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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업자다.

예전에는 외국물이라는 걸 마시고 오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동시에 번듯한 직장이 기다리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가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는 확실한 직업이 없다. 소위 요즘 매스컴에서 말하는 비정규직과 비슷한 처지라고나 할까.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정학히 알 수 없으나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나는 괴롭다.

10년이 훨씬 넘는 유학생활. 유학에서 돌아오면 그 동안 고생했던 것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이를 악물며 달달이 반찬값 아껴가며 송금을 해주신 부모님. 나이 서른을 넘었지만 뭔가를 반드시 하려나보다 하고 부유하지 못한 가정살림 축내고 있는 나를 지켜 보고 있던 형제들. 이런 모든 시선을 느끼며 나는 지금 실로 어려운 날들을 근근히 보내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나의 직업은 정확히 말하자면 성악가다. 아직 한국에서 연주회를 하지 못한 성악가다. 성악가란 직업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이 좋아 성악가이지 실은 실업자나 별다를 게 없으니까.

성악가가 돈을 벌어서 먹고살려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떠야' 한다. 유학을 가 공부를 하면서 뜨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정말로 명함 내밀기가 힘들다.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오류를 범한 사실이 있는지와 처세술의 부족 그리고 기타의 능력부족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또한 이런 현상을 초래하는 데 한 몫한다. 이런 현상은 음악분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 칠순을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이렇게 물으신다.

"그래 이제 뭐 할 거니?"
"예? 저~어~ 전 장관이 될 겁니다."

이 대답 한마디에 아버지께서는 웃지도 않으셨다. 왜일까? 아마도 외국물 먹고 온 아들의 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필자 또래의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 중에 고생을 안하신 분들은 아마 거의 없을 거다. 나의 부모님 역시 그랬다. 여동생 3명과 일녀삼남의 자식과 어머니까지 모두 8명을 책임지셔야 했던 아버지. 퇴근 후에 집에 들어오면 한숨만 나오셨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아버지께서는 집에 쌀이 없는 걸 짐작하시고 어머니가 정성껏 차린 아침상 밥 한 공기를 당신께서 출근하고 난 후 어머니 드시라고 일부러 반을 남기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왜 그거밖에 안 먹냐고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물으셨다. 어머니는 저녁에 아버지 들어오시면 드시라고 아버지가 남긴 밥을 아껴뒀다가 다시 정성껏 차려냈단다. 물론 어머니는 하루종일 물만 드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버지는 평생을 밥 한그릇 제대로 비우지 못하셨고, 어머니는 온 몸이 안 아프신 데가 없다.

갖은 고생 끝에 이제 끼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먹는 것에 한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그 한을 지금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푸신다.

이제 10년 넘게 떨어져 있었던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다. 가족들과 시간 날 때마다 모여서 이리저리 차 타고 구경가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과 초등학교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어머니의 소원인 까막눈 벗어나기.

내게 기대를 걸고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
이 아들 꼭~ 장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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