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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4일 오전 9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선이 헌법재판소에 몰려 있었다. 그 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청구에 대한 결과(2004헌나1)를 발표한 날이었다.

당시 이 심판청구를 헌법재판소는 '기각'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두 달여만에 다시 직무에 복귀했다. 우리는 이때 헌법재판소의 막강한 힘을 실감했다.

법치주의 이념에 따라 대통령의 명운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그만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중요하며 사회적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로부터 약 5개월여가 지난 10월 21일 오후 2시, 비록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목이 다시금 헌법재판소 9인의 재판관에게 집중되었다.

방송사는 이 날 이루어졌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확인'을 생중계했고, 많은 국민들은 TV와 라디오 등을 통해 이를 지켜보았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위헌'이라는 것이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입을 통해 확인되었다. 지방분권, 지방화시대를 슬로건으로 추진했던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침묵과 충격에 휩싸였고, 반대로 이에 대해 꾸준히 반대를 했던 한나라당, 서울시 및 수도권 자치단체장의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감돌았다.

신행정수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대전-충청권과 수도권의 민심도 엇갈렸다. MBC의 이 날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이 넘는 수가 이번 헌재결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의 찬성표가 전체의 통계를 이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국가의 중대한 정책과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법치주의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 역시 그 힘과 영향력은 예외가 아니다. 일부는 '사법권력'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는 이유가 그러한 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헌법재판소의 위헌확인심판을 지켜보며 한 가지의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에서 엄중한 법리적 판단을 잃어버린 정치적 판결임이 분명하다고 외치는, 즉 '관습헌법'이라는 생소한 개념에 대한 것이다.

관습(慣習, custom)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되풀이 되어 온 집단적 행동 양식'이라는 문구로 요약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관습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출발했고, 집단이라는 개념과 반복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져 우리의 현재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습법이라는 개념이 도출된다. 관습법이란 이러한 관습이 법의 형태로 굳어진 것을 가리킨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요지 상단부분을 보면 "수도가 서울인 점이 우리나라의 관습헌법인지 여부"와 "성문헌법체제에서의 관습헌법의 의의"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우리 나라는 성문헌법 국가이므로 헌법전(憲法典)이 헌법의 법원(法原)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관습이 헌법의 법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보통 관습법은 헌법의 보충적인 법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성문헌법 국가에서는 엄연히 국민의 제정과 개정으로 전해 온 헌법전이 헌법의 주법원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날 결정문에서 중점적으로 '관습헌법'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거침으로써 위헌임을 판결했던 것이다. 보충적 법원으로 인정되는 관습법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우리 나라 헌법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명문규정은 없다. 하지만 오래전부터(헌법재판소는 이 날 1392년 조선의 건국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관습헌법으로서의 서울의 수도 개념을 밝히려 했다. 또 경국대전 내용을 언급하며 학창 시절 열심히 배웠던 역사를 일깨워 주었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였다는 관습이 그 효력을 유지해 왔다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습헌법'이 현재 제정되고 있는 법률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관습헌법을 굳이 더 적용해 본다면 우리 나라는 오래전부터 장자 중심의 상속제도를 유지해 온 나라이다. 호주제도 그랬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러한 관습적 요소들이 바뀌어가고 있다. 신행정수도이전이 관습헌법이라는 법원에 어긋나 위헌이라고 한다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호주제 폐지나 장자 상속제도가 점차 형제의 균등한 상속과 제례로 옮겨가고 있는 풍습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이러한 의미에서 '관습헌법'이라는 법원을 현행 법률의 위헌적 요소로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원칙적인 성문헌법국가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전문과 130개의 조문, 그리고 부칙이 근본적 법원으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이 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판결문은 마치, 새로운 학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새로운 학설을 발표한 것만 같아 아쉽다.

진정한 법치주의를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날 판결이 끝나고 기자들이 재판관들이 퇴근할 때를 기다렸다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들은 한결 같이 판결문에 이미 할 말을 다 넣었다고 했다. 수많은 토론을 거쳤고 회의를 했다고까지 말했다.

이번 결정은 나와 같이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비록 헌법재판소의 그분들과 지식과 경험의 질과 양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법리적 요소의 문제를 남겼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한 것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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