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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주최로 열린 '갈등 해결을 통한 민주적 조직운영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역할극을 하고 있다.
2003년 평화여성회 갈등해결센터 주최로 열린 '갈등 해결을 통한 민주적 조직운영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이 역할극을 하고 있다.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여성회, 갈등 해결 교육에 주력

시민단체 가운데 평화적 갈등 해결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단체는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이하 평화여성회)다. 평화여성회는 현재 갈등해결센터를 설립하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문화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평화여성회가 평화적 갈등 해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애초 이 단체는 남북 화해와 지속가능한 평화 정착을 위한 평화문화 확산, 전쟁 예방 및 군축 등이 활동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과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한 상을 그려 가면서 고민에 빠졌다. 통일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사회·문화·정치적으로 완전히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것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적 갈등 해결 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평화 운동을 제대로 펼쳐 나가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그때부터 사회 갈등을 평화적으로 푸는 길을 찾아 나섰다. 이후 2년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평화적 갈등 해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활동을 펼치기 위해 갈등해결팀을 꾸렸고, 2003년에 갈등해결센터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평화여성회는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강사 육성회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평화여성회는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강사 육성회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여성회가 평화적 갈등해결에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박수선 갈등해결센터 소장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확장된 시민단체의 역할을 꼽았다.

"예전에 시민단체는 주로 투쟁 중심의 활동을 펼쳐 왔다. 즉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그 이슈를 관철시키기 위한 집회나 시위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사회적 현안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충돌이 빚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양쪽 모두 옳은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는 그 해결책을 찾는 게 쉽지 않은데 이 과정에서 자의나 타의에 의해 시민단체가 갈등 해결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차이를 못 받아들여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

현재 갈등해결센터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을 모색하고 적용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력하는 분야는 문화적 영역, 특히 교육 활동이다. 이런 배경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평화적 갈등해결을 위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이 한몫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상황을 보면 서로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의견이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걸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남에게 말하는 방법이나 남의 얘기를 듣는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

갈등해결센터의 박 소장이 가진 이런 인식은 초·중·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작은 실험으로 나타나고 있다.

관악고에서의 '갈등해결과 평화' 창의 재량 수업시간
관악고에서의 '갈등해결과 평화' 창의 재량 수업시간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서울 관악고등학교에서는 지난 1학기에 1학년을 대상으로 갈등 해결과 평화 교육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이 시간에 갈등 예방과 해결의 기초, 자신의 갈등 대응 유형 이해하기, 갈등의 심화요인, 합리적 의사소통의 부재 극복, 갈등 원인 분석과 갈등 해결 등을 배웠다.

서울에 있는 역삼중학교, 이화여대부속중학교와 연희초등학교 등에서도 평화적 갈등 해결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학교 교사를 상대로 한 평화적 갈등 해결과 관련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사회 활동가 등 평화적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갈등 해결과 평화 강사 트레이닝'을 지난 해와 올 상반기에 두 차례 진행하여 강사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평화적 갈등 해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단체는 대화문화아카데미(이하 대화아카데미)가 있다. 대화아카데미는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 갈등의 현주소와 갈등 해결의 철학적 기반을 주제로 워크숍을 가졌다.

이 행사에는 평화적 갈등 해결에 관심을 가진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학계 관계자 약 30명이 모였다. 대화아카데미 정지석 연구위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평화적 갈등 해결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들끼리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대화아카데미는 올 하반기 과제로 지난해 우리 사회에 큰 현안이었던 전남 부안군 방폐장 건설 문제를 모델로 갈등 해결을 위한 기초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국가 업무에 갈등영향평가 도입 추진

시민단체의 이런 노력과 별개로 국가기관에서도 평화적 갈등 해결을 위해 제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대통령자문기관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이하 지속위)는 사회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해 갈등해결연구팀을 두고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위가 평화적 갈등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과 변화된 사회 환경이 한몫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 해결을 강조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열린 전북언론인간담회에서도 평화적 갈등 해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이 많고 다양한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중략) 의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다 해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에는 정부의 공권력을 통해서 그런 것을 봉쇄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은 쓸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대화로 풀 수밖에 없는데 대화를 통해서 토론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고 그 결론에 승복하는 이러한 질서가 민주주의 질서입니다."

변화된 사회 환경은 노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언급되듯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와 탈권위주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는 현안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의 갈등이 국가 등 권력에 의해 억압되거나 잠재돼 있는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사회 민주화에 힘입어 밖으로 표출되거나 확산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사회 환경은 과거처럼 갈등을 힘에 의해 해결할 수는 없게 만들었고 그 대안이 바로 평화적 갈등 해결인 것이다.

현재 지속위가 추진하는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관리기본법(가칭) 제정이다.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은 갈등 관리 제도의 체계화와 효율적인 갈등 해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국가에서 사업을 수행하기 전에 갈등 발생 요소가 있는지를 먼저 평가하는 갈등영향평가제 도입을 기본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 현안과 관련한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부득이하게 발생한 갈등에 대해서는 협상이나 조정, 중재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또 사회 전 영역에 대해 갈등을 관리하기 위해 갈등 예방, 갈등 관리, 교육훈련 프로그램 기본 틀을 개발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들이 갈등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갈등 예방 및 관리 매뉴얼'도 개발할 계획이다.

사회 현안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노력과 관심은 학계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 법학과 박노형 교수는 지난해 7월에 한국분쟁해결연구소를 열었다. 협상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한국 사회에 합리적인 협상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게 설립 목적이다.

이 연구소는 아직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행정자치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평화적 갈등 해결 교육을 진행했다.

평화적 갈등 해결은 일상생활이 돼야

국가기관과 시민단체, 학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평화적 갈등 해결 방안은 일반 시민들의 일상과 결코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박노형 교수는 "평화적 갈등 해결은 일상 생활이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생활 자체가 협상이 기본이 된다. 서로 의견 차이가 발생하면 조정을 시도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생활에서 협상이 필요할 때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응용도 하지 못한다.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당연히 몸에 익힐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적 갈등 해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 국가기관이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갈등 해결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박수선 소장은 평화적 갈등 해결이라는 방식에 대한 인식을 그 한 가지로 꼽는다.

"1999년에 각 분야에서 모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중재에 관한 토론을 할 때 '중재는 야합이 아니냐', '정부 정책에 도움만 주는 것 아니냐', '중재라는 게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것 아니냐' 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다. 이를 두고 의견을 모으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지금은 사회 현안으로 갈등을 겪어 본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갈등 해결 방법을 배워야겠다고 먼저 나설 정도로 비교적 인식이 많이 전환되었지만 그처럼 인식을 넓히는 일이 중요한 과정이다."

또 평화적 갈등 해결을 위한 모델이 뚜렷이 없다는 것도 어려움 중 한가지다. 지속위 남재우 기획운영실장이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그런 것이다.

"다른 법안을 만드는 것과 달리 갈등관리기본법안은 우리 사회에서 처음 만드는 것이다 보니 뚜렷한 모델이 없다. 미국과 일본 등의 외국 사례도 찾아보았으나 우리 사회 환경과 어울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처럼 모델이 없으니 이에 대한 해석들도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갈등 관리'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우리는 갈등 예방과 갈등 해결을 총칭해서 사용하는데 한때 시민단체에서는 시민단체도 관리하겠다는 것이냐는 인식을 갖기도 했다."

또 공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평화적 갈등 해결 수업 역시 아직은 '비공식적'이다. 따라서 정규 수업이 아니라 창의적 재량수업이나 방과 후 수업을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수업시간을 개설하는 과정이 학교 관계자와 알음알음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 측 역시 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별도의 재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재정 문제가 불거지면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나마 의미 있는 실험들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수선 소장은 "아직은 전문 교사 양성 등 기반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공교육에서 의무적으로 평화적 갈등해결 수업을 진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며 "현재 진행하는 교육의 효과 등을 평가해 보는 일들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평화적 갈등해결 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당장 투여할 수 있는 인적 재원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탄강 댐 갈등 관리, 새 모델 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불거지는 갈등을 힘이나 권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노력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속위가 평화적 갈등 해결의 한 사례로 추진하고 있는 한탄강 댐 갈등 관리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한탄강 댐 갈등 관리는 한탄강 댐 건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풀어 보자는 것이다. 한탄강 댐 건설은 1990년대 후반 임진강 유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건교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주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으로 엇갈리고, 환경단체와 건교부의 대립 등이 맞물려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지속위가 평화적 갈등 해결의 새 모델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직접 나섰다.

지속위는 지난 2월 '한탄강 댐 갈등관리준비단'이 구성되자 댐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 대표와 건교부, 댐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대표와 환경단체가 참여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지속위는 이 과정에서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고 당사자들 간에 대화가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만 맡고 있다. 이 준비단은 오는 8월말까지 시한을 두고 7월말 현재 10여 차례에 걸친 회의를 진행해 왔다.

지속위 남재우 기획운영실장은 "현재까지의 분위기로 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럴 경우 우리 사회에서 갈등 해결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화적 갈등 해결 문화가 정착될수록 힘과 권력으로 무엇을 결정하는 사회 시스템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 시스템 구축은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들에게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평화적 갈등 해결을 위한 개인의 노력, 집단의 노력, 국가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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