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계화도 어민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계화도 어민 ⓒ 김교진
그러나 아직도 갯벌을 '조개나 몇 개 파다 먹는 검은 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갯벌을 없애 농토를 만드는 일이 발전이라고 보아 무분별하게 갯벌을 메우는 짓을 하였다.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갯벌의 80%는 서해안에 있는데 1998년 해양수산부에서 펴낸 '우리나라의 갯벌'을 보면 1987년 이후에 사라진 갯벌 면적이 810.5평방km로, 이는 전체 면적의 29%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간척사업은 갯벌만 없애는 것이 아니다. 99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농어촌진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 등 공공기관과 당진군, 완도군 등 9개 자치단체가 20개의 간척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총 106.3km 길이의 둑을 축조하기 위해 150개의 산을 토취장으로 이용하여 이 150개의 산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깎여 나간 토취장의 면적은 서울 남산의 4배나 되는 1194만 제곱미터에 이르며 이 과정에서 채취된 토석량은 15t 트럭 483만대 분량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일찍 바다를 육지로 바꾸었던 네덜란드, 독일 등은 바다를 메운 것을 후회하고 이미 매립한 육지를 다시 바다로 되돌려 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데 왜 우리는 그들의 사례를 외면하는 것일까?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갯벌을 메우는 일에 열심이었던 일본에서도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을 재판부가 공사를 중지하도록 결정하였다고 한다.

해양연구소는 갯벌의 생산성은 육상 생산성의 최고인 논보다 무려 3배가 넘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미적 가치까지 따지면 5배가 넘을 것으로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박병상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의 대표는 "갯벌에서의 해산물 채취는 김을 매지 않아도, 비료와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며 "농한기도 없다. 이렇다 할 장비도 기술도 힘도 필요 없다. 맨손에 억척스러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의 사무실이 있는 계화도에 가서 그곳 어민인 염정우씨의 안내로 갯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맨발로 갯벌을 밟았을 때 그 느낌은 생각과는 달리 매우 좋았다. 갯벌하면 발이 푹푹 빠지는 진창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발도 빠지지 않았고 진흙이 발가락 사이에 닿는 느낌이 부드러워 포근했다.

계화도 어민들은 경운기를 타고 멀리 나가서 조개를 잡는다고 한다. 우리는 염정우씨가 안내해주는 곳으로 가서 '그레'와 손으로 조개를 잡아보기로 하였다.

풀꽃세상 회원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찾아보고 있다
풀꽃세상 회원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찾아보고 있다 ⓒ 김교진
우선 손으로도 조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염정우씨가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갯벌에 손을 깊이 넣어 더듬으면 조개가 잡힌다며 그가 갯벌에 손을 넣고 더듬기만 하면 조개가 잡혔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해보았으나 다른 사람들이 하면 조개는커녕 진흙만 움켜쥐고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그레를 이용하여 조개를 잡아 보기로 하였다. 이곳에서의 조개는 백합(Meretrix lusoria)이라고 한다. 큰 것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이다. 그러나 백합이 돋보이는 이유는 예쁘게 생긴 모양 때문이다. 어느 누가 갯벌에서 이렇듯 크고 고운 조개들이 자라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백합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대합, 중합, 문합, 화합, 쌍합이라 하는데 '합(蛤)'은 조개를 뜻한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인 꿈사랑풀이 '그레'를 이용하여 백합을 잡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인 꿈사랑풀이 '그레'를 이용하여 백합을 잡고 있다. ⓒ 김교진
그레는 이 지역 사람들이 백합을 잡을 때 쓰는 도구이다. 지게 같이 생겼지만 끝에는 철판이 달려 있고 허리에 줄을 감아 양손으로 그레를 잡고 갯벌에 철판을 살짝 담고 천천히 뒷걸음치다 보면 갯벌 속의 백합이 철판과 닿으면 '툭'하는 느낌이 손에 전해진다. 이럴 때에 같이 따라가는 사람에게 신호를 해서 백합을 꺼내게 하였다.

대학 환경동아리의 회원과 '꿈사랑풀'이 그레를 이용하여 백합을 잡고 있다
대학 환경동아리의 회원과 '꿈사랑풀'이 그레를 이용하여 백합을 잡고 있다 ⓒ 김교진
염정우씨는 "백합도 크기에 따라 대합, 중합, 소합으로 나누는데 소합이 그레에 닿으면 달그락하는 소리가 나고 중합이 닿으면 덜거덕 소리가 나고 대합이 닿으면 툭 하는 묵직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초보자인 우리에게는 백합잡이가 쉽지는 않았다. 오래 끌다보면 팔과 허리도 아팠고 어떤 사람은 잘 잡는데 다른 사람은 못 잡기도 하였다.

7살 어린이가 그레질을 하고 있다
7살 어린이가 그레질을 하고 있다 ⓒ 김교진
일행 중에서 가장 어린 7살 먹은 아이도 그레를 끌어보고 싶다고 하여 그레를 끌게 하였는데 작은 몸에도 불구하고 잘 끌었다. 백합도 몇 개 잡는 놀라운 솜씨를 보였다. 그러나 이 아이에게 이 갯벌을 그대로 물려 줄 수 있을까? 갯벌이 사라지면 이 아이의 기억 속에는 그레와 백합도 사라질 것이다.

계화도 어민들은 이렇게 잡은 백합을 집하장에서 모아 깨끗이 씻은 후 kg 단위로 판매하는데 요즘은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인하여 바다물살이 막혀 갯벌이 죽어가서 백합 잡이가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고 한다.

계화도 어민들이 백합을 씻고 있다
계화도 어민들이 백합을 씻고 있다 ⓒ 김교진
어민들은 "예전에는 5t짜리 배 한 척이 나가면 하루 1t씩의 백합을 걷어왔고 계화도에서만 해도 하루 15톤 정도의 백합이 출하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백합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올해 들어서는 생계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백합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년에는 생합도 거의 나오지 않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끝나면 갯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고 갯벌 일밖에는 모르는 어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고향을 떠나면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말한다.

백합.  풀꽃세상에서는 2000년 3월에 제5회 풀꽃상을 새만금 갯벌의 백합에게 드렸다.
백합. 풀꽃세상에서는 2000년 3월에 제5회 풀꽃상을 새만금 갯벌의 백합에게 드렸다. ⓒ 김교진
어민들은 또 "새만금 간척사업이 우리를 이 정도까지 절망으로 내몰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라에서 추진하는 사업이고 먹고 살기 좋아진다고 해서 처음에는 기대도 하였으나 방조제가 건설될수록 바다가 죽어가고 이제는 사람을 잡으려고 한다"며 잘못된 정보로 어민들을 속였다고 정부를 비판한다.

방조제 건설 모습. 산을 깍은 흙으로 바다를 메우고 있다
방조제 건설 모습. 산을 깍은 흙으로 바다를 메우고 있다 ⓒ 김교진
그러나 생존의 위협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어민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만금 방조제에서의 트럭의 굉음과 포클레인의 작업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계화도 갯벌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갯벌 생명에게는 새만금 방조제는 죽음의 방조제이다.  죽은 조개와 게.
갯벌 생명에게는 새만금 방조제는 죽음의 방조제이다. 죽은 조개와 게. ⓒ 김교진
갯벌에는 죽은 조개와 게가 눈에 띄었다. 이제 갯벌에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 갯벌에서 백합과 게, 망둥이, 소라, 우렁이 등 수많은 생명들이 살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갯벌체험을 마치고 나가려는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갯벌에 엎드려 절을 하고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죽어가는 갯벌과 갯벌에 사는 생물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풀꽃세상 회원 뜀풀이 새만금 갯벌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풀꽃세상 회원 뜀풀이 새만금 갯벌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문용성
갯벌에 나즈막히 몸을 낮추고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 같던 그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모두 감동을 했고 우리는 큰소리로 '갯벌과 백합을 살려주세요'라고 외칠 수 있었다.

염정우씨는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며 "하루라도 빨리 새만금 방조제를 터서 물살을 돌게 해야 갯벌 생명이 숨을 쉴 수 있다. 갯벌이 다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한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의 설립목적은 식량생산을 위한 농지조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고 하여 있는 논도 놀리게 하는데 갯벌 생명을 모두 죽이고 만든 땅에 논뿐만 아니라 공장과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것이 위정자들의 생각이다.

그나마 논은 생색용일 뿐이고 대부분의 땅에는 원래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공장과 골프장이 들어설 것이 확실하다.

갯벌에 들어가서 그 속에 사는 생명을 확인한 우리들은 도요새 노래를 마저 부르며 갯벌이 지켜지길 간절히 바랐다.

"동진강 만경강은 흘러서 어디로
김제 들판 적시며 그대로 젖줄인데
백설이 내려 앉은 소금은 어디서
옥구 염전 알알이 그대로 보석인데
도요 도요 도요새 다시 볼 수 있을까
아 아 천만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바다여 갯벌이여
아 아 생명의 터전 우리가 우리가 지킨다.
아 아 생명의 터전 우리가 우리가 지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