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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다르게 산악 지형과 호수가 많이 있어서 낯설음과 두려움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도를 펴 봐도 자세한 지형이 잉글랜드처럼 나와 있지 않다. 도로들은 산길을 피해 호수 면과 해안가를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고 도시 또한 호수가 끝나는 지점이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요충지에 있다. 그 외 지역은 1000m가 넘는 산악들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서있다.

▲ 국도 A 82를 알려 주는 표지판
ⓒ 이경수
해안가로 연결된 A 도로(영국은 M, A, B 순으로 도로가 표시된다)를 만나려면 험준한 산을 통과해야 한다. 만약 차량이 도로가에 서 버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상 전화박스나 주유소를 찾을 수 없고 인가도 드물어 낮선 땅에 버려졌다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하늘과 땅 사이에 혼자 서있는 기분, 그러나 그런 곳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주인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 스코틀랜드의 산양들
ⓒ 이경수
길 가에 길게 누워 자던 산양들은 무심히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을 바라보며 의문의 표정을 보내왔다.

'누구요, 무엇을 보려고 여기에 왔소? 이곳은 인간들이 머물 곳이 아니라 우리 산양들이 당신들을 내려다 보는 하이랜드오. 그러니 속히 내려가시오.'

▲ 산악 지역의 양들은 일반 양들과 다르게 검은 털이 나 있다.
ⓒ 이경수
고국 귀환을 일주일 남기고 왜 갑자기 스코틀랜드를 가보고 싶었는지 내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 '무엇을 보려고 이곳에 왔을까?'

네스(Roch Ness) 호수의 새벽 안개를 보려고 3시에 일어나 운전을 하여 인버네스 도시를 가로지르니 적막과 고요 속에 중세 도시가 반겨 주었다. 중세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도심부 중심에 거대한 고딕 교회가 위용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서있는 타운 홀이나 시청은 그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듯이 설립된 연도가 시계 밑에 새겨져 있다. 150년이 넘었어도 그 시계들은 지금도 정확하다.

▲ 지붕이 없는 교회와 묘지는 이 고장의 깊은 역사를 보여준다.
ⓒ 이경수
▲ 인버네스 시의 새벽 전경
ⓒ 이경수
타운 홀에는 첨탑이 있는데 그곳에는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이정표와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 그리고 고장과 역사를 뜻하는 문장과 설립연도가 표시되어 있다.

도심을 지나 국도로 접어들면서 처음 온 손님을 당황케 하듯 도로 표지판에 숫자만 보였다. 감각적으로 큰 길을 따라 산악 지역으로 올라가니 점점 도로가 좁아졌다. 겨우 차량 한대가 통과할 수 있는 소로 길에도 포장은 잘 되어 있다.

한참을 올라가면서 직감적으로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번 온 길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는 고집 때문에 지도에서 봤던 도로들이 만나는 지점을 되새겨 보았다. 그러다가 좌측으로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물살이 내 머리를 자극했다.

▲ 산야와 호수
ⓒ 이경수
고지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처녀지 호수는 지도에도 작게 표시된 이름 없는 무명 호반이다. 인적도 동물도 찾아오지 않는 그곳을 지키는 주인은 역시 낮게 자란 억새풀과 바람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고개 운전을 하다가 문득 무모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무엇을 보려고 이곳까지 왔나?' 그러나 역시 생각한 대로 호반을 따라 난 연결 도로가 나왔다. '그럼 그렇지 처음 왔다고 이 길을 모르겠나?'

괴물 네스가 출연했다는 네스 호 하류부터 상류까지 새벽에 달리는 기분은 세상에서 홀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모두 잠든 적막한 호숫가에 떠오르는 해오름은 분명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찰라의 환희'였다.

▲ 괴물 네스가 산다는 네스호
ⓒ 이경수
드디어 답을 찾았다. 이것을 보려고 이곳에 왔다. 상식으로 해는 동쪽에서 떠오른다. 그러나 때로는 구름 밑으로도 떠오른다. 쉬어가며 호수 주변을 천천히 드라이브하는데 갑자기 구름 밑으로 해가 내려오는 장관이 펼쳐졌다.

'해가 치솟는 것이 아니라 내리치다니…….'

순간 잡았던 카메라를 들이밀자 해는 다시 운무 속으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숨겼다.

▲ 구름 사이의 해돋이
ⓒ 이경수
'아, 이것을 보려고 700 마일을 달려 왔구나!'

괴물 네스는 못 봤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들은 사막의 밤하늘을 위함이요, 사람들의 정겨움은 낮선 것을 이겨내기 위함이라, 고난을 알기에 위로가 달고, 수고가 있기에 쉼의 여유가 있어 정겹다.

부산에서 백두산까지 갈 수 있는 거리를 이틀 동안 달려 온 후 하루를 쉬고 다시 남부 잉글랜드의 런던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새로운 안식을 얻으러 오는 친구를 맞이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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