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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초가을 들녘에 들깨가 한창입니다. 아침 이슬 머금고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나면서 태양의 양기를 마음껏 받아 아주 튼실하게 자랐습니다. 저렇게 자라기까지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 또한 적지 않겠지요. 땅은 정직한 법이라고 어른들께선 늘 말씀하셨지요.

아침 이슬에 촉촉이 젖어 서 있는 들깨밭 너머로 안개에 덮인 산이 보입니다. 제법 두터운 안개였지만 이제 막 떠오를 태양을 위해 서서히 물러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떠날 때 미리 알고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떠날 때가 지나도 미련스럽게 엉버티고 서서 온갖 추한 꼴 다 보이는 못난 인간들보다 훨씬 괜찮은 녀석이란 생각이 듭니다.

ⓒ 이기원
밥풀처럼 희고 작은 들깨꽃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잘 여문 씨알을 준비하기 위해서지요. 밥풀만한 꽃에 어울리게 들깨씨는 작고 둥근 모습입니다. 깨알 같은 녀석들이라 흉보지 마십시오. 작은 들깨알이 모이면 한 되들이 소주병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넉넉한 들기름이 되기도 한답니다. 덜렁 덩치만 큰 녀석들에 비해 까무잡잡하고 작지만 가득 기름을 채우고 있는 들 깨알이 훨씬 실속 있는 녀석이지요.

거미란 녀석도 하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도 않은 거미줄을 지키고 죽은 듯 앉아 있습니다. 메뚜기며 잠자리도 이슬에 젖어 아직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태양이 떠오르고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이 사라지면 몸이 가벼워진 메뚜기며 잠자리도 허공을 날아다닐 겁니다. 운 나쁜 녀석이 거미 무서운 줄 모르고 거미줄로 날아들면 끝장입니다.

ⓒ 이기원
노련한 왕거미가 솜씨껏 쳐놓은 거미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어린 시절 날아가던 참새가 거미줄에 걸려 버둥대던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제 몸집보다 큰 참새를 보고 기겁을 하기는 거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미는 거미대로 놀라 도망가고 참새는 참새대로 날지 못해 버둥대고 그 와중에 거미줄은 하나둘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땅에 떨어진 참새를 발견한 동네 꼬마 녀석이 ‘좋아라’ 달려갔습니다.

아침 이슬이 걷히고 태양이 떠오르면 또 다시 활기찬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활기찬 하루 속으로 우리들도 바삐 달려갈 것입니다. 그 바쁜 모습으로 우리들은 또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듬뿍 만들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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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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