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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
ⓒ 김강임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가는 서부관광도로는 온통 가을빛이다. 도로 주변에 피어 있는 키 작은 가을꽃과 은빛 억새,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아늑한 오름 사이를 뚫고 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가을은 저만치 서 있다.

서부관광도로에서 서귀포 예래동 마을에 접어들었다. 처음 밟아보는 예래동 마을길은 꼬불꼬불 이어졌다. 초행길은 늘 브레이크를 밟게 한다.

서귀포시에서 발행한 관광지도를 하나 들고 출발한 서귀포 70경, 그 70리 길은 절반도 오지 않았는데 길 찾아가기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벌써 20년 넘게 제주시에서 살았는데도 제주의 풍경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서귀포의 길 끝에는 여지없이 바다가 있었다. 제주의 바다는 육지와 섬을 잇는 경계선이거늘, 자동차는 늘 이 경계선에만 오면 힘을 잃는다. 바다 길을 열고 더 갈 수 없는 애석함. 이방인의 서글픔은 늘 향수에 젖게 한다.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만난 또 하나의 비경은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였다. 서부하수종말처리장과 조른 모살 사이에 있는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조각품 같았다.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로 가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 던졌다. 그 이유는 둥글넓적한 먹돌에 쏟아진 가을 햇빛을 맘껏 누리고 싶어서였다. 잘 익은 가을 햇볕에 익어가는 따끈따끈한 돌의 온기가 사람의 체온처럼 느껴지는 건 그만큼 세상의 온기가 싸늘해진 탓일까? 발바닥에 배어 오는 따스한 쾌감은 여태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줬다.

▲ 기안괴석 전시장 같은
ⓒ 김강임
맨발로 종종걸음을 걸으며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로 다가가니 약 1km에 달하는 병풍이 바닷가에 늘어서 있었다.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머문다.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여행을 떠나왔는데, 이곳에는 고요가 흐른다. 다만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수많은 돌과 잘 다듬어진 육각 조각품뿐.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는 서귀포시가 지정한 서귀포 70경의 한 곳으로, 마치 만물상을 연상하게 하는 천혜의 비경이었다. 지금은 만물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예전에 만물상 앞을 지나가노라면 모습이 제각각인 세상 온갖 물건들이 다 진열돼 있었다.

▲ 와르르 무너져 내릴것 같은
ⓒ 김강임
마치 신이 다듬은 모습처럼, 정교하게 깎아 세운 육모꼴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돌기둥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저 말하기 어려워 혼잣말로 감탄사만 퍼붓는다.

겹겹이 쌓인 검붉은 사각·육모꼴의 돌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수직으로 뻗어 있는 모습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는 최대 높이 40m, 폭 약 1km에 달하는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와 더불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바다를 마중 나온 아이.
ⓒ 김강임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 앞에서 바다를 보니 멀리 수평선에서 몰고 온 파도가 가을을 실어 나른다. 검붉은 돌기둥을 보기 위해 구경을 나온 아이는 가을을 부르는지 바다를 부르는지 파도를 헤아린다. 아니 고기잡이 나가신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어느 예술가의 작품인 양 깎아 세운 돌기둥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 주상절리대의 모습에 감탄하는 순간, 돌기둥 끝에 붙어사는 생태계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겹겹이 쌓아둔 사각과 육모꼴 돌기둥은 층을 이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끄덕하지 않고 서 있는 자연의 조화. 자연은 늘 우리에게 이치를 깨닫게 한다. 어느 때는 쓰디쓴 인내를, 또 어느 때는 달콤한 선율을, 그리고 어느 때는 잊어버린 자신의 모습까지도 거울처럼 비치게 한다.

▲ 보이는 것은 바다와 기암괴석 뿐
ⓒ 김강임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 동쪽은 해식동굴이 발달되어 있으며 그 길이가 약 25m로 주상절리 절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트여 있다고 한다.

서귀포종합관광안내소 자료에 따르면, '다람쥐굴'이라 불리는 또 다른 해식동굴은 적갈색 무문토기편들이 출토된 색달동 해식동굴 유적이며, 이 일대는 주상절리 단애의 형성과정 중에 일어났던 해수면 변동과 구조운동, 신생대 제4기의 빙하성 해수면 변동을 연구하는 중요한 학술자료라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병풍의 끄트머리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 파도가 쉬어가는 곳
ⓒ 김강임
길을 떠나보면 왜 이렇게 가슴에 담아가고 싶은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파도가 거품을 몰고 둥글넓적한 먹돌 곁에서 가을을 지킴이 여유로워 보이는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 그 병풍 앞에 선 바다는 내 마음인 양 파도가 일고 있었다.

맨발로 걸어보는 것이 따스함으로 다가오는 여행길. 맨발이 이렇게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것을, 색달해안 갯깍 주상절리대 앞에서 세상을 보니, 보이는 것은 기암의 모습과 바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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