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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아리랑 음반 표지
ⓒ 신나라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울어

앞남산의 뻐꾹이는 초성도 좋다
세살때 듣던 목소리 변치도 않았네

삼십육년간 피지못하던 무궁화꽃은
을유년 팔월십오일에 만발하였네”


위 가사는 우리가 익히 듣던 <정선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원한 노래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배달 겨레는 아리랑으로 통한다. 아리랑만 있으면 같은 겨레임을 알아 보고 서로를 껴안을 수 있음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겨레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보면서 식민지 사람의 아픔과 울분을 달랬다.

신나라 김기순 회장은 “아리랑의 참된 의미”라는 글에서 “아리랑 속에는 인간의 모든 아픔과 갈등, 그리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강력한 저항과 울분이 녹아 있습니다. 아리랑은 그냥 노래가 아닙니다. 아리랑은 삶과 죽음의 소리입니다. 아리랑은 정신을 토해 내는 울부짖음이요, 천하를 가슴에 품고 용서하는 해원의 소리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겨레의 4대 아리랑을 꼽으라면 누구나 서울의 <본조아리랑>, 강원도의 <정선아리랑>, 경상도의 <밀양아리랑>, 전라도의 <진도아리랑>을 말한다. 이 가운데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을 아리랑의 원형을 간직한 가장 원류적인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기록상 4천여 수의 가사가 전해 내려 오고 있고, 노래의 전승체계도 변함없이 이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선아리랑을 “모천(母川, 물고기가 태어나서 바다로 내려갈 때까지 자란 하천)의 노래”요, “아리랑 중의 아리랑"이라고 한다.

특히 <정선아리랑>은 다른 노래들과는 달리 가사가 고정되지 않고, 삶 속에서 꾸준히 창조되어 온 노래이다. 또, 삶 그 자체임은 물론 사람들의 감정이나 마음에 맺힌 것을 걸러 주고, 풀어 주는 노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동안 나왔던 많은 정선아리랑 음반들은 이런 정선아리랑의 의미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다는 평을 받았다. 4천여 수의 가사 중 기껏 20~30여 수의 가사만 실린 것은 물론 삶의 노래라는 평에 걸맞지 않게 단순히 전문 소리꾼의 소리에만 매달린 듯한 음반일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번 신나라(회장 김기순) 레코드는 지난 8월 말경 정선아리랑의 진면목을 담아 내려 한 음반을 출시했다. <삶의 소리, 천년의 노래>라는 별명을 앞에 걸고, 8장의 시디에 한 집안 3대, 10명 소리꾼들의 소리를 채록한 것이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송오리의 동네 소리꾼으로 유명했던 고 남효자 할머니의 아들 김연수(71)씨의 가족 10명이 녹음에 참여했다. 특히 현재 소리꾼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딸 김순녀, 김순덕은 물론 사북여중에 재학 중인 외손녀까지 70대에서 10대까지의 두 세대를 뛰어 넘는 노래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녹음한 외손녀 상아의 노래는 전문 소리꾼들의 노래로만 듣던 정선아리랑을 풋풋하고 신선하게 만드는 마력을 보여 준다. 이 정선아리랑은 오랫동안 쌓여 온 농익은 소리와 한층 경지에 다다른 소리에다 아직 덜 익은 풋풋한 소리까지 아우러지는 기막힌 조화의 세계이다. 또 음반 곳곳에 그들의 대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자연스러움까지 배어 나온다.

▲ 김순덕씨
ⓒ 신나라
좀 더 구체적인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녹음한 사람들 중 김순덕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전화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순박한 정선아리랑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 본격적으로 정선아리랑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어려서 할머니가 하는 소리를 정선아리랑인지도 모르고 따라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다. 그러다 전문 소리꾼이 된 언니에게서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게 1982년도 제7회 “아리랑병창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정선아리랑전수관에서 공부하게 됐다."

- 서울에서 전문 소리꾼이 된 언니가 부럽거나 서울에 진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그저 정선이 좋고, 정선아리랑이 좋기에 다른 데 갈 생각이 없다. 지금처럼 여러 학교에 다니면서 가르치는 일이 좋기 때문에 그냥 고향에서 소리하는 것을 즐기겠다."

- 이번에 중학생인 딸과 같이 녹음을 했는데 그 딸이 소리를 한다면 밀어 줄 생각인지?
"나처럼 딸 상아도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고, 좋아한다. 내가 정선아리랑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딸이 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 정선아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정선아리랑은 '눈물'이다. 나는 정선아리랑을 하면서 좋아서도 눈물을 흘렸고, 기뻐서도 흘렸다. 그래서 '눈물' 외에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김순덕씨는 인터뷰 도중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정선에 한번 여행오라고 권한다. 이것이 바로 정선아리랑의 철학이 아닐까? 속세에 찌든 소리가 아닌 그야말로 자연과 함께 삶이 순박하게 녹아든 입김을 느껴 본다.

이어서 이 음반을 낸 신나라 이태규 상무를 인터뷰를 했다.

-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사설을 직업 소리꾼이 아닌 생활 속의 3대 소리꾼에게 직접 채록한 것이 이채롭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나?
"정선아리랑이 삶의 소리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전승되어 온 4천여 수의 노래 중에 겨우 몇 십 곡만 듣고 정선아리랑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동안 전문 소리꾼의 익숙한 소리만 들어왔지만 사실은 모든 정선 주민의 노래가 아니던가? 그래서 일상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또 그것을 한 가족을 통해서 채록하고 싶었다."

- 아리랑이 세계 최고의 노래로 평가받았다는데?
"유네스코에서 세계토속전승민요에 대해 ;아리랑상'을 만들었다. 올해는 필리핀의 한 토속민요가 상을 받는데 그만큼 아리랑이 세계 민요의 대표임을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두해 전인가 독일에서 언어인류학자와 음악가들이 모여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노래로 '아리랑'을 선정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 정선아리랑 비석
ⓒ 신나라
그 내용을 알아 보니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만든 '세계 아름다운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아리랑이 8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선정됐다고 한다. 선정단에 한국인은 없었고, '아리랑은 나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했다', '들으면서 몇 번이고 흥이 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다' 등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이들 모두 처음 아리랑을 들었다고 하는데 '유진 박'이 전자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고 한다."

- 정선아리랑 음반을 기네스북에 올리려는 계획이 있다는데.
"이 음반에는 무려 400여 수의 노래를 수록했다. 어떤 음반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에서 기네스북에 올리는 일을 추진하고 있고, 한국기네스 쪽에서 올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말을 들었다."

- 정말 어떤 음반보다도 획기적이고, 기념비적인 음반이라 할 만한데 음반을 낸 이후의 계획은?
"필리핀 산속 마을에 아리랑 곡조가 남아 있다고 하며, 히말라야 산 속에도 원주민이 아리랑을 부른다고 한다. 또 쿠바 이민 1세대 교포들에게서도 아리랑 흔적이 있다는데 이것들을 직접 찾아 채록하여 '해외아리랑모음집'을 낼 계획이다."

- 신나라는 국악의 발전을 위한 의미 있는 음반을 많이 기획한다.
"당사의 김기순 회장이 음반 회사를 시작하면서 '음반 산업을 하는 이상 한국 음악에 최대한 이바지 하는 것이 도리이며, 그만 둘 때까지 한국음악문화를 아끼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금 그것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김기순 회장의 철학이 오늘의 여러 기념비적인 음반이 나오는 데 가장 튼튼한 밑바탕이 된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태규 상무는 정선 현지에서 소리를 녹음하면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덧붙였다. "6달 동안이나 전문 소리꾼이 아닌 사람들까지 현지 녹음을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보람도 컸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특히 녹음에 참여했던 순덕씨의 고모와 이모는 정선읍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녹음하는 날은 장사를 접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녹음 잘하라며 주변 다른 분들이 장사를 다 해 줬고, 격려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정선 사람들의 정선아리랑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음반 상자를 열면서 8장의 시디가 나를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 이 소리꾼들을 모두 뵙고, 음반이 아니라 생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정선아리랑 시디를 끝까지 들으며, 이 음반이 그런 내 욕심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동안 신나라에서 SP음반 복각을 위해 많이 투자했고, 실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번의 정선아리랑 음반 발매는 SP음반 복각의 의미를 넘어서는 더 큰 의미를 던지고 있다. 앞으로 해외아리랑을 수집하고 채록하는 계획이 있다니 더욱 기대된다. 나는 다음의 정선아리랑 한 수를 들으며, 정선 두메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의 문학적인 재능과 해학이 뛰어남에 새삼 놀란다.

“이리 치구 저리 치구 행주초매 둘러치구
열모김치 소금 치구 오이김치 초 치구
칼로 물 치구 채 치구 빼치구야
니가 평창 칠십리를 간다더니
평창 십리 다 못다 가구서 왜 돌아왔나

우리 댁에 사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깎구깎구 머리 깎구 씨수씨구 모자 씨구 입구입구 양복 입구
치구치구 각반 치구 신구신구 구두 신구 돈 한짐 잔뜩 걸머지구
서울 장안 종로거리루 화투치러 갔는데
상하동 초군님네들 삼사오륙호 아니거들랑 내 배 타루 오게


▲ 정선아리랑을 녹음한 3대
ⓒ 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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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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