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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1분>
책 <11분> ⓒ 문학동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파울로 코엘료만큼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소설가도 없을 것이다. 그의 책은 신비주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감수성과 철학을 담고 있어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특히 <연금술사>의 경우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연금술사>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느낌과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돋보이는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도 꽤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하지만 그의 새 소설 <11분>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평가와 반응이 따르고 있다. 기존 코엘료 소설에 비해 너무 저속하다는 반응이 그 부정적인 평가들이다. 주제가 '한 창녀의 성적인 관계들을 통한 자기 발견'이기에 그의 소설이 고급스럽기를 소망하는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저자 또한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쓰고 있던 이 책의 주제가 미묘하고 껄끄러우며 충격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마음에 걸렸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그가 꼭 쓰고 싶었던 주제이기에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글을 쓰느냐'에 머무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는 그가 가장 정직하게 얘기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책의 시작은 "옛날 옛적에 마리아라는 창녀가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잠깐 '옛날 옛적에'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줄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반면, '창녀'는 나이든 자들의 용어다. 어떻게 이렇게 명백한 모순을 이제부터 들어갈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린 삶의 매 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 발은 나락 속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으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도록 하자."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마리아라는 한 여성이 20대 시절에 겪는 온갖 방황과 정신적 성숙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사랑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모험을 찾아 스위스로 떠나는 마리아. 그녀는 스위스에서 댄서로 일하고 또 창녀의 길을 선택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은 20대 여성의 혼란스러운 자아 찾기를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남자가 왜 여자를 사는지 알 것 같다.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오르가슴만을 위해 천 프랑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나 역시 그렇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무도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 (중략) 그러니까 내가 얼마 동안 창녀가 되기로 결심한다고 해서 잃을 것이 뭐가 있는가?"

이렇게 시작한 그녀의 생활은 매일 밤 자신의 성(性)을 남자들에게 파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성 매매 차원을 떠나 마리아에게는 삶의 의미와 인생살이의 진실을 깨닫는 과정이 된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을 통해 삶을 읽고 두려움을 읽고 인간을 읽는다.

"제네바에 도착한 이후로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자신이 세상과 자기 삶의 주인인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보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아내에 대한 공포, 돈을 주고 산 창녀 앞에서조차 발기가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진짜 수컷으로 보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

그리고 인간이란 외로움을 참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외로움 때문에 창녀를 사고,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힘들게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고통을 참고 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 땅 위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는 전제를 극복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런 걱정들이 부질없음을 느끼고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녀가 추구하는 진정한 자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믿음 아래.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랑은 이미 많은 여자들을 겪으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한 한 화가다. 그는 마리아에게서 '빛'을 느꼈다는 고백으로 접근한다. 통속적이고 식상한 이 고백에 그녀는 그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솔직함에 빠져든다.

"과거에 그것이 성스러웠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짓이 혐오스럽다. 그것은 내 영혼을 파괴하고, 나 자신과의 접촉을 방해하고, 아픔이 하나의 보상이라고,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 정당화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중략)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내가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아직도 몇 주를 더 버텨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정상적인 일로, 내 인생의 한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길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잊고 싶다. 난 사랑을 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사랑만이 필요하다. 잘못 살 사치를 부리기에는 삶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다."


'사랑은 없다'고 단언했던 회의주의자 마리아는 자신을 사랑하는 화가를 만나면서 성을 팔고 영혼을 팔았던 자신의 삶이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스위스를 떠나 브라질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물론 화가를 떠나면서 새 삶을 찾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알았기에 사랑을 떠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온 화가를 만나면서 기쁨의 재회를 하고 사랑을 떠나서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끝이 나는 결말은 성적인 관계들을 가지면서도 사랑을 믿지 않았던 한 여인의 삶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섹스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것이 중요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수천 권의 책들 중 상당수에는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만난다.

늘 서로 소통하는 영혼, 머나먼 나라, 모험, 고통, 근심이 문제였다. 하지만 '친애하는 신사 여러분, 여성의 몸을 더 잘 이해하려고 관심을 가져보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책들은 왜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진정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마리아의 독백은 사실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성에 대해, 그와 연관된 사랑의 복잡함과 인간의 외로움, 고통과 번뇌에 대해 우리들은 숨기고 산다. 그것을 낱낱이 밝혀 이야기하고 싶은 코엘료의 욕구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이 소설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반응만큼이나 작가는 여러 가지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자신의 개인적 감성과 표현들을 다양하게 늘어놓는다. 그 복잡다단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어느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기에, 우리들은 이 소설의 복잡한 표현들도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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