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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케리가 청중석을 향해 진지한 모습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에드워즈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케리가 청중석을 향해 진지한 모습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김명곤
대선이 6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미국은 선거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양 후보는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선거인단 수가 많은 주들을 중심으로 20여개에 이르는 접전지역들을 반복적으로 돌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다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플로리다에 대한 양측의 공략이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뜨거운 관심에 비해 플로리다는 지난 한 달 새 맞은 세 차례의 허리케인으로 '정치'가 실종되어 버렸다. 한 달여 동안 플로리다 주민들의 최대 관심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양 후보의 지지율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있지 않았다.

이들의 관심은 수 일째 나가버린 전기가 언제 들어올 것인지, 날아간 지붕과 떠내려간 가게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집을 덮치고 길을 가로막은 아름드리 나무가 언제 치워질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허리케인 피해 플로리다서 '현직 프리미엄' 누린 부시

여론조사 기관들은 당분간 플로리다에서 여론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때문에 9월 1일부터 14일까지 보름동안 단 한 차례도 여론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는데 이는 주민들이 정치적 관심으로부터 비켜나 있을 뿐 아니라, 전화가 불통이 되어 여론조사를 제대로 실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격전지인 오하이오주는 이 기간 동안 다섯 차례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여간 '정치 무풍지대'에 있던 플로리다에서 득을 본 유일한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었다. 부시는 허리케인 기간 동안 세 차례나 플로리다를 방문해 피해지역을 돌며 피해자들을 껴안고 등을 두드렸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보도했다.

부시가 이처럼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한껏 누리고 있는 동안, 케리는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계획했던 대규모의 세 차례의 공식 유세를 철회해야 했기 때문이다. 케리는 허리케인 기간 동안의 플로리다 방문이 정치적 목적의 방문이라는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잠깐 허리케인 지역을 방문한 것 외에 플로리다 방문을 삼갔다.

한 예비역 군인이 케리 지지 피켓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한 예비역 군인이 케리 지지 피켓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김명곤
초조해 있던 민주당 선거대책 본부는 세 번째의 허리케인이 플로리다 북서부를 치고 물러난 직후인 지난 18일, 올랜도를 비롯한 세 곳에서 21일과 22일 릴레이 유세를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케리로서는 지난 7월말 민주당 전당대회를 치른 직후 올랜도를 방문한 이래 50여일만의 공식유세인 셈이다.

케리, 50여일 만에 플로리다에 서다

지난 21일 밤 플로리다 올랜도의 '티디 워터하우스'에서 열린 케리-에드워즈 유세에는 8천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역 민주당 간부들과 언론은 너무 급작스레 유세일정이 잡혀 많아야 5천명 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월 20일 올랜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공화당 유세가 한 달 전에 발표돼 1만2천명의 인파가 몰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유세의 열기가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입장하는 청중들도 매우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경찰은 청중들의 가방은 물론 열쇠꾸러미나 지갑까지도 일일이 검색했으며, 추가로 금속 탐지기도 통과시켰다. 가져온 우산도 흉기로 판단, 유세장 밖에 따로 보관되어 졌다. 기자들의 카메라 가방은 셰퍼드들을 풀어 냄새를 맡게 했다.

허리케인 뒤끝 때문인지 종일 가랑비가 계속되더니 유세 한 시간 정도를 남겨놓고 빗줄기가 굵어졌다. 그러나 유세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입장이 거의 끝난 실내는 맨 위층만 빼고는 거의 꽉 들어차 있었고, 곳곳에서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몸을 흔들어 대거나 소리를 질러댔다.

한 어린 소년이 아빠의 어깨에 무등을 탄 채 "어린이는 케리 지지" 사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 어린 소년이 아빠의 어깨에 무등을 탄 채 "어린이는 케리 지지" 사인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김명곤
“장대비 뚫고 8천 인파 모여”

음악소리가 줄어들더니 중앙에 자리한 연단에 연달아 찬조연설자들이 등장했다. ‘올랜도 매직’ 팀의 흑인 농구선수 그랜트 힐이 단위에 올라서서 케리 지지 발언을 한 데 이어 케리의 월남전 동료 댈 샌더스키가 단에 올라와 "케리만이 해결책이고, 부시야 말로 문제거리다(John Kerry is the solution, Bush is the problem)"라고 말하자 청중들이 열광적으로 발을 굴러댔다.

9시 30분경 케리와 에드워즈가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올랜도 유세장에 케리와 에드워즈가 함께 나타난 것은 부시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수락한 지난 9월 3일 밤, 오하이오에서 한밤중에 벌인 공동유세 이후 처음이었다.

먼저 에드워즈가 등단했다. 에드워즈는 단에 올라서자마자 팔소매부터 걷어붙였다. 그리고는 이번 선거에서의 플로리다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려는 듯 "우리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을 '그라운드 제로'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운을 떼었다. 그는 이어 곧바로 부시에게 거친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부시는 그 자신의 기록에 의해 판단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청중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 목소리로 "오, 예~스!"라고 답했다.

"오케이! 진실은 이것입니다. 그(부시)는 우리를 위대함의 가장자리에서 벼랑의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를 시내 한 가운데로부터 끌어내야 할 때입니다."

부시의 이라크전이 가져올 결과를 염두에 둔 공격이었다.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노 모어 부시!(부시는 더이상 안돼!)"를 외쳤다. 여기저기서 "겟 힘(그를 잡아라!)" "겟 힘 아웃(그를 끌어 내려라!)"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드워즈 "지금 세상에는 두 명의 독재자가 있다"

에드워즈는 단문 형식의 쉬운 질문을 내던져 즉석 답변을 유도해 내는 식으로 부시의 약점을 공격했다. 그리고는 월남전에서 보여준 케리의 용맹성을 강조하며 케리가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믿음직하고 위대한 지도자인가를 역설했다.

이어 그는 부시를 가리켜 독재자요 쿠데타를 일으킨 자라고 몰아세웠다. 말하기를 "지금 세상에는 두 명의 독재자가 있는데, 하나는 사담 후세인이고, 다른 하나는 조지 W. 부시"라는 것.

연설중인 에드워즈와 케리.
연설중인 에드워즈와 케리.
에드워즈가 연설하는 동안 케리는 두 손을 앞에 겹쳐 모은 채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에드워즈의 연설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케리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열광적인 함성과는 반대로 케리의 모습은 침착하고 진지했다. 부시가 지난 3월 20일 올랜도 유세에서 보여준 친구같은 인상과 크게 대비되었다.

케리는 우선 '허리케인'으로 시작했다.

"플로리다는 지난 수주 동안 미국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 나는 여러분에게 부드럽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시를 때릴) 큰 회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정말 파이팅(한 판의 격투) 무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 바꾸지 않으면 미국 끝없는 전쟁에 휘말릴 것"

케리의 이날 밤 연설의 주제는 이라크전, 경제 그리고 건강보험이었다. 최근들어 케리는 이 세가지 주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부시를 공격해 왔다. 경제와 건강보험에 있어서는 구체적이고 설득적인 어조로 조용조용 말했느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는 "엄청난 판단 미스"라며 맹렬하게 공격을 했다.

"내 주장은 판단력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판단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부시는 이라크 문제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 때마다 항상 미국내의 가장 훌륭한 충고를 거스르는 판단을 내려 왔습니다. 이로 인해 지금 미국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케리 후보가 주먹을 불끈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케리 후보가 주먹을 불끈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 김명곤
케리는 이날 연설에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 알 카에다와의 연관성에 대한 증거 등을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부시가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다면서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역사적인 책무에 위기를 초래했으며, 만약 미국이 현재 가고 있는 길을 바꾸지 않는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뿐"이라고 주장했다.

케리가 본격적으로 이라크 전에 대해 부시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부시가 전당대회에서 후보수락 연설을 한 날인 지난 9월 3일 오하이오에서 한 밤중에 벌인 연설 때부터였다. 하루 전 뉴욕 유세에서도 케리는 "부시는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이라크 침공으로 끌어들였고, 미군들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면서 부시가 정치적 위기를 이라크 침공으로 만회하려 했다가 엉뚱한 희생만 가져 왔다고 주장했다.

케리 "당선되면 내년 여름부터 이라크 철군"

지난 6월 28일 미국이 이라크에 정권을 이양한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 전에 여론이 호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최근 들어 부시가 이라크 전에 대한 정당성을 다시 역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에 대한 정당성과는 별도로 부시가 이라크 사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상존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9월 7일 이라크 전 사망자가 1천명을 넘어서면서 우려와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케리는 이번 플로리다 유세에서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부시를 맹공했으며 자신이 당선될 경우 내년 여름부터 이라크 철군을 시작해 4년 내에 모든 미군을 이라크로부터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케리와 에드워즈는 이번 플로리다 유세에서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집중 거론했다. 플로리다는 노인인구와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리는 이날 유세에서 4300만명의 무보험자들을 다음 10년 동안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시키고, 이를 위해 적어도 6530억불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날 유세 참석자들은 케리와 에드워즈의 공격적 연설을 환영했다. 캐롤 킬바사(57)라는 여성은 "케리가 이번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는 더욱 공격적일 필요가 있다"면서 "경제는 지지부진하고, 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있고, 이라크 전에서는 계속 죽어 나가고 있다. 케리는 바로 이를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스패닉계로 민주당 지지자인 짐 칼슨(42)이라는 남성은 "(히스패닉계) 중앙플로리다 유권자들은 2000년 대선에서 고어를 지지해 부시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을 반복하기를 원한다"면서 "지난 2년 동안 이 지역에서 3만 명의 히스패닉 유권자들이 새로 등록했으며, 이는 부시와는 연관성이 없는 유권자들이다"고 주장했다.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 유권자. 옷에는 온통 케리 지지 버튼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 유권자. 옷에는 온통 케리 지지 버튼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 김명곤
젊은층-여성 유권자 대거 참석

이날 유세는 지난 3월 20일 올랜도에서 가진 부시의 대규모 유세에 비해 젊은층과 여성 유권자들이 대거 참석한 게 눈에 띄었다. 에드워즈는 연설 중에 이에 고무된 듯 "매우 많은 젊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표를 모두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중앙플로리다지역의 케리 진영 선거운동원인 리차드 톰슨(48)은 "젊은층이 많은 것은 이라크 전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투표당일 이들이 얼마나 나와줄 것인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자신을 여성 환경운동가라고 밝힌 루시 가르시아라는 여성은 "부시의 정책이 환경보호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25명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유세장에 나타났다. 그들은 수개월 동안 부시 낙선운동에 참여 했다고 말했다.

한편 티파니 스튜와트(18)라는 중앙플로리다대학 학생은 "민주당이 게이-레즈비언 등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다"면서 "공화당이 동성 결혼을 금하기 위해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이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에 케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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