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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지난달 1일 범인 검거 중 순직한 고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의 49재가 열리는 조계사에는 비가 내렸다. 일반 신도들과 유족 그리고 동료 경찰관들이 비좁게 자리하여 49재를 치르는 법당 안은 곳곳에 선풍기를 틀어놓아야 할 만큼 음습했다.

필자는 오후에 대전 현충원에서 열리게 될 추모식이 걱정되었다. 전국에서 경찰예장까지 갖추고 자발적으로 모인 일선 경찰관들의 야외행사가 빗속에서 더욱 초라하고 서글퍼지면 어떡하나 해서이다.

▲ 지난 9월 18일, 대전 현충원 순직경찰관 묘역, 경찰예장을 한 경찰관들이 '그들만의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 레오
11시에 시작된 49재는 정오를 넘겨서도 계속 이어졌다. 경찰청 수사국장, 서울경찰청 차장, 서부경찰서장의 추도가 시작될 무렵 필자는 동료들과 일어서야 했다. 비는 여전히 대전으로 향하는 차 안의 공기마저 우울하게 했다.

추석을 앞둔 성묘객들이 많아서인지 도로는 곳곳에 정체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들 경찰관들이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신기했다. 천안을 지나고 있을 무렵 비가 그쳤다. 침묵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차 안 분위기는 활짝 열어놓은 차장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환기되었다.

▲ 추도 춤사위, 두 형사뿐만 아니라 경찰묘역에 안장된 모든 순직경찰관들에게 바쳐졌다
ⓒ 레오
유성I.C에서 내려서 조금 지나자마자 국립 현충원이 보였다. 정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쭉 들어가자 '순직 경찰관 묘역'이 있었다.

경찰관 묘역이란 안내 간판을 읽기도 전에 정복 예장을 한 일군의 경찰관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한 편에서 뭉클 뜨거움이 솟구쳐 올랐다.

비가 말끔히 씻어 낸 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 그리고 초록빛으로 단장된 잔디. 그 평화로운 풍경 한 쪽에 하얀 와이셔츠와 푸른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경찰관들이 경건하게 서 있었다. 그 앞으로 영면하신 님들의 비석이 말없이 펼쳐져 있었다.

"국민 여러분! 경찰이 죽어갑니다. 경찰에게 일관된 잣대로 살려주십시오."

그들은 그렇게 쓰인 근조 만장을 묵묵히 걸어놓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함께 추모와 헌화 행사를 시작하였다. 시인과 문장가도 없지만 전국 경찰관들이 자발적으로 적어온 추모시와 추도사가 낭독될 동안 눈시울을 붉히는 경찰관과 그 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잠재적 순직 경찰관이자 유족들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두 형사의 안장식이 거행되던 16일에도 전남경찰청산하에서만 경찰관 3명이 과로사했다. 최근 6년 간 직무수행 중 순직한 경찰관은 244명이고 부상을 당한 경찰관은 4590명에 이른다. 경찰관 100명 중 5명은 순직하거나 부상당하는 실정이니 먼저 영면한 경찰관들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 흰 국화송이 2,500여송이를 200여 경찰관 가족이 나누어 헌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레오
이어서 춤꾼 전형권님과 송민숙님의 장단으로 순직 경찰관들의 한을 달래는 추모 춤사위가 있었다. 하얀 종이 다발을 하나씩 허공에 흩뿌리는 춤사위는 인간문화재 전형권님이 순직경찰관들을 위해 특별히 창작한 것이라고 한다.

비장한 춤사위가 끝나갈 무렵, 행사장 한쪽에서는 흰 국화 2500 송이를 담은 바구니가 마련되었다. 참석한 사람은 경찰관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내와 자녀 등 가족과 함께 온 경찰관도 있었고, 이 시간도 근무 장소를 떠나지 못한 경찰관은 아내를 대신 참석토록 하였다. 남녀 경찰관, 부인 그리고 아이들 고사리 손에도 국화 송이 한 묶음씩 들려졌다. 2500기에 달하는 묘석 위에 한 송이씩 헌화되었다.

그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여자아이는 꽃 한송이 겨우 놓인 묘비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은 누군지도 모를 비석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서 흐느끼게 될 지도 모르는 경찰 가족의 아픔을 미리 새기고 있지나 않는지.

▲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순직경찰관에게 헌화하는 경찰관의 자녀
ⓒ 레오
헌화가 다 끝나갈 무렵 고 이재현 경장의 유족 분들이 서울에서 49재를 마치고 현충원에 도착하였다. 빙 둘러서서 그 동안 인터넷 게시판으로만 만났던 동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는 중간에 유족들이 그 중심에 섰다.

가족들은 고마워했다. 하지만 원망의 소리도 토해냈다. 그렇게 일선 경찰관들이 일상에서 늘 겪는 위험이 이제 어느 한 가족의 슬픔과 분노로 되었다. 그 순간에도 하늘은 무심한 듯 새파랗게 딴청을 피웠다. 그들만의 위험이고 격무일 뿐이었다.

두 형사가 순직한 후 죄인이란 필명으로 슬픔과 회한을 토해내던 동료형사는 그 중심에서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강인해 보이기만 했던 여자 형사도 그 순간 복받쳐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 울음은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의 가슴속으로 퍼져나갔다.

▲ 행사 진행 중 눈시울을 붉히는 경찰관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 레오
그들은 슬퍼했다. 그러나 기뻐했다. 저 멀리 강원도 바닷가에서, 또 산간벽지에서, 머나먼 도시에서 그들은 경찰예장을 정성스럽게 간직하고 모인 것이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를 같이 할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 그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곳에서 슬퍼했고 또 기뻐했다.

주기적으로 또는 불규칙하게 돌아오는 야간과 휴일 근무.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지인들에게 당하는 소외. 느닷없는 위험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노출된 직무. 업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동료들의 주머니를 빌리지 않으면 편히 눈감을 수도 없고, 다치면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현실.

▲ 추도와 헌화행사에는 경찰관 가족과 참석하지 못한 경찰관을 대신한 가족들도 참석하였다
ⓒ 레오
그들은 '충성과 사명'이란 자부심 속에 자신을 소진하여 왔다. 이제 자부심은 없다. 나약하고 늘 위태로운 직업인일 뿐이다. 이제 그 자부심은 굴레다. 나날이 늘어나고 더욱 위험해지는 업무에도 국가는 '예산타령'에 '알아서 슬기롭게' 하라고만 한다.

노조는커녕 직장협의회도 구성하지 못한다. 그들은 아파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지난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 하여, 질서유지의 첨병이라 하여, 사회안녕의 마지노선이라 하여 그들은 묵묵히 일할 것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주 5일 주 40시간 장미빛 채색속에서도 그들은 암흑의 그늘로 남아있다. 여전히 야간 14시간 연속근무도 있고, 여전히 수당 한 푼 받지 못하는 휴일 동원도 있다.

민주, 인권, 환상적인 근로기준법. 그 권리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그들에게 정작 그것이 없다.

▲ 한 경찰관이 최근 순직한 경찰과 그 사연을 적은 판넬을 묘역앞에 걸었다
ⓒ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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