는 감정서를 신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 소장은 "감정업무는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보안수사요원에 대한 최소 6개월간의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기초를 쌓도록 해야 한다"며 연구소가 해온 감정업무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일부와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아예 연구소의 폐지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전 소장은 "감정서의 95%가 자료로서 보안업무에 활용되고 있으므로 자료분석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연구중심의 기관으로 거듭날 것임을 내세웠다.

전 소장은 공안문제연구소의 사실상의 사상검증에 대한 사회적 무리를 일면 수긍하면서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이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여당이 제출한 4대 법안에 대해서 김정일 북한의 위원장이 할 일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대신한다는 취지로 사설을 썼다"는 주장을 펴자 "공감한다"고 답했다.

이어 전 소장은 "(친북좌익 활동의) 위장술이 많다, 전문적인 감정이 필요하다"며 국정감사를 통해 연구소의 감정서가 공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또한 김충환 의원이 "감정업무를 중지할 경우 경찰의 보안업무가 약화되지 않냐"고 묻자 "약화된다"고 거들며 보안업무 약화를 주장하는 세력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행자부 장관과 경찰청장의 감정업무 중단을 피력한 이후에도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업무는 계속되고 있다. 전병렬 소장은 "아직 공문으로 지시를 받지 않았다"며 공식적인 전달이 있으면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병렬 소장 "감정업무 민간기구에 맡기겠다...하지만"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적표현물로 감정한바 있는 유동열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원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적표현물로 감정한바 있는 유동열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원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공안문제연구소측 증인의 출석은 지난 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증인 채택 요청에 대해 한나라당이 절차의 이유로 반대해 이날 행자위에서 별도의 증인심문을 벌인 것.

전병룡(52) 소장은 경남지방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 정보국장 출신으로 2001년부터 공안문제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유병렬 연구관은 14여명의 연구관 중 가장 오랜 근무경력의 소유자이며 정진상·장상환 교수 공저의 <한국사회의 이해>의 감정서를 작성한 연구관으로 알려져 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5년간 3만5천건을 감정, 그중 찬양·동조는 1만3505건, 선전·선동은 633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소측은 "정확한 수치는 통계로 나와있지 않지만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서가 검찰의 기소로 이어진 것은 약 10%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구소측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감정서 발급이 사실상의 사상검증이라는 점과 감정의 객관성, 연구원의 전문성을 집중해 따졌다. 노현송 의원의 "연구관에 대한 충분한 검증절차를 거친 선발이 아니"라는 지적에 유동렬 연구관은 "석·박사 학위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노 의원과 유 연구관의 설전은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최종심을 앞두고 있는 <한국사회의이해>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 학위가 피감정인을 빨갱이로 낙인할 수 있는 자격인가.
"빨갱이 낙인이나 사상검증이 아닌 문건의 성향을 판단할 뿐이다."

- 이적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이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사회주의 주장하는 걸 어떻게 문제없다고 하나."

- 그럼 어떻게 1,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나.
"사상의 자유, 학문의 영역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 기고문이나 저술에는 기고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 사상을 어떻게 감정하나.
"연구관의 의견개진일 뿐, 사상검증은 아니다."

- 의견개진이 바로 사상의 표현이다.
"의원님이 A라는 글 발표했다고 치자. 그 글 하나로 의원의 사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말 잘했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면 안된다는 말이다.

노 의원과의 공방에서 막판 말이 '꼬인' 유 연구관은 "법에 주어진 임무다, 우리를 역적이라고 하면 안된다"라고 말하며 흥분했다. 이에 노 의원이 "언제 역적이라고 했나"라고 되묻자 "분위기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공안연 "우리를 역적으로 몰지 마라"

공안문제연구소측의 항변은 "연구소는 경찰, 검찰 등의 수사기관이 의뢰한 문건의 감정을 할 뿐이고 수사기관에 참고자료로 제시될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상희 교수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감정서를 두고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감정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부여된 공정성이나 객관성의 외관으로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교수는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업무 하나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그 감정서가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봐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 주장의 요지는 구체적인 '행위'가 '사상'을 검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등 증인들에게 질의하고 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등 증인들에게 질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날 증인 중에는 연구소측 인사 외에도 열린우리당이 신청한 한상희(건국대 법학) 교수, 이호중(외대 법학) 교수, 그리고 한나라당측이 신청한 박광작(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이동호(북한 민주화 포럼) 간사, 홍진표(<시대정신> 편집위원) 위원등이 참석했다. 특히 이동호 간사의 경우 과거 운동권에서 전향한 인물로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했다.

한편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은 공안문제연구소의 폐지를 반대하며 "북한의 형법과 노동당 규약이 바뀌지 않았고 우리와 같은 북한측의 연구소도 폐지되어야 균형이 맞다"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한국사회의 이해>에 내용 일부를 인용하며 그 심각성을 제기했는데, 이 의원이 읽은 내용은 책 원문이 아닌 공안문제연구소가 '해석'한 감정서의 일부였다.

이인기 의원이 "한국전쟁의 발발원인은 남한당국의 친일파 처단, 토지개혁 등 민주변혁과제의 미진과 외세점령 등에 따른 계급모순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된 필연적인 결과이다"라고 읽어 내려가자 이 감정서를 작성한 유동렬 연구관은 "북한조선통사와 일치하는 내용이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유 연구관의 말 역시 감정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도 사상검증 하나"
최규식 의원, 공안연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논문' 감정 사실 공개

▲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이 26일 국회 행자위에서 경찰청 보안국의 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의 논문 감정의뢰와 관련한 질의를 전병룡 공안문제연구소장에게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기문란 사건이다. 어떤 이유로 대통령의 인사권에 정면 도전한 것인지, 배후가 있다면 밝혀라. 국정원 일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얘기도 있다."

26일 열린 행자위에서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공안문제연구소가 2003년 참여정부 초기 서동만 교수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내정된 직후, 서 교수의 논문 '한반도의 문제해결과 교차승인(2002년)'에 대한 감정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2003년 3월 13일 경찰청 보안4과에서 감정을 의뢰한 시기는 묘하게도 서 교수가 국정원 간부로 거론된 시기였다"며 "이후 한나라당은 서동만 교수에 대해 '친북성향' '사상의 편향성' 등을 가진 인사라는 색깔론을 집중 부각했는데 우연치고는 너무 잘맞는 궁합 아니냐"고 감정의 시기를 문제 삼았다.

최 의원은 또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일개 부서가 사상검증을 실시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경찰청장의 지시인지 연구소의 자체 판단인지 배후를 밝히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전병렬 소장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수긍하면서도 "다른 의도는 없을 것이다, 진상을 파악해 보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공안문제연구소는 서 교수의 논문에 대해 '문제없음'으로 판단했다. 연구소가 작성한 감정서에 따르면 "본 문건은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 원칙으로서 평화적 수단인 대화와 공존공영 등을 제기하고 있고 한반도의 냉전적 대립관계의 청산을 위해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남북 화해협력 등을 제안하고 있다"며 "따라서 대북문제와 관련 평화적 해결원칙이라는 정부의 입장과는 같은 맥락에서 한반도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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