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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난중일기>에 기록된 전남 신안의 한 섬 지명을 그동안 학계에서 잘못 해석해 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신안군청에 근무하는 김진오씨는 최근 신안문화원이 발행한 <신안문화> 14호 기고문에서 “이 충무공이 <난중일기>에서 언급한 발음도(發音島)는 지금의 신안군 장산도(長山島)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 장산도 동쪽 해안에서 바라본 진도의 섬들, 바로 왼편에 울돌목이 있다.
ⓒ 정거배
이 주장은 그동안 학계가 <난중일기>에 기록된 발음도는 지금의 신안군 팔금도(八禽島)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해 임진왜란 관련 기록에 그대로 인용해 온 사실을 뒤엎는 것이다.

<난중일기>의 해당 대목을 한글로 해석하면 이 충무공이 53세(선조 30)되던 때인 1597년 정유년으로, 다시 왜군이 조선을 침략한 정유재란 당시 기록이다.

‘1597년 10월 11일 맑음. 정오에 발음도에 도착했다. 바람이 자고 날씨가 온화하다. 배에서 내려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전선(戰船)을 숨겨 둘만한 곳을 살폈다. 동쪽으로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 볼 수 없고, 북쪽을 보니 나주(羅州)와 영암(靈巖) 월출산(月出山)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비금도(飛禽島)까지 통하여 눈앞이 시원하다.’

여기서 이 충무공이 말한 제일 높은 산은 지금의 장산도 대성산(해발 189m)으로 추정되며, 신안군 비금도는 장산도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김진오씨, 팔금도는 난중일기 내용상 위치 안맞아

반면 장산도에서 안좌도를 지나 20㎞ 떨어져 있는 팔금도에서 보면 비금도는 이 충무공 기록대로 서쪽이 아니라 실제로 남쪽에 위치해 있다.

또 발음도가 그동안 학계 해석대로 팔금도라고 한다면 이 충무공이 북쪽이라고 표현한 나주와 영암 월출산은 실제로는 팔금도의 동남쪽에 해당된다.

향토사연구가이기도 한 김진오씨는 “<난중일기>에 적힌 발음도와 팔금도가 발음상 유사성 때문에 학계에서도 그렇게 해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발음도를 장산도로 확신하는 근거로 "각종 지리지에 기록된 것을 보면 장산도의 옛 명칭이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안파현(安波懸) 또는 안편도(安便島)로 불리워 졌다"고 밝혔다.

안편 또는 안파는 파도가 잔잔하다는 뜻으로, 장산도가 바다 건너편인 명량대첩 현장 진도 울돌목과 11㎞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안편도라는 지명유래는 울돌목에서 소용돌이치던 파도가 장산도에 이르면 잔잔해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김씨는 해석했다.

김씨는 또 “이 충무공 일기에 나온 발음도는 진도 울돌목의 격랑소리가 들리는 섬이라는 뜻에서 붙인 지명”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금 장산도 동쪽에 위치한 축항선착장에서 육안으로 봐도 진도대교가 보인다.

장산도, 진도 울돌목 건너편에 위치

김씨는 장산도 위치가 <난중일기>의 발음도라는 기록과 가장 일치하는 또 다른 이유는 서쪽으로는 이 충무공이 비금도까지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어 눈앞이 시원하다고 언급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 학계는 이 충무공이 <난중일기>에 '서통비금도 안계통
(西通飛禽島 眼界通)'이라고 적고 있어, 발음도가 잃어버린 장산도의 옛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이 충무공은 1597년 9월 16일 인근 진도 울돌목 해전에서 12척의 전함으로 왜군 함선 133척을 대파함으로써 명량대첩을 거뒀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보름 뒤 10월 초 선단을 이끌고 황해쪽으로 올라가 고군산도를 시작으로 신안군 당사도와 지도읍 어의도, 영광 칠산도, 법성포를 거쳐 다시 울돌목인 진도 우수영을 돌아, 김씨의 주장대로라면, 발음도인 장산도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 장산도 면소재지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
ⓒ 정거배
<난중일기>에 따르면 그해 10월 11일 발음도(장산도)에 도착해 16일 동안 머물렀으며, 이 섬에서 3일째 되던 10월 14일 둘째아들로부터 막내 아들(3남)이 충남 아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비보를 받게된다.

이 충무공은 이 날 ‘하늘이 캄캄하고 태양조차 검게 변했구나, 가여운 내 아들아 나를 두고 어디로 갔느냐. 나 이제 세상에 있어 본들 누구를 의지하며 살겠느냐.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일년 같구나’하며 일기를 통해 자식을 잃은 슬픔을 기록했다.

김씨는 “장산도가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이 머물렀던 전적지임이 틀림없다”며 “역사의 산교육장과 관광지로 조성하는 작업을 서둘렀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안군 장산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목포 하의도 방면 39㎞ 거리에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해 말 현재 2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백제시대 것으로 보이는 대성산성 터와 석실묘, 400여년 된 팽나무 등 100여 그루의 노거수림이 있다. 또 1919년 인근 전남 무안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장병준(1893-1972) 선생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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