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용산역에서 밥퍼주는 모습. 줄을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용산역에서 밥퍼주는 모습. 줄을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김교진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9일 낮 12시.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한끼 밥을 먹기 위하여 용산역에 모여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집에서 차례 음식을 배불리 먹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지만 이들은 점심 한끼를 먹기 위해서 12시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드디어 하나님의 집 무료급식이라고 쓴 1톤 탑차가 와서 이 거리의 사람들에게 밥을 나누어 줄 준비를 하였다.
급식 차를 기다린 사람들은 노숙자들 이외에도 자원봉사를 하기 위하여 이날 용산역 밥퍼 현장을 찾은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들도 있었다. 풀꽃세상 회원들은 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국과 밥 반찬을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랑의 밥.
사랑의 밥. ⓒ 김교진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낮 12시가 되면 용산역에서 전자상가로 가는 굴다리 앞에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는 봉사활동이 열린다. 매일 150명에서 200명이나 되는 노숙자들이 밥을 먹으러 오는데 이들을 위한 봉사자도 10여명씩 필요하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도 명절에는 고향을 찾아야 하기에 명절에는 봉사자 수가 적어 이들에게 밥을 퍼주는 하나님의 집 인원 3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자주 이곳에서 밥 퍼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한 회원의 제안으로 풀꽃세상 회원 7명이 명절 연휴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날 봉사 활동하러 온 회원 중에는 어머니를 따라온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노숙자들이 낯설었는지 "엄마 이 아저씨들 다 집 없는 사람들이야"하고 물으며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밥먹은후 피곤한지 낮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밥먹은후 피곤한지 낮잠을 자고 있는 노숙자. ⓒ 김교진
그러나 엄마와 같이 간 어른들이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자 금세 노숙자들에게 숟가락을 나누어 주며 "맛있게 드세요"하고 인사를 건네 노숙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노숙자들은 한눈에 보아도 노숙자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는 노숙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말끔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노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식판을 든 사람들은 서서 밥을 먹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밥이나 국이 모자라면 배식 차에 와서 더 받아 갈 수 있었다. 이날 밥을 먹은 사람 중에는 장애인인지 휠체어를 타고 와서 밥을 먹은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의 집 밥퍼 차
하나님의 집 밥퍼 차 ⓒ 김교진
노숙자들의 배식이 끝난 후 자원봉사자들도 그들과 똑 같이 서서 밥을 먹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서 밥을 먹는 젊은 엄마를 보면 가족 노숙자로 잘 못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느꼈을 것이다. 입시를 위한 교육보다는 사람이 되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일 것이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식기를 지정된 자리에 갖다 놓고 여기 저기로 흩어졌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늘 하루 그들은 밥을 또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혹시 점심 한끼만을 먹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용산역 무료급식 하나님의 집
용산역 무료급식 하나님의 집 ⓒ 김교진
용산역에서 밥퍼 모임을 9년 동안 하고 있는 밥퍼아줌마 유연옥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많습니다. 용산역으로 밥 먹으러 오는 분 중에서도 저희가 주는 밥 한끼가 하루에 먹는 밥의 전부인 사람들이 절반을 넘을 것입니다."

급식이 끝나고 노숙자들이 자리를 떠나자 자원봉사자들과 하나님의 집 관계자들은 식기를 차에 싣고 용산역에서 가까운 하나님의 집에 가서 설걷이와 감자 깎기를 하였다. 5명이 함께 식판과 숟가락, 대형밥솥, 국솥을 닦는 데에도 바삐 손을 움직여야 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김교진
대형밥솥과 국솥 등을 닦다 보니 힘도 들고 구정물이 얼굴에 튀었지만 그래도 내가 살다 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힘든 일을 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주방일 하나 안하고 살던 내가 남을 위해 밥솥을 닦고 있다니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그동안 노숙자들을 보면 피해가거나 속으로 멸시한 적도 있었지만 오늘 그들을 가까이서 보니 순한 사람들이었다. 겉으로는 무섭게 생기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처럼 배낭을 메고 급식 차 옆에 서있는 나를 보고는 새로 온 노숙자인줄 알고 이리 와서 밥 먹으라고 손짓하는 사람도 있었다.

풀꽃세상의 어린이 회원들이 밥퍼 차에서 놀고 있다
풀꽃세상의 어린이 회원들이 밥퍼 차에서 놀고 있다 ⓒ 김교진
설거지와 감자 깎기를 끝내고 나서 우리는 밥퍼 아줌마 부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였다. 풀꽃세상 회원들이 밥퍼활동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질문하였는데 밥퍼아줌마와 아저씨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풀꽃: 용산역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하루에 몇 명이나 됩니까?
밥퍼: 보통 100명에서 150명 정도 됩니다.

풀꽃 : 용산역에서 밥을 퍼주는 활동을 한 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밥퍼 : 9년 되었습니다.

풀 꽃: 그동안 어려운 일이 많으셨겠습니다.
밥퍼 :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아내인 유연옥씨가 이 일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지금 같은 트럭도 없어서 여자들이 리어카로 밥을 싣고 가서 용산역 광장에 가서 밥을 퍼주었습니다. 용산역 광장에서 밥을 주다가 새 역사 짓는다고 밀려나서 용산역 귀퉁이에서 밥을 주었는데 바로 앞에 식당들이 있어서 일부 노숙자들이 식당에 가서 밥 달라 술 달라 하고 귀찮게 굴어서 식당주인들에게 원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노숙자들과 실랑이도 벌이고 설득도 하고 해서 이제는 용산역에 오는 노숙자들은 밥만 먹고 조용히 돌아갑니다. 여기서는 술 마시고 새치기 하는 등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에게는 엄격히 대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서나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 부근 식당 주인들도 저희들에게 남는 반찬도 주는 등 전보다는 우호적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밥줄 공간도 없어서 밥을 어디서 주어야 할지 밥 퍼주기 전에 사전 탐사를 하고 올 정도로 불안했습니다. 지금은 밥 퍼주는 곳이 용산 신역사 주차장 부근이라 바로 옆에 건물이 없고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있어서 비를 피할 공간이 조금 생긴 게 다행입니다. 예전에는 비 오는 날이면 비를 맞으면서 사람들이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라도 계속적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든 것은 돈 문제입니다. 한달 경비만해도 몇백만원씩 드는데 이를 뜻있는 분들의 성금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니 무척 힘듭니다. 그동안 힘들게 버텨 왔지만 솔직히 저희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어려울 때면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 드리면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이 일을 더 이상 못할 지경에 이르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풀꽃 : 노숙자들을 위해서 한끼 밥을 주는 것보다는 수용시설을 만들어서 취업을 할 수 있게 교육을 시키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밥퍼 : 지금 정부에서 노숙자 쉼터를 만드는 등 노숙자를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노숙자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노숙자들도 추운 겨울에는 수용시설에 잠시 들어갔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길에서 생활합니다. 노숙을 오래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쉽게 교화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노숙하는 것도 하나의 병으로 봅니다. 아픈 사람에게 당장 일거리를 준다고 해도 적응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정신적인 병부터 치료해야 하므로 우리는 노숙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유합니다. 일요일에는 노숙자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그들을 빨리 노숙에서 벗어나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다 보면 마음이 치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풀꽃: 이곳에서 주는 밥을 먹어보니 맛이 있습니다. 음식을 잘하십니다.

밥퍼 : 밥하는 일을 도와주시는 분의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음식이 맛이 있어서 사람들도 남기지 않고 잘 먹습니다. 항상 싸고 영양가 있는 제철 음식을 씁니다. 형편이 되면 생선이나 고깃국도 끓이려 애씁니다. 저희에게 도움을 주는 분들 중에는 집에서 남는 음식 재료를 갖다 주시는 분들도 있고 재료를 일부러 사서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신 김치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국 끓일 때에 넣으면 되므로 많이 가져오셔도 됩니다.

가끔 고기 반찬도 하는데 돼지 고기의 경우에는 비계가 많거나 질긴 부위는 잘라냅니다. 고기가 질기면 씹기 힘들잖습니까? 노숙자들이 몸이 허약해서 씹는 능력도 약합니다. 위생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밥그릇도 정성껏 닦고 숟가락은 끓여서 소독합니다.

앞으로 노숙자들이 없어져서 저희들이 이러한 일을 안 해도 될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노숙자들이 있는 한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2시간 동안 봉사를 하고 용산역 밥퍼부부와 이야기를 마친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끼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계속하기로 다짐하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