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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합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합니다 ⓒ 이승철
우리 형제들은 김포에 있는 큰 조카의 집에 모였습니다. 귀성전쟁으로 시달리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대열에 끼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요.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가 아우와 가까운 들녘으로 나섰습니다.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아내와 제수씨 그리고 조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뒤따랐습니다.

벼 이삭에 앉아 있는 매뚜기
벼 이삭에 앉아 있는 매뚜기 ⓒ 이승철
논에는 농부들의 정성과 피땀의 결실인 벼가 잘 자라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논을 가득 채운 벼이삭이 탱탱하게 영글어 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넉넉하게 합니다.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어떤 논에는 피를 뽑지 않아서 벼보다 키가 큰 피들이 쑥쑥 올라와 있습니다.

꽃이 활짝 핀 메밀밭
꽃이 활짝 핀 메밀밭 ⓒ 이승철
논 옆의 밭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풍성합니다. 메밀꽃이 흐드러진 모습은 굳이 봉평이 아니어도, 달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밭 가득 하얀 메밀꽃을 보며 모두들 멋있다고 탄성을 질러댑니다. 따라온 아이들도 "저게 무슨 꽃이야?"하고 물으면서 덩달아 좋아합니다. 누군가 "응 저게 바로 이효석의 메밀꽃이야!"라고 대답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 턱이 없는 아이가 "아 ! 그렇구나 이효석 꽃이구나"합니다. 어느새 메밀꽃은 '이효석의 꽃'이 되어버렸습니다.

배추 잎에 앉아 있는 메뚜기
배추 잎에 앉아 있는 메뚜기 ⓒ 이승철
짙은 녹색으로 탐스럽게 자란 배추밭에는 몇 마리의 메뚜기가 앉아 있습니다. 메뚜기는 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을빛으로 퇴색하는 벼 잎보다는 싱싱한 배추 잎이 메뚜기들의 좋은 먹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제수씨가 메뚜기를 잡아보자고 합니다. 둘은 곧 메뚜기를 잡기 시작합니다.

이 둘은 농촌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많이 잡아봤다고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메뚜기는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잡으려고 하면 툭 튀어 멀리 달아납니다. 살금살금 쫓아가 잡으려고 하면 또 다시 툭 튀어 더 멀리 달아나 버려 번번이 허탕만 칩니다. 그렇다고 남의 배추밭을 망치며 빨리 쫓아갈 수도 없어 낭패입니다. 아이들은 빨리 잡아 달라고 조르고, 말을 꺼낸 이들은 체면이 영 말이 아닙니다.

메뚜기를 잡아 들고 좋아하는 동서 아줌마들
메뚜기를 잡아 들고 좋아하는 동서 아줌마들 ⓒ 이승철
메뚜기를 잡으러 논두렁으로 들어갔습니다. 벼이삭이나 벼 잎에 붙은 메뚜기라고 해서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 한 번 놓치면 논 안으로 튀어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메뚜기 잡기에는 아직 철이 좀 이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메뚜기들이 아직은 힘이 넘치고 날렵하여 잡기가 어렵다고 핑계를 댑니다.

한 달 쯤 더 지나면 메뚜기들이 둔해져서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알을 낳을 때쯤 되어야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때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곤충이기 때문에 행동이 둔해져서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열심이 쫓아다닌 보람으로 몇 마리의 메뚜기를 잡았습니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낚시터에서 월척을 낚은 낚시꾼처럼 탄성을 질러 들녘이 시끌벅적합니다. 역시 아줌마들의 수다는 어디에서도 예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덩달아 아이들도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니 모처럼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하여 정겹기만 합니다.

잡초의 꽃이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잡초의 꽃이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 이승철
어릴 적 솜씨로 잡은 메뚜기들의 목을 벼 이삭으로 꿰어 엮었습니다. 밭두렁에서 기다리던 유치원생 아이는 엮어 있는 메뚜기가 아프겠다며 놓아주자고 합니다. 아이는 다시 메뚜기들을 배추밭에 놓아 주었습니다. 툭툭 튀어 달아나는 메뚜기들을 보며 아이는 즐거운 표정입니다.

티 없이 맑고 천진스런 아이들의 마음이 어른들을 상큼하게 합니다. 밭두렁에는 돼지풀이라고 부르는 잡초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예쁜 꽃들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콩밭. 이맘때 쯤의 콩서리가 고소하고 맛이 있지요
콩밭. 이맘때 쯤의 콩서리가 고소하고 맛이 있지요 ⓒ 이승철
잘 가꿔 놓은 밭에는 콩이며, 팥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있었습니다. 콩밭을 지나며 누군가 "우리 콩서리 한번 해볼까?"하고 제안했지만 "지금 콩서리를 했다간 고발당해 경찰서에 가서 경을 칠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모두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습니다.

옛날 이맘때면 하교 길에 콩서리를 해 출출한 배를 달랬습니다. 우리는 "콩이 더 익기 전에 지금이 딱 콩서리하기 알맞은 시기인데…"라고 말을 하며, 배고프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팥 밭입니다
팥 밭입니다 ⓒ 이승철
고구마 잎은 아직 싱싱한 빛깔이지만 땅콩 밭은 이제 곧 수확을 기다리는 빛깔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일본을 덮쳤다는 태풍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늘은 맑고, 청명합니다. 한가위의 넉넉한 마음처럼 올해도 풍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고구마밭
고구마밭 ⓒ 이승철
땅콩밭
땅콩밭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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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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