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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추석 전날 한수형님네 집에서 열린 윷놀이(아, 낙이면 다 무효당게)
ⓒ 김도수
“아, 낙이면 던진 윷은 무조건 다 무효잉게. 내 말은 살아있어야 맞어.”
“아니당게요. 말을 잡았응게 한 번 더 윷을 던진 것 아니요. 긍게 잡은 말은 죽은 게 맞아요.”
“아, 진뫼마을 방식대로 히야제 객지에서 허는 법대로 허먼 되가디. 고향에 오면 고향 법을 따라야제. 낙이면 다 무효인것여. 에이, 글먼 죽었다고 허고 윷 던져라. 삼촌이 너그들 용돈 준다 생각허고 이 판은 걍 져줘 불란다.”

추석 전날 오후 고향 진뫼마을 맨 윗집 한수형님네 집 마당에서 한수 형과 셋째 아들인 세일이가 한 조가 되고, 한수 형 조카인 우길이와 아들이 한 조가 되어 윷놀이를 하고 있다.

외삼촌 대 조카의 한판 승부는 한수 형 쪽으로 윷판이 기울어 조카 조가 이길 확률이 거의 없어보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막판에 던진 윷이 ‘모’가 나오면서 일을 내기 시작해 서로 옥신각신 싸우고 있는 것이다.

▲ 아빠, 나 잘 했지요?
ⓒ 김도수
한수 형의 판은 이미 세 개의 말이 나고 마지막 한 개의 말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모’를 던졌으며, 다시 던진 윷이 ‘걸’이라 한수 형의 마지막 가는 말을 잡고 만 것이다. 상대편 말을 잡아 승부가 역전되어 곧 끝날 것 같던 윷판이었다. 그러나 말을 잡고 다시 던진 윷이 멍석 중앙에 그려진 말판 중앙선 아래쪽으로 윷가락 한 개가 떨어지는 바람에 반칙인 ‘낙’이 선언되었다.

“낙이 되어 무효가 되었으니 잡은 말은 다시 살려 놓아야 한다”, “말을 잡고 다시 놀았으니 죽은 말을 죽어 있는 게 맞다”며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옆에서 보던 구경꾼까지 가세해 윷판은 더욱 시끌벅적해 졌다.

서로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 보니 구경꾼끼리도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 쉽게 결론이 나질 않는다.

제주도에서 온 태금이 동생도 도착하자마자 윷판으로 달려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일단 상대편 말을 잡았응게 다시 놀지 않았습니까? 그렁게 잡은 말은 죽은 것이 맞습니다”라고 거들자 한 수 거든다.

한수 형은 “우길이 아들놈은 어쩌서 막판 고비 때 한 사리를 히야꼬 이렇게 난리가 나게 헌다냐”며 껄껄 웃는다.

▲ 여기서는 내가 꼭 한 사리 해야되겄제?
ⓒ 김도수
조가 다시 짜여지고, 이번에는 선∙후배들끼리 짝을 이뤄 윷놀이를 계속한다.

“이번에는 니가 꼭 뙈(도)를 해서 잡아야 헌다. 그라니먼 두 사리를 히불덩가.”
“아이고메! 요것이 뭐시다냐, 나오란 뙈는 안 나오고 뭔 놈의 사리가 나와분데아. 허허, 윷까지. 암놈 수놈 오늘 다 히붕고만.”

추석 명절에 고향을 찾는 이유는 고향 친구들과 술 한 잔 나누며, 고함치며 떠들어대는 재미로 모이는 것이 아닐까.

▲ 고향 산마루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
ⓒ 김도수
강변마을 산마루에 둥근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마을 앞에 있는 모정에 나가보니 깨복쟁이 친구 현호가 아들 민식이와 함께 보름달을 구경하고 있다.

▲ 아빠, 달 참 예쁘다(내 친구 현호와 아들 민식이)
ⓒ 김도수
‘민식아, 아빠 고향마을에 뜬 보름달 네 가슴에 안고 서울로 올라가거라. 밀린 차량 행렬 속에서도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빈 집에 달려오는 너희 아빠가 무척 자랑스럽지 않니? 서울에서 편안하게 차례상 차려 놓고 고향에 안 내려 올 수도 있지만 너희 아빠는 꼭 고향마을로 내려와서 명절을 쇤단다. 민식이 네가 커서 아빠가 왜 그토록 고향에 내려와 명절을 쇠는지 너도 알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너희 할아버지께서 추석이 돌아오면 겨울 잠바와 검정 고무신, 양말 한 켤레를 아버지께 선물로 사주시던 그 어린 시절이 떠올라 아버지는 서울에서 추석을 쇠지 않고, 꼭 고향마을로 내려온단다. 추석날이면 너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강 건너 평밭 위에 두둥실 떠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서울로 올라가곤 한단다.’

▲ 산소 가는 길
ⓒ 김도수
지금 고향마을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다 떠나고, 늙은 노인네 몇 분 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추석을 맞이한 마을은 찾아온 이들의 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집집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시끌벅적하니 오랜만에 사람 사는 마을 같다.

추석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뒷산 선산에 성묘하러 가는 간다. 번질거리던 산길은 이제 숲이 되어 가는 길이 험하다. 노인네들만이 사는 고향 마을 산길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다 막혀 버렸다. 벌초하러 가는 길은 따로 길을 내야 할 것같다.

“아빠, 몇 번을 왔는데도 숲이 우거져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어디쯤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는 아침 일찍 큰 집 식구들이랑 함께 오면 좋겠어요.”

▲ 강변에서 소꿉놀이 하는 아이들
ⓒ 김도수
아빠를 따라 고향마을에 찾아온 도시 아이들, 강변에 나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여보, 밥 해 놓았으니 어서 식사 하세요.”
“응, 벌써 밥이 다 되었구먼. 그럼 식사해야지.”
“오늘은 고기국도 끓이고 반찬도 많이 준비했어요.”
“여보, 수고 했어요. 함께 식사합시다.”

현석이와 현근이 아들과 딸들이 강가에 나와 모래알로 밥해놓고, 돌 위에 조그마한 돌을 올려 반찬을 차리며 ‘밥짓기’ 소꿉놀이를 한다.

아이들 대화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있으니 어릴 적 소꿉놀이 하던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 다시 한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옛 향수에 젖어본다.

▲ 형, 많이 잡혔어?
ⓒ 김도수
큰 집 조카인 병석이와 내 아들 민성이가 그물망을 가지고 강가로 달려 나온다.

“형, 고기 많이 잡아줘.”
“야, 큰 고기는 이 그물망으로는 못 잡아. 조그마한 고기는 잡을 수 있으니까 많이 잡아줄게.”
“야, 몽땅 잡혔다.”

얕은 물가에서 그물망을 들고 송사리를 잡던 병석이 조카가 미끄러운 돌에 넘어졌는지, 물 속으로 풍덩 빠져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다. 옷이 다 젖어 춥게 보이는데도 조카는 계속 송사리를 잡아 민성이에게 주고 있다.

▲ 연탄 보일러, 멈춰선지 오래고
ⓒ 김도수
추석이 돌아오자 오랜만에 두메산골 작은 강변마을에 활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불 켜진 집들 사이에 불 꺼진 집들을 기웃거려 보면 사람이 떠난 곳이라 마당에는 풀들이 우거지고 집은 한쪽으로 기울어 곧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사람 떠난 빈 집은 너무 쓸쓸하기만 하다.

옛 집 그대로 단단하게 서있는 어느 빈집에 들어서니 연탄보일러가 눈에 띄고 동지섣달 긴긴 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지게를 짊어지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해 날리던 땔나무가 뒤란 한 켠에서 곰삭아 가고 있다.

곰삭아 가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족들을 위해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셨을 아버지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며 곰삭은 나뭇가지마다 아직도 아버지 땀 냄새가 짙게 배어 내 코를 찌른다.

언젠가는 곰삭은 저 나무도 이 집 부엌에서 활활 타오르며 연기가 솔솔 피어나는 날이 있겠지.

▲ 알알이 잘 여물어 말리고 있는 옥수수, 튀밥을 튀려나 보다
ⓒ 김도수
추석날 오후,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들 서서히 빠져나가며 고향마을은 또 다시 텅 비어간다.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나 객지에서 추석을 쇠는 사람들 모두다 고향마을 산마루에 떠오른 둥근 보름달을 가슴에 품어, 넉넉하고 풍요로운 삶이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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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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