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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앞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원로교사 반공교육 참회선언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원료교사들이 반공교육 시대를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며, 후배교사들의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제가 바로 복종과 증오로 점철된 반공교육을 가르쳐온 선생입니다."

교단에서 평생을 보낸 퇴직 원로교사들이 과거 맹목적인 반공교육을 실시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퇴직교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원로교사 10여명은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치욕으로 점철된 반공교육 시대를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한 퇴직 교사로서 그 굴종을 반성하고 참회한다"고 밝혔다.

이날 원로교사들은 "과거에는 '때려잡자 공산당', '박살내자 북괴군'을 외치는 게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인 줄 알았다"며 "이처럼 학생들의 인격을 파괴하고 이성을 말살해온 반민족·반통일 교육을 강요했던 자신들 모습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라고 회고했다.

원로교사들이 털어놓은 '반공의 추억'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침마다 교문에 들어서며 "멸공" 구호로 선생님께 경례하던 모습, 주문처럼 북진통일·멸공통일 중얼거렸던 '우리의 맹세', 반공 포스터·표어·웅변대회·글짓기. 수많은 제자들을 '북괴군 때려잡는 똘이장군'으로 만들었던 교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고백됐다.

원로교사들은 "우리는 과거 피터지는 경쟁과 탐욕의 자유를 가르치고 미국을 숭배하는 것이 현대적 시대감각이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이라며 "이런 치욕스런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참회 없이 교사로서 양심을 지켜낼 수 없기에 이 자리에 나섰다"고 밝혔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익대 사범대 학생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후배교사들 국가보안법 폐지에 나서달라"

원로교사들은 "전국적인 반공교육의 광풍 뒤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독초와 가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현직교사로서 겪은 국가보안법의 서슬 퍼런 위세를 증언하기도 했다.

원로교사들은 "군사독재 시절은 학생과 선생이 서로를 감시해야만 하는 코뚜레에 얽매여 있었다"며 "간혹 무심결에 북측 지도자를 칭찬하거나 남쪽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라도 하면 당장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이라는 죄목으로 끌려가곤 했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들은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기보다는 거짓과 침묵을 가르치도록 강요받았고, 결국 학생들에게 아첨하고 굴종하는 노예의 순종을 미덕이라고 가르쳤던 반교육적 행태를 보였다"고 원로교사들은 과거 치부를 드러냈다.

이어 원로교사들은 "후배 교사들에게는 교육자로서 이러한 치욕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떳떳한 양심과 용기를 지녔으면 한다"며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교육투쟁에 후배 교사들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81년 이른바 '아람회 사건'에서 '수괴'로 지목, 국가보안법 처벌을 받았던 정해숙(72)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씨는 "국보법이 무서운 이유는 고문과 징역과 같은 한 피해자의 고통 때문만이 아니다"며 "국보법이 진정 악법인 이유는 우리 사회를 온통 불신과 공포, 비겁함과 거짓으로 가득 차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83년 12월 형집행정지가 된 뒤 겪어야 했던 고충을 차분히 토로하기도 했다.

아람회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권이 '5·18 유언비어 유포', '제2의 김대중 내란음모 기도' 등 혐의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인 용공조작극 사건이다. 당시 피의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김난수 대위의 딸 '아람'이 백일잔치에 피의자들이 모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씨 외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활동한 김귀식, 윤한탁, 이규삼씨 등이 참석해 국가보안법 폐지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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