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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낙동강 나루터에서 풍년을 기원했던 제사의식에서 유래된 원동 가야진용신제
그 옛날 낙동강 나루터에서 풍년을 기원했던 제사의식에서 유래된 원동 가야진용신제 ⓒ 전영준

‘화합과 번영’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문화제는 ‘만고충신 박제상 행차재현’을 시작으로 열린 사전행사에 이어 ‘양산사찰학춤’과 ‘양산시립예술단’ 공연으로 펼쳐진 개막식 그리고 ‘원동가야진용신제’와 ‘웅상농청장원놀이’ 등 지역의 무형문화재 공연 등이 차려진 문화행사가 공식행사였고, 이밖에도 각종 부대행사와 체육행사로 엮어졌다.

여기서 잠깐 양산문화의 모태인 삽량문화를 더듬어 올라가 보자.

삽량이란 저 멀리 아득한 1,600여 년 전, 신라 눌지왕 2년(서기 418년)부터 경덕왕 16년(서기 757년)까지의 340여 년 사이에 불려온 양산의 옛 이름이다.

삽량은 당시 신라 수도인 경주를 에워싼 경ㆍ남북의 중동부 지역을 관장하였고, 여기에서 발아한 삽량문화는 지난날 그리도 찬란했던 천년신라문화를 꽃피우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영남문화의 텃밭이었으니,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은 삽량주의 풍광을 절창의 노래로 읊조리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리하여 세인들은 삽량, 곧 양산을 일러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렀다 했던가.

이런 삽량문화의 연원을 짚어 오르자니 박제상이라는 한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늘의 삽량문화제가 대아찬 충렬공 관설당 박제상공이 보여준 충효정신과 불교의 자비정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박제상공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후예로 신라 파사왕의 6세손이다. 내물왕 8년(363)에 양주 효충마을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물품 파진찬이며 삽량주의 간(干ㆍ고대 부족사회의 족장을 호칭하는 말)으로 있을 때 지혜와 용맹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던 왕의 두 아우를 구출하기 위해 먼저 고구려에 가 있던 복호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혼을 구출해 내었으나 자신은 일본에 잡혀 심한 고문 끝에 불에 타 죽었다.

이때 박제상의 부인 김씨는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으니 그 몸이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고 그 영혼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새가 날아가 숨은 곳이 은을암이라 하는데 경북 경주시 외동읍 치술령 아래에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그 후 왕은 박제상의 딸을 미사흔의 부인으로 삼고 박제상에게는 대아찬을 추증하고 김씨 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하였으며, 사당을 지어 그 뜻을 기리는 제를 봉행토록 했으니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선생의 영정은 상북면 효충마을 효충사에 있다.

이에 오늘의 삽량의 후예들은 박제상공의 뜻을 기리어 박제상 왕제구출장면을 재현하여 매년 삽량문화제 행사 때마다 이를 극으로 시연하니 이번 제18회 삽량문화제 역시 ‘만고충신 박제상 행차재현’으로 막을 연 것이다.

박재상공 납시오

위쪽 지방은 한파주의보가 내렸다지만, 다행히 삽량문화제가 열린 10월 2일과 3일 이틀 양산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여서 시민들의 행사장 나들이가 가볍고 신났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막식에 앞서 펼쳐진 사전행사는 왕(눌지왕)의 동생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신라시대의 충신이자 대표적 양산 인물인 충렬공 관설당 박제상공 행차재현으로 시작됐다.

화려한 옛 의상으로 당시의 인물을 묘사한 행차행렬(양주중학교 학생들)이 양산공설운동장 보조경기장에 마련된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 특설무대 쪽으로 나오면서 지난 역사를 재연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하여금 만고충신의 충절을 마음에 새기며 옷깃을 여미게도 했다. 그 뒤를 뒤따른 사물놀이는 그 자리에 함께한 시민들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했다.

사물놀이의 여운이 잦아지자 전시행사장인 실내체육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림전시, 사진전시, 꽃꽂이전시 등 여러 볼거리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50년대 양산마을 풍경.

면사무소 등 옛 양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보는 이들을 잠시 50년 전 역사 속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린이들은 옛 양산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는 듯 놀라워했고 어르신들은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지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내 솜씨 어때요?
내 솜씨 어때요? ⓒ 전영준
전시행사장 바깥에 있는 체험행사장은 사람들이 가장 북적거리는 곳. 양산제일고 학생들이 얼굴에 귀여운 그림을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 코너에는 아이들이 몰려들어 서로 자신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야단이었다. 개구쟁이들을 달래가며 그림을 그려주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연신 환한 미소가 걸렸다.

'전통도자기 현장체험 코너'에서는 어린 아들에게 멋진 도자기를 만들겠다고 큰소리 친 한 젊은 아버지가 이상한 모양의 도자기가 나온 것을 보고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아이는 '그것도 못 만드냐'는 듯 헤실헤실 웃어댔다.

바로 옆은 우리 축산물 시식코너.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우리 축산 농가를 살리기 위해 준비된 행사로 우유와 고기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며 앞으로 국산 농ㆍ축산물을 이용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었다.

전국학생성악콩쿠르, 전국청소년 오케스트라축제 등 전국행사도 '눈길'

특히 이번 문화제에서는 양산 출신 성악가 엄정행 경희대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제2회 엄정행 전국학생성악콩쿠르'와 양산이 낳은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을 주제로 한 '제1회 전국청소년 오케스트라축제' 등 전국 규모의 행사가 함께 곁들여져 전국에 양산을 알리는 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음협 양산지부(지부장 박우진) 주관으로 지난 해에 첫 대회를 연 '엄정행 전국학생성악콩쿠르'는 평소 성악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음악 꿈나무들에게 무대경험과 자기표현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기량이 뛰어난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등 음악교육의 발전과 지역문화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행사의 하나.

전국 초ㆍ중ㆍ고 및 대학의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번 콩쿠르는 1백여명의 학생이 참가해 삽량문화제 개막 전날 하루 종일 열띤 경쟁을 벌여 부산의 김대근(경성대 음악학과 4) 학생이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 중에 '조국의 적'으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고등부 금상은 박소영(부산예고 3) 학생이 '고향의 노래'로, 중등부 금상은 고등부 금상 수상자와 이름이 갈은 박소영(부산예중 2) 학생이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으로 수상했다.

또 초등 저학년 부문에서는 이민희(화명초 3) 어린이가 금상을 차지했으며, 초등 고학년 부문에서는 배진영(동산초 5) 어린이가 금상을 수상했다.

올해 처음 갖는 '전국청소년 오케스트라축제'도 눈길을 끌었다. 삽량문화제 개막일인 2일 낮 12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펼쳐진 이번 청소년오케스트라축제에는 멀리 강원도의 삼척시청소년오케스트라를 비롯해 경기도의 성남청소년오케스트라와 동두천청소년오케스트라, 대전의 대전평송청소년오케스트라 그리고 부산의 YMCA청소년오케스트라, 소년의 집 관현악단, 해운대구청소년오케스트라 등 7팀과 우리 양산의 양산유스오케스트라가 참가했다.

각 참가단의 우열을 가리기 보다는 축제에 비중을 두었던 이번 행사에서 심사위원(위원장 김원명 경성대 교수)들은 대상 한 단체만 뽑고 다른 참가팀은 등수를 매기지 않았는데 이날 대상의 영광은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에 돌아갔다.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문화예술회관 언저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ㆍ중ㆍ고 학생들이 문화예술회관 언저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전영준

아침부터 박제상을 추모하는 초ㆍ중ㆍ고 휘호대회와 한글백일장, 그리고 사생대회에서 미래의 양산을 떠맡을 꿈나무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다듬고 있고, 오후 3시에는 춘추공원에서 서제를 올리는 사이 주 행사장인 공설운동장 일대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삽량문화제 첫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각종 공연. 부드럽게 선을 그려가며 너풀대는 양산사찰 학춤의 춤사위에 홀린 듯 관객들은 무용수들의 몸짓 하나 하나에 눈을 떼지 못하고 양산시립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과 시립관악단의 사위를 압도하는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질 때는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문화마을 들소리가 천지개벽이라는 주제로 펼친 대북공연을 보는 구경꾼들은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전해 오는 북소리의 진동에 감동하고 "북채로 북을 내리치는 손동작이 도저히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양산이 자랑하는 성악가 엄정행도 만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삽량문화제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가 싶을 즈음 삽량문화제를 성원하기 위해 찾아온 안팎의 손님들에 대한 소개와 축시, 축사가 이어지고 마침내 시민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합과 번영의 열린 음악회'가 열렸다.

엄정행ㆍ곽신형 듀엣의‘축배의 노래(오페라 La Traviata 중에서)'가 무대를 후끈 달구었다.
엄정행ㆍ곽신형 듀엣의‘축배의 노래(오페라 La Traviata 중에서)'가 무대를 후끈 달구었다. ⓒ 전영준

모던팝오케스트라가 깔끔하고 정갈한 음색으로 막을 연 이 무대를 통해 양산이 낳은 우리 시대의 명 성악가 엄정행 교수를 만나는 것은 양산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오 나의 태양(O’ Sole mio)'으로 고향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엄 교수는 곧 이어 소프라노 곽신형(한양대 교수)교수와의 듀엣 ‘축배의 노래(오페라 La Traviata 중에서)'로 무대를 후끈 달구었다. ‘향수’와 ‘가을편지’를 노래한 가수 이동원의 무대도 반가웠다.

여성댄스그룹 샤크라가 나와 청소년들의 환호성이 행사장을 마구 흔들어 놓는가 싶더니, 양산 제일고 출신 가수 혜령이 나오자 그 환호성은 극에 달했다. 혜령의 감미로운 R&B 음악에 이어 박상민이 ‘해바라기’와 ‘헬스클럽 아가씨’로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열린음악회는 청중들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화려한 불꽃놀이가 양산의 가을밤 하늘을 밝게 비추는 가운데 삽량문화제 첫날은 소리 없이 저물어 갔다.

삽량문화제 둘째 날은 아침 9시 육상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체육행사와 ‘원동가야진용신제 시연’과 ‘창원재즈오케스트라 공연’, 그리고 ‘양산농청장원놀이 시연’ 등의 문화행사가 펼쳐졌다.

축구, 배구, 테니스, 탁구, 게이트 볼 등 경기가 있는 곳마다 각 읍ㆍ면ㆍ동 별로 저마다의 지역선수들을 응원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체육행사 중에서도 특히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진행된 태권도, 씨름 등이 시민들의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주경기장 밖에서 열린 태권도 겨루기 장에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이 미리 자리를 차지해 둘러싸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공연장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씨름장에는 거구의 역사들이 상대 선수의 샅바를 붙잡고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의 역사들이 넘어갈 때마다 시민들의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고….

어이쿠, 넘어갔네!
어이쿠, 넘어갔네! ⓒ 전영준
옛날 낙동강 나루터에서 풍년을 기원했던 제사의식에서 유래된 ‘원동 가야진용신제’와 농경시대 생활상을 재구성한 ‘웅상 농청장원놀이’ 등 지역의 무형문화재 공연은 지역 문화제인 삽량문화제의 성격이 가장 잘 담겨진 프로그램이었다.

이곳저곳 분주히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문화제의 끝자락이다. ‘박제상 추모 무욕곡’ 공연에 이어 ‘PSB 유량극단 녹화’를 끝으로 ‘제18회 삽량문화제’ 대단원의 막이 닫혔다. 이번 삽량문화제는 찾아온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에 비추어 아쉬웠던 점 또한 적지 않았다.

우선 전체 55개 행사종목이 이틀밖에 안되는 행사일정에는 너무 과했다. 이들 행사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되고 기획사의 이벤트 식으로 진행돼 지역 고유의 이미지는 실종되고 인근 지역의 축제와 별 차별성도 없이 그저 요란하기만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체육경기 등과 같은 행사들을 문화제와 병행시킨 것도 무리였다. 행사시간표에 적힌 시간대로 진행되지 않아 시민들을 기다리다 지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더러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행사들도 상당수 있어 질 높은 문화행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또 먹거리 장터는 그렇다 쳐도 따로 읍, 면, 동별로 먹고 마시는 자리를 만들어 시민들이 오가는 통로를 가로 막는다든지 산만하고 난잡한 모습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양산은 20만이 넘는 인구의 80% 이상이 부산이나 울산 등지의 인근 대도시에서 이주해와 살고 있는 곳이라 양산에 대한 시민들의 애착과 소속감이 두텁지 못하다는 지적이 늘 있어왔다. 그러기에 잘 짜여진 향토문화제는 시민들에게 동질감을 심어주고 애향심을 고취시켜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을 터.

다행히 삽량문화제 제전위원회가 내년에는 문화제 명칭도 바꾸고 문화행사와 체육행사를 분리 개최하는 것을 포함해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새로운 모습의 문화제를 탄생시키기 위해 현재 연구 용역을 맡겨 놓고 있다니, 내년에는 뭔가 달라진 새로운 문화제, 양산의 정체성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문화축제가 되려나? 내년을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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