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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엄마는 억지로 눈만 감은 채 잠들지 못하고 있다. 눈꺼풀이 작게 떨리고 있는 것이 '엄마'하고 작은 소리로 부르기만 해도 귀 어두운 엄마가 눈을 번쩍 뜰 것만 같았다.

엄마의 오줌 싸는 버릇 때문에 함께 잠을 자기 시작한 지 몇 해가 되었다. 엄마가 잠자리에 들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밤늦게까지 이것저것 검색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또 요즘은 얼마 전 동생에게 배운 인터넷 고스톱 게임을 하기도 한다.

며칠 전, 해야 할 컴퓨터 작업이 있어 난 그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지 엄마는 책상 옆 침대 한 켠에 앉아 한참동안 나에게 참견도 하고 말도 시킨다. 하던 일에 빠져 있던 난 엄마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을 하고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참견을 하여 일을 방해해도 내가 놀아주지 않자 심심해진 엄마가 스스로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훤한 불빛에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잠자고 싶지 않은 엄마와 놀아주어야 했지만 시간 내에 해야 할 일이 있었던 난 멀뚱히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작업을 하면서도 엄마를 곁눈질하며 보고 있던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러다 또 밤새 잠 안자고 나를 괴롭히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치매에 걸린 뒤부터 엄마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고 낮이든 밤이든 '집에 데려다 달라'며 조르는데 얼마 전에는 밤새도록 집으로 가자고 한 시간에 한 번씩 잠을 깨우며 나에게 '잠고문'을 하였던 것이다. 일주일 가량 시달리다보니 해야 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몸무게도 3킬로그램이나 빠지고 체력도 떨어져 지치기까지 하였다.

난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지금 잠이 들지 않으면 '잠을 놓친' 엄마와 나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터였다. 불을 끄고 나도 잠을 잘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야 될 일이 마음에 걸렸다.

난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스탠드를 켰다. 그러나 책상이 침대와 가까이 있기에 스탠드를 켜도 불빛이 엄마의 얼굴을 고스란히 비추어 엄마의 숙면을 돕지는 못했다.

엄마의 눈까풀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안 오는 잠을 눈을 감고 억지로 청하고 있는데 작은 기회라도 생기면 눈을 뜰 것 같아 난 조마조마한 마음 뿐이었다.

귀가 어두워 큰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가 어떤 때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황당한 경우가 있어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잠 못 이뤄 뒤척이는 모습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엄마가 잠 들 수 있도록 우선 방의 불을 껐다. 방 안이 깜깜해지자 컴퓨터의 모니터는 상대적으로 너무 환하게 얼굴을 비추어 난 눈이 부셔 화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일이 속도감 있게 진행 되지를 않는 것이다.

일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아예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얼마 전 동생으로부터 전수받은 온라인 고스톱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평소 '게임을 뭐 하러 하느냐' '하더라도 잠깐 머리 식힐 정도만 하고 자기 절제가 되어야 한다'라며 게임을 비생산적인 일로 치부해왔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온라인 고스톱의 재미에 폭 빠져 있던 동생을 참견하다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는지' 나도 한번 해보자며 동생에게 전수를 받았던 것이다.

직접 경험하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조금쯤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소위 아무런 생각도 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승부에 따른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게임을 하는 시간만큼은 그 속에 몰입되어 복잡한 생각도 모두 잊을 수 있기에 사람들이 게임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스톱의 심오한 원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내가 온라인 고스톱을 몇 번하며 자신감을 갖게 되자 오프라인(?)에서 고스톱을 잘 한다고 자부하는 친구에게 '온라인 실력과 오프라인 실력을 한번 겨루어보자'고 너스레를 떨어 한바탕 웃기도 하였다.

온라인 고스톱을 하기 위해 로그인을 했다. 화면이 뜨자 형형색색의 화투 화면으로 눈이 더욱 부셨다. 화면을 그대로 보고 하자니 머리를 식히기는커녕 난시인 내 눈의 피로감이 더 할 것 같았다.

눈이 아파 몸을 뒤로 젖히는 순간 책상 위에 있던 무엇이 눈에 띄었다. 선글라스였다. 난 얼른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모니터를 보았다. 눈이 부시지도 않았고 게임을 하는 데는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

깜깜한 방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고스톱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책상 위의 거울로 들여다보고 킥킥대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깊은 잠이 들기 시작했는지 엄마의 편안한 숨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엄마도 잠을 재우는 데 성공했고 나 또한 컴퓨터를 계속할 수 있게 되어 선글라스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이때 동생이 들어왔다. 불이 꺼져 있어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색안경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웃는 것이다.

선글라스가 한낮에 햇볕만 가려 줄 뿐만 아니라 한밤중 컴퓨터 모니터의 빛도 가려 주는 역할에 전기까지 절약을 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특허라도 내야 한다며 함께 한참을 웃었다.

치매 엄마와 살다보면 곤란하고 힘겨운 여러 가지 일들이 자주 생긴다. 그렇게 매 순간 겪고 있는 소위 '짜증나는'일들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는 짜증을 내고 있지 않다.

성질 고약한 내가 유난히 엄마에 대해서만 관대한 이유는 엄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이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짜증과 불만으로 받아들인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까 하는 '나를 위한 배려'의 마음도 있다.

엄마 때문에 생기는 그 어떤 일도 '나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넘어가니 즐거운 해결 방법이 생기는데 하물며 엄마를 잠재우기 위해 불 끄고 컴퓨터 하는 방법의 개발쯤이야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얼마 전, 엄마는 집에 간다며 강아지 복순이를 등에 업는 엽기적인 일이 있었는데 나 또한 오밤중에 선글라스를 끼고 온라인 고스톱을 치는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엄마에 그 딸'로 우리는 '꿍짝'이 맞는 모녀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 엄마와 살다보며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다. 아마 앞으로도 엄마와 딸이 펼치는 엽기시리즈는 쭉 계속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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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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