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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호치민 평전>
책 <호치민 평전> ⓒ 자인
베트남과 호치민에 대한 왜곡된 편견은 우리나라가 미국을 원조하는 처지에서 월남전에 참여했기 때문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호치민은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 없이, 그저 공산주의자로 베트남을 공산주의 국가로 이끌었다는 인식밖에 남은 게 없다.

<호치민 평전>의 저자 찰스 펜은 연합통신 기자로 2차 세계대전 동안 CIA 전신인 OSS에 근무하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독립투쟁을 하고 있던 호치민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러면서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다.

그 만남을 토대로 호치민의 어린 시절부터 사망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이 책은 호치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준다. <호치민 평전>에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호치민의 정치 사상과 공산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로서의 활동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의 오랜 식민 통치 동안 베트남은 북과 남으로 점차 나뉘어 갈등을 갖게 된다. 프랑스 식민 통치 기관은 행정적, 군사적 편리함을 위해 인도차이나를 연합체로 만들지만 정치적으로는 이곳의 식민국들을 다섯 개로 분리해 유지시켰다. 그 과정에서 북과 남 베트남 사이에는 증오감이 형성된다.

특히 북 베트남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이율배반적이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세력들은 프랑스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랑스 생활 방식에 대해 찬탄하고 존경했다. 그래서 진정한 독립을 원하면서도 프랑스식 사고 체계를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식 베트남 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다른 이유로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자를 익혀 프랑스어를 큰 어려움 없이 배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에게 더 야심에 찬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어로 번역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통해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의 지배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프랑스 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들과는 다르게 프랑스인과 평등해지기보다는 프랑스인을 제거하기를 열망했다."


이들은 후에 레닌을 읽고서 민족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자신들이 충분히 독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산주의 동맹을 통해 국제적인 힘을 얻고 프랑스인들에게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호치민은 사려 깊고 똑똑하면서도 겸손하고 정직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전문적인 저널리스트가 되어 프랑스 국외의 동조자들을 겨냥한 <베트남 혼>이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이 잡지는 베트남 선원들의 도움으로 본국까지 보급된다.

그가 쓴 초기 논문은 3만 자 정도 분량의 방대한 양으로 <프랑스의 식민주의에 대한 규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논문은 프랑스의 해외 징집 문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베트남인을 징병으로 모집하면서 일어난 비인간적인 행태를 묘사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대표로 공산주의 회의에 참여한 호치민은 원고 없이 연설하면서도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그의 연설 내용은 진실하면서도 감동적이다.

"동지 여러분, 나는 오늘 세계 혁명의 임무를 위한 파업을 달성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로서 슬프게도 내 조국에 저질러진 혐오스러운 범죄에 항의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반 세기 전에 프랑스의 자본주의가 인도차이나에 들어왔고 그 자본주의란 명목으로 우리를 총칼로 위협했습니다."

평생 동안 호치민을 따라 다닌 질문은 '그는 과연 민족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이다. 베트남의 자유주의자와 좌익(공산주의를 포함하여)은 그를 자국의 독립을 찾기 위해 헌신한 민족주의자로 생각한 반면 중도파와 우익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보았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호혜주의자'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는 사람들의 가슴에 감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국민의 사랑을 얻고 나아가 수천에 달하는 미국 젊은이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죽을 각오를 무릅쓰면서도 프랑스와 미국에서 자국이 독립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행동은 영웅주의와는 거리가 멀기에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베트남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미국의 야심은 이 책에서는 그다지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미국인이고 그들의 처지에서 베트남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남 베트남이 공산주의자 손에 넘어가면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도 줄지어 늘어선 도미노가 쓰러지듯 차례차례 공산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민주주의의 대표자'로서 그런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절구공이 아래서 짓이겨지는 쌀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수없이 두들김을 당한 다음에는 목화처럼 하얗게 쏟아진다. 이 세상 인간사도 때로는 이와 같아서 역경이 사람을 빛나는 옥으로 바꾸어 놓는다."

호치민은 이러한 시를 통해 고통스러운 베트남의 현대 역사가 질곡을 거쳐 옥과 같은 빛을 얻을 것임을 꿈꾸었다. 미국이 지고 있음을 예견했지만 그 결과는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호치민은 '내가 죽더라도 성대한 장례식 따위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평범한 '호 아저씨'이길 바라고 진정으로 자국민들의 독립을 꿈꾸었던 호치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들이 그의 삶을 본받는 자세를 가져보길 소망해 본다.

호치민 평전

찰스 펜 지음, 김기태 옮김, 자인(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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