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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정광숙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문방구에 간다고 나가던 딸아이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속삭이는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하고 부릅니다.

"엄마, 잠깐만 이리 와봐요!"

무슨 큰일이 일어났나 놀라서 얼른 일어나 현관 앞으로 갔습니다. 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엄마! 계단에 쥐 있어."
"뭐라구!"

전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른 문을 열어 봤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주 작지만, 쥐가 분명한 놈이 계단 한쪽 귀퉁이에 말똥말똥 겁에 질린 눈을 하고는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어찌어찌 계속 올라오다보니 4층까지 올라왔나 봅니다.

난감합니다. 쥐라는 놈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지만, 저 쥐가 계속 여기에서 버티고 있으면 난 내려가지도, 또 옥상으로 올라가지도 못할텐데…. 정말 큰일입니다. 마침 아들의 잠자리채가 눈에 띄어, 과감히 그것을 들었습니다. 무척 겁이 났습니다.

저는 바퀴벌레도 무서워 하는 아줌마입니다. 바퀴벌레 본지도 오래지만,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그 아파트는 왜 그렇게 바퀴벌레가 많았는지…. 아마도 쓰레기를 집안에서 통로를 이용해 투하하던 곳이라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의 아파트는 대부분 그런 구조였습니다. 내 집이 아무리 깨끗해도 밤이면 기어나오는 바퀴벌레들 때문에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혹시나 새근새근 자고 있는 사랑스런 우리 아이한데 바퀴벌레가 갈까 무서워 불을 켜놓고 자기도 하고, 어쩌다 제 눈에 띄는 날이면 사정없이 주변의 신문지나 또는 신고 있던 실내화라도 벗어서 때려잡고는 주저앉아 마구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그만큼 겁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줌마 아니, 엄마는 자신도 모를 정도로 용감해집니다.

오늘도 용감한 엄마가 되어 잠자리채로 계단을 두드려봅니다. 녀석이 알아서 내려가주기만을 바라면서…. 에구! 그런데 녀석이 잔뜩 놀란 채로 쏜살같이 계단 위로 뛰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 놀랐지만, 겁먹은 상태에서도 마구 잠자리채를 휘둘러 봅니다.

그런데 녀석이 후다닥 옥상 쪽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살금살금 뒤쫓아 올라갑니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사태는 더 난감한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나서는 안 되겠지요. 용감한 엄마인데….

위에 박스가 하나 있습니다. 종이 줍는 할머니에게 드리려고 신문지와 박스를 모아두는 공간인데, 아무래도 생쥐가 그곳에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 방법도 없고 박스만 툭툭 건드려보다가 포기하고 내려오려는데 딸아이가 잠자리채를 달랍니다. 자기가 해보겠다고…. 저보다 더 용감하게 말하네요.

"너가 어떻게 해!"
"에이, 엄마보다 나아! 엄마 이렇게 겁에 질려 있는 모습, 처음으로 보는 거야!"

잔뜩 겁먹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는 자기가 나서야겠다고 생각을 했나봅니다. 우리딸이 저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크거든요.

"난 처음에 반짝이는 까만눈의 생쥐가 참 귀엽고 예뻐서 엄마를 부른건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 하니깐 나도 무서워지잖아."

으잉! 뭔소리? 쥐를 쉽게 보지 못한 딸아이는 아마도 생쥐를 햄스터정도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딸아이가 제 아빠를 닮아서 쥐가 예쁘다고 하네요. 남편은 쥐가 귀엽다는 사람이거든요. 계속 내가 쥐를 찾아내서 잡아야하지만 정말 겁도 많이 나고 쥐가 귀엽다고 말하는 딸에게 마지못해서 잠자리채를 줍니다. 아니 얼른 줍니다. 전 정말 얼굴이 사색이 다 되어 있었으니깐요. 심장박동 소리는 왜 그리 크게 들리는지….

겁먹은 엄마 때문에 용감해진 딸아이가 박스를 툭툭 건드리다 못해 이젠 구석구석 찔러봅니다. 숨어 있던 녀석이 견디다 못해 박스 위로 모습을 보입니다.

"혜은아! 쥐가 물탱크에 올라가면 안돼! 그리 못가게 어떻게 해봐"

겁먹은 상태에서도 쥐가 혹시나 물탱크로 올라갈까봐 딸에게 다급하게 말을 해놓고는 멀찌감치 도망가 서 있습니다. 다행히 녀석이 이번에는 계단 밑으로 내려옵니다. 녀석이 갑자기 뛰어내려오는 바람에 딸과 저는 또 한차례 녀석과 서로 위치바꾸기에 바빴습니다.

우린 우리대로 놀래서 가슴이 두방망이질치고 녀석은 쫓기는 입장에서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을 겁니다. 녀석은 다시 계단 한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번엔 제가 잠자리채를 빼앗아 들고, 아래쪽 계단에 있는 쥐를 향해 다시 벽도 두들겨 보고 계단도 두들겨 봅니다. 어떻게든 계단 아래로 내려가주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열심히 두드려 봅니다. 한바탕 대결을 하고 난 뒤라 녀석도 지쳤는지, 겁을 잔뜩 먹고는 한 층씩밖에 내려가질 못합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해서 간신히 이층까지 내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녀석이 더 이상 내려 가지 않고, 한쪽 귀퉁이에서 숨을 헐떡이며 똥까지 싸면서 버팁니다.

큰일났습니다. 아무리 벽을 치고 계단을 두드려도 꼼짝을 안 하니 정말 큰일입니다. 이젠 기싸움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노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생쥐의 눈이 예쁘네요. 촉촉한 그 눈망울에 제맘이 녹아듭니다. 딸아이는 재미있는지 뒤에서 낄낄거립니다. 저와 생쥐만 서로 잔뜩 겁먹은 상태로 대결 중이고, 딸은 이미 이 재미있는 대결에 관중으로 있습니다.

"야아~~ 빨리 내려가~~아~~."

엄마 목소리가 애원조라고, 딸아이는 말합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쥐라는 놈에게 정말 사정하고 애원했습니다. 딸아이가 물을 한 컵 떠옵니다. 숨을 헐떡이는 생쥐가 가엾다고 생각을 했는지 물을 떠옵니다. 그보다 더 목이 타고 가여운 엄마가 옆에 있는데, 엄마는 안중에도 없나봅니다. 물을 보는 순간, 물을 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물 이리줘봐 !"
"안돼! 불쌍하잖아 뿌리지마!"
"야! 불쌍한 것은 지금 엄마야!"

물을 빼앗아 조금 뿌려봅니다. 아뿔싸! 그냥 놔둘 걸.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녀석이 놀라서 다시 위로 후다닥 올라갑니다. 나의 비명과 딸아이의 비명이 허공을 찌릅니다. 다시 한 번 위치가 엇갈리는 순간이었으니깐요. 서로 위치바꾸기를 하면서 거의 초주검 상태로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오늘따라 우리 빌라에 아무도 없나봅니다. 이제 거의 실신지경이라 전 포기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딸아이가 쫓아 들어오면서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엄마! 나 어떻게 밖에 나가?"
"넌 쥐가 예쁘다며? 그냥 나가면 되지!"
"예쁘고 귀여운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하니깐 나도 무서워지잖아!"
"몰라! 엄만 이제 못해! 이러다 내가 심장마비 걸릴 것 같아"

갑자기 전화벨이 울립니다.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딸아이가 아빠일 것이라고 합니다. 엄마가 하도 덜덜 떨고 그래서 아까 아빠한데 전화했는데 안 받았답니다. 정말로 남편입니다.

"어! 왜 전화했어?"
"어떻게 해? 있잖아, 쥐가 밖에 계단에 있는데 나 어떻게 해?"
"살아있는 쥐? "
"그래! 살아 있는 쥐지 인형쥐 보고 내가 이럴까?"

남편이 막 웃습니다

"뭐가 무서워. 쥐 예쁘잖아!"

에구 그 딸의 그 아빠인지, 그 아빠에 그 딸인지 세상에 쥐가 이쁘다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아까 본 촉촉히 젖은 까만 눈망울이 예쁘긴 했습니다.

"알아서 해라!! "

남편은 재미있다는 웃음만 보내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 이 막막함!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때 딸아이가 생각이 났는지 101호에 전화해보랍니다. 거기에 같은 학교 3학년 남학생이 살고 있는데, 아까 그 오빠가 친구들하고 들어가는 것 봤다고….

그 오빠들에게 부탁을 하잡니다. 그래도 남자인데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해보니 그 남학생이 전화를 받습니다.

"저기, 여기 401호인데 엄마 안 계세요?"
"네. 안 계시는데요!"
"저기요 학생 용감해요?"
"왜요?"(아마도 이 무슨 뚱딴지 소리인가 하는 목소리입니다)
"저기요 쥐가 계단에 있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해줄 수 있어요?"
"아! 그럼 쥐만 쫓아내면 되는 거예요?"
"네. 그렇게만 해줘요."

남학생이 올라옵니다. 쥐고 있던 잠자리채를 건네주고 우린 얼른 문을 닫고 들어왔습니다. 현관 모니터를 켜놓고 남학생이 쥐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딸아이와 저는 배를 잡고 거의 뒹굴어가면서 웃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지…. 아마도 아까 우리 모습도 저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웃음이 납니다. 누가 보고 있었다면 그 사람도 아마 배꼽이 빠져라 웃었을 것입니다. 한참 오르락 내리락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고 난 뒤, 현관문을 남학생이 두드립니다.

"쥐 잡았어요! 그런데 잠자리채가 부러졌어요."

잠자리 망안에 기절했는지 축처진 녀석이 담겨 있고, 남학생은 미안한 표정으로 잠자리채가 망가졌다고 걱정합니다.

"에구 괜찮아요 부러져도…. 제발, 그 놈만 밖에 멀리 갖다 버려주세요!"
"알았어요!"

남학생은 계단을 내려가며 잠자리채 안에 든 생쥐에게 주먹질을 합니다. 그 남학생도 쥐와의 실랑이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저녁 때 아빠가 돌아오자 딸아이는 제 엄마가 덜덜 떨던 모습을 실감나게 다 말합니다. 아빠도 웃고 집에 없었던 아들도 재미있다고 웃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용감한 엄마의 약점이 드러난 하루였습니다. 약점은 들켰지만, 그래도 녀석 때문에 우리 가족은 어제 하루 웃음꽃이 피었으니 녀석이 행복을 주고 간 셈입니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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