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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꽃이 있습니다. 오히려 맑은 물 위에서 활짝 피어 '과연 저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 꽃인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수련(睡蓮)'이라는 단아한 이름을 가진 꽃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국어사전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련과에 속하는 다년생 물풀. 못의 진흙 속에 뿌리와 땅속줄기가 있으며 여기서 긴 잎자루를 가진 잎이 나서 잎몸만 물 위에 뜸. 7~9월에 흰 꽃이 꽃가루 끝에 한 송이씩 피는데, 대개 3일간씩 피었다 졌다하고 아침에 피고 오후에는 오므라짐.'<민중서관 국어대사전>

지역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제주에서는 7월과 8월에 한창 피었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후 10월에 또 한차례 피어납니다. 그리고 날씨가 흐린 날이면 꽃을 열지 않고 잠을 자다가 햇살이 가장 뜨거운 낮에 피어나고, 해가 떨어질 즈음에 또 수면에 들어갑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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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에 뿌리를 내리고도 그 청아한 잎과 꽃에는 진흙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은 것은 마치 속세에 살았으면서도 속세에 더럽혀지지 않은 부처, 예수의 삶을 보는 듯합니다. 그 분들의 삶이 더욱 빛나는 것은 천상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화육(化肉)했기 때문입니다.

'수련'은 말 그대로 '잠자는 연꽃'입니다.
연꽃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 피어나는 곳이 같고, 생김새도 비슷하니 연꽃이 연상되기도 하는 꽃입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화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연등을 밝히는데 그 등의 모양이 연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라는 상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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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아주 먼 옛날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답니다. 여인은 너무나 가난하여 문전걸식하며 살아갔습니다. 여러 날을 굶은 그 날도 여인은 성안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는데 온 성안이 여느날과는 달리 북적거리는 것입니다. 연유를 물으니 왕이 부처님과 스님들을 대접하고, 밤에는 수만 개의 연등을 켜서 부처님께 바치는 준비를 하느라 북적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나도 부처님께 등불을 하나 밝힐 수 있다면….'

여인은 행인들에게 구걸하여 겨우 동전 두 닢을 얻을 수 있었고 가난한 여인은 등잔에 기름을 붓고 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등불은 다른 것들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죠. 밤이 깊어지자 등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여인의 등잔은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고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불평하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왕이여,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금은보화로 사는 것이 아니오. 늘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 왕의 수만 개의 등불보다 귀한 이유는 거기에 있답니다."


ⓒ 김민수
신약성서 누가복음서에도 이와 비슷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도 보셨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그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드렸다. 이 사람들은 다 넉넉한 가운데서 헌금을 드렸지만 이 여인은 매우 가난한 가운데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빈자일등'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동전 두 개라고 하는 것도 통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실한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 된 마음으로 드렸는가를 보는 것이죠.

애기수련(각시수련)
애기수련(각시수련)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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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속명은 님파에아(Nymphaeae)이며 그리스어 님페(Nymphe)의 영어명은 님프(Nymph)로 '물의 요정'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는 많은 요정들이 등장하는데 샘의 요정(나이아데스), 산의 요정(오레이아데스), 숲의 요정(아르세이데스) 등이 있으며 특별히 님프는 '물의 요정' 중의 하나입니다.

신화에 나오는 요정은 모두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 불로장생하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정들은 수렵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어울려 지냈는데 사랑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요정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친근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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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관련한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그리스에는 물의 요정 세 자매가 살고 있었단다. 어머니가 딸들에게 소원을 물으니 모두 물에서 살고 싶다고 했단다. 어머니는 큰 딸에게는 바깥바다를 지키는 여신이 되게 해 주었고, 둘째딸에게는 안쪽바다를 지키는 여신이 되도록 해주었단다. 그 중에 셋째딸이 가장 예뻤는데 그에게는 파도가 치지 않는 연못과 샘물의 여신이 되게 하였단다.

"어머니, 바다는 파도도 치고, 아침저녁으로 태양이 아름답게 물들이는데 저에게는 무엇으로 아름답게 해 주실 건가요?"

잠시 생각하던 어머니는 여름이면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해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샘물의 여신이 사는 곳에는 여름이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이 꽃을 '물의 요정'이라고 불렀단다. 이 꽃이 바로 수련이란다.

그러나 혼자서는 늘 외로운 법이니 어머니는 친구들을 보내주었지. 물의 요정의 친구들이 하나 둘 연못에 자리잡고 피어나기 시작했어. 그것이 연꽃, 부레옥잠, 순채 같은 꽃들이겠지. 오랜 시간이 지나자 수련이 예쁜 아가를 낳았는데 그 아가의 이름은 '애기수련'이란다.
ⓒ 김민수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
흙의 마음, 생명의 마음을 살포시 안고 있는 꽃이여

그 많은 흙 중에서도 햇살조차 맘껏 받지 못해
늘 축축한 흙이라고 천대 당하는 진흙에
이렇게 예쁜 마음이 있었구나

뜨거운 햇살 가득 담아
너의 모태 그 뿌리에까지 전해주려무나
<자작시-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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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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