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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부산 동구에 자리잡은 어머니의 미용실
ⓒ 김수원
(드르르륵)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소파에 누워있다가 인기척에 잠을 깬다.

"어, 왔나. 엄마가 깜박 졸고 있었다."
"오늘도 손님이 안 보이네요."
"오전에 파마 손님 두 사람 다녀가고는 조용하다."

▲ 미용실 한켠에 붙어 있는 사진
ⓒ 김수원
집에서 살림만 하던 어머니가 미용실을 연 지 1년쯤 된 것 같다. 다른 직원도 없이 어머니 혼자 미용실을 운영한다.

머리 깎을 일이 없어도 심심할 때 들렸다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이 곳은 '단골'만 있는 미용실이다.

"수원아, 오늘 온김에 염색하고 가라. 니는 눈썹도 진하고 얼굴이 너무 까매서 머리색깔이라도 딴 색으로 바꿔야 한다."
"네? 근데 염색은 좀…."

망설여졌다. 어머니가 하는 염색에 대해서 아직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 어머니
ⓒ 김수원
어머니가 한창 미용기술을 익힐 때 내 머리는 '실습용'이었다. 꽤 많은 걸 배웠다고 자부하던 어머니가 집에서 처음 내 머리를 잘랐을 때다. 보통 이발소에서 20분 정도면 다 자르는데 어머니는 다양한 각도로 유심히 살펴보며 오랜 시간 동안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했다.

"수원아"
"네?"
"진짜 사람머리는 가발이랑 좀 다른 것 같다."

'헉!' 어머니는 사람머리를 처음 잘라보는 것이었다.
'이제 내 머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 퀴즈
문제 :순간 뇌 속에서 빠르게 스쳐지나간 머리모양은?
정답 : 영구머리

▲ 집에서 굴러다니던 미용도구들은 이제 이 곳에 다 와있다.
ⓒ 김수원
별로 길지 않던 내 머리는 어머니의 실습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짧아졌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완곡한 부탁에 한 번 머리를 맡겼을 뿐 그 뒤로는 친척이 하는 다른 이발관으로 가신다.

그때는 집안에 온갖 미용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파마약, 염색약 냄새에 가발이며 마네킨 머리들이 돌아다녔다. 평소 겁이 많은 나는 그 가발 쓴 마네킨 머리를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밤늦게 술 먹고 들어온 날이면 술이 확 깼다.

미용실을 열면 내 머리를 염색해주는 게 어머니 소원이었다. 하기로 했다. 색깔은 '오렌지브라운'.

▲ 어머니가 머리 자를 준비를 할때 나는 약간 긴장한다. ^^;
ⓒ 김수원

▲ '오렌지 브라운' 염색약을 바르는 중이다.
ⓒ 김수원

▲ 보통 파마하는 사람들이 쬐는 기구다. 15분 정도 이러고 있었다.
ⓒ 김수원

▲ 어머니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 김수원
머리에 물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한 분이 왔다. 어머니는 반갑게 그 분을 맞이했다. 가만히 앉아 있길 싫어하는 나는 미용실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책 대여점에서 사 온 지난 달 여성잡지, 1년 전에 집에서 가져온 소설 '태백산맥' 1권이 탁자에 있고 방 안에는 점심을 먹고 치우지 않은 도시락이 그대로 있다.

머리를 다 감은 할머니가 천원짜리 몇 장을 어머니에게 건네자 어머니는 "괜찮습니더"란 말만 되풀이한다. 할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마워요"하며 인사하고 천천히 미용실 문을 열었다.

▲ 염색이 끝난 머리. 멋있게 나왔나요?
ⓒ 김수원
나도 가방을 메고 나설 준비를 했다.

"이제 학교로 가나? 차비는 있나?"

사실 용돈 좀 받아갈 속셈이었지만 오늘은 그냥 가야 할 것 같다.

"괜찮아요. 이따 저녁이나 맛있게 해주세요."

내가 미용실을 나갈 때 어머니는 머리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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