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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의 모습을 보면서 꼬마가 이야기했습니다.

“네가 용감해서 너무 고맙구나. 그리고 네 마음이 너무 착해서 그것도 고맙구나.”

바리가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내 친구를 좀 도와줘. 지금 불에 데었어, 아주 뜨거운 불에….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백두산에 살고 있었는데… 다시 백두산에 데리고 가야할까봐. 어쩌지.. 난 가는 길도 모르는데”

 바리는 울먹이면서 옷소매를 눈물을 닦아내었습니다. 꼬마는 대답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천주떡 없이도 잘 할 수 있지?”
 “천주떡?”
 “그래,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천주떡 안 먹고도 백호와 둘이서 잘 해낼 수
있지?”

 “물론이지, 백호만 있으면 돼. 백호만 다시 일어나면, 난 지옥에 가더라도 겁나지
않을거야.”

 바리는 주머니에서 천주떡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
남아있는 떡을 꺼내어 백호의 입에 주며 말했습니다.

 “백호야, 얼른 먹어. 그래야 일어난대. 얼른 씹어 먹어.”

 백호는 여전히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바리는 천주떡을 손에 쥔채로 백호의 입 깊
숙히 밀어넣었습니다.

 “얼른 먹어, 먹으란 말이야, 얼른 일어나.”

 백호의 목이 움직이는 것이 천주떡을 삼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백호가 크릉
크릉 기침을 했습니다. 바리는 백호를 껴안고 있던 손을 놓고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하얀 백호의 귀가 백열등처럼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얼굴로, 목으로 어깨로
그 밝은 빛이 점점 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밝은 불이 지나갈 때마다 털 색깔이 다
시 하얗게 바뀌었습니다. 상처도 금방 깨끗하게 아물었습니다. 놀란 바리는 그 모습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불은, 배로 엉덩이로 그리고 꼬리로 전부 번져가면서 백호를 치료해 주고 있었습
니다.그렇게 백열등처럼 밝게 빛을 발한 후에 백호의 몸은 다시 이전처럼 돌아왔습니
다. 마침내 백호는 후욱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백호야, 정신이 드니?”

 백호가 고개를 들어 바리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래, 이제 다 끝났어, 얼른 조왕신님께 가자.”

 백호의 얼굴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바리는 백호의
목을 다시 끌어안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너랑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거야.”

 순간 조금 전에 이야기를 나눈 그 꼬마가 떠올랐습니다. 그 꼬마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나비 한마리가 백호의 머리 위에서 날고 있었습니다.

그 나비를 본 백호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비는 그렇게 백호의 인사를 받고 어딘가로 포롱포롱 날아가 버렸습니다. 백호가 왜 나비에게 인사를 올렸는지, 바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리와 백호의 눈 앞에 호종단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바리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습니다.

 “자, 얼른 일어나렴.”

 호종단의 긴옷은 처음과는 달라보였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먼지가 자욱한 것처럼 튀튀한 노란색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바리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호종단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서는 바지를 털었습니다. 백호도 일어나서는 호종단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백두산에서 온 호랑이입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호종단 역시 백호의 인사를 받고는 고개를 숙여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종단의 머리가 땅에 끌릴 것만 같았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는 것으로 봐서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바리도 백호를 따라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습
니다.

 “바리입니다…………..”

 바리와 백호가 새들이 놓아준 다리를 밟고 건너온 그 협곡은 이미 큰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수단이 타들어간 자리엔 불을 피운 것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그 강변에 서있는 백호, 바리, 호종단 세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고개를 맞대고 오랫동안 인사를 하였습니다.

 세 사람 다 인사를 마치자 백호가 말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호종단이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야죠.”

 호종단의 얼굴엔 주름이 많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많이 겪은 것 같은 얼굴
이었지만, 아주 평안해 보였습니다.

 백호가 물었습니다.

 “역술서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잘 모셔두었습니다. 나중에라도 누가 그 역술서를 찾고자 하더라도 아무도 찾지못할 곳입니다. 하지만 용왕께서 찾고자 하시면 언제라도 찾아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는 바리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습니다.

 “바리야, 미안하구나, 그리고 고맙구나. 이게 갈길이 얼마 안남았다. 이제 역술서도 없으니 그 호랑이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저 강물이 이제 다시 땅을 적실 것이니 이 땅의 나무님들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정말 장하구나.”

 바리가 말했습니다.

 “다시 돌아오실 건가요?”

 호종단을 미소를 띠우며 말했습니다.

 “수단이란 녀석이 왜 내 주변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렀는지 이제서야 깨달았단다. 내가 설마 수 억년 이후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수단이 없으니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호종단은 바리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는 뒷걸음질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 멈춰선 호종단은 바리와 백호를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호종단은 금빛모래처럼 바람에 실려 천천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백호는 호종단의 모습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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