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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 901번지엔 마당보다 넓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가천마을 901번지엔 마당보다 넓은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 서정일
경남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 마을에 가면 유명한 암수바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암미륵 숫미륵'이라 부르며 자식이 없는 사람이 제를 지내면 옥동자를 갖게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명바위가 있는데 바로 901번지 송수레(81) 할머니집 앞마당에 내려 앉은 '마당바위'가 그것이다.

남해 가천마을은 암수바위와 다랭이 논밭으로 일찌감치 알려져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앵강만이라는 천해의 바다에 자리하고 있는 가천마을은 배 한척 없이 농사만으로 살아가는 60호 가구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다. 하지만 '다랭이 체험'이라는 테마를 갖고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는 등 비교적 앞서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송수레 할머니(81)
송수레 할머니(81) ⓒ 서정일
"내가 시집올 때부터 있었어. 열일곱살에 시집 왔으니 60여년도 훨씬 넘었구만. 이 집도 할아버지가 살던 집이었으니 원래 이 바위가 자리한 곳에 집터를 잡고 살았을 거구만."

마루에서 볕을 쬐고 있던 송 할머니는 집안에 이렇게 큰 바위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에 특별한 대꾸 없이 그저 간략하게만 설명했다.

"예전엔 이 마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도회지로 나가서 줄어 들었지. 저 아래에 가 봐, 미륵이 있어. 암수미륵인데 그곳에 사람들 많이 찾아오거든. 구경할 만하니 어여 가봐."

마당에 있는 바위는 대소롭지 않다는 듯, 아니면 남에게 보이면 안되는 보물인 듯 어서 내려가보라는 말만을 남기고 송 할머니는 먼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쓸쓸해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하고 묻자 이미 20여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이 바위를 참 소중히 여겼었는데 사람들이 영스런 이 물건을 깨서 버릴 생각들을 했었다면서 서운한 듯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게 된 사연을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다.

"사실 마당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런 애물단지를 누군들 그런 생각을 안 했겠어? 어느 날엔가 마당도 넓게 사용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깨서 버릴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날 밤 신기하게도 내 꿈에 하얀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치마로 바위를 감쪽같이 숨겨버리는 것이 아니여. 한 30여년도 넘은 얘기구만. 그래서 보통 바위가 아니라 영험한 바위라 생각되어 제도 지내고 그러는데. 아직도 화가 안풀리셨는가 봐. 아무튼 언제부턴가 이 바위는 저 아래 암수미륵의 기운이 비쳐서 만들어진 바위라고들 사람들이 말하지."

송 할머니와 바위는 서로를 지켜 주고 보살펴 주는 친구 이상의 존재다.
송 할머니와 바위는 서로를 지켜 주고 보살펴 주는 친구 이상의 존재다. ⓒ 서정일
할머니의 말이 끝난 후 그런 사연이 담겨진 이 바위는 어떤 바윈가 하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형상은 두꺼비 모양을 닮은 듯, 넓적하면서 평평한 마당 같은 모양새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형상의 의미와 뜻에 걸맞게 넓고 비범함을 간직하고 있는 보통 바위 같지 않은 그런 영물처럼 느껴졌다.

"화 푸시고 모든 사람들 평온하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지."

마당바위 앞에서 무슨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짧은 어조로 답하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다시 한번 바위 주위를 살피려 몸을 움직이는 송 할머니. 그 간절한 마음만큼 할머니가 건강하고 큰 복 받으시길 마당바위에 목례로 빌면서 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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