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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류시화. 길 위에서의 생각)


▲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삶의 화두이다.
ⓒ 박인오
삶의 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어린아이는 뜨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몸집이 작은데도 큼직한 그림자가 앞서가고 있다. 그것이 그의 미래이다. 정오가 되면 해는 남중하고 그림자는 어른의 발밑으로 완전히 빨려들어 가게 된다. 완성된 인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일들에 정신이 팔린다.

그는 다가올 날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흘러간 세월에 대해 향수를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현재를, 동시대인을, 친구를, 형제를 믿는다. 그러나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성숙한 인간에게는 등 뒤에 그림자가 생겨나서 점점 길어진다. 이제부터 그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추억들의 무게를 발뒤축에 끌고 다닌다. 그가 사랑했다가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자신의 그림자에 보태지는 것이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 하나의 인간은 또 다른 하나의 길이다.
ⓒ 박인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결국 종착지는 하나다.

길은 언제나 부단히 물어질 것이다. 길을 묻는 자는 길을 잘 물어야 한다. 길이 잘못 안내되면 그의 평생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로서 길의 안내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신 없는 위선적 언어와 행동을 삼가야 한다. 종교의 지도자들은 특히 그들의 가르침이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통하는 것인가를 확실시하여야 한다.

길을 떠난 사람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끝임 없이 물어야 할 삶의 화두이다. 어차피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든 못하든, 모두 길 위에 서 있는[途上] 존재들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갈 수는 없다.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지금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 박인오
이 어지러운 세상에 바른 길을 좇아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길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화에서 제주도로 가는 길이라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처음에는 헤매지만 조금 지나면 제 길을 찾게 된다. 길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 삶의 의미와 진실을 목적 삼고 찾아가는 길이라면, 결코 쉽게 찾을 수 없다. 오랜 인류의 역사는 방황과 미로의 수많은 흔적을 기록하였으며, 희귀하게 좋은 길잡이가 나타난 일도 있으나, 거짓 안내자들이 인류의 역사와 그 당대의 시대정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였고, 오늘도 이런 일은 반복되고 있다.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어딘가 바보처럼 보이고 뭔가 손해보며 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까닭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밝은 길이 어둡게 보이고, 나아가는 길이 도리어 물러나는 길로 보이며, 평탄한 길이 울퉁불퉁 험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선비는 길에 대해 들었을 때 이를 열심히 실천할 것이다. 중간치 선비는 이를 반신반의할 것이고, 가장 수준이 낮은 선비는 길에 대해 듣자마자 크게 비웃을 것이다. 만약 이런 수준 낮은 선비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길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다."(上士楣, 勤而行之; 中士楣, 若存若亡; 下士楣,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길은 언제나 부단히 물어질 것이다. 길을 묻는 자는 잘 물어야 한다. 길이 잘못 안내되면 그의 평생의 삶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로서 길의 안내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신 없는 위선적 언어와 행동을 삼가야 한다.

▲ 오늘도 나는 갈급한 심정으로 길을 찾아 나선다.
ⓒ 박인오
나는 시방 길을 가고 있는 구도자이다. 도상(途上)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남에게 길을 안내해주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사람이다. 나부터 착실하게 생명과 진리에 이르게 하는 그 길을 찾고자 노력할 뿐이다. 오늘도 갈급한 심정으로 길을 나선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내 마음에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
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것은
사람이 절대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길이다.
한번도 가지 않은 낯선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신이 보낸 사람이 틀림없다.

(박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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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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