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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인권확보 공동행동'은 2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 열고 법무부에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촉구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인권확보 공동행동'은 2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 열고 법무부에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 사례 1.
홍아무개(18·정신지체 3급·자폐) 모 고등학교 학생은 지난 2002년 11월 학교근처의 교회를 배회하다가 파출소로 연행됐다. 이때 관리인이 예전에 교회에서 자판기 돈이나 성경책이 없어진 일이 있다고 경찰에게 귀끔했고,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으로 홍군을 추궁했다.

홍군은 자폐 장애의 특성상 겁을 먹은 상태에서 수사관의 유도 질문에 허위자백을 하게 됐다. 이후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고 결국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 사례 2.
정아무개(25·여·시각장애인 1급)씨는 지난 2003년 8월 80대 노인으로부터 지팡이로 찔리고 엉덩이를 맞는 등 추행을 당했다. 이에 경찰에 신고했으나 출동한 경찰은 정씨가 이전에 2차례 성희롱 신고를 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신고를 무시하고 임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정씨에게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아느냐?" 등의 말로 피해자인 정씨의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인권센터는 서울 S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해당 경찰관은 자신의 징계가 부당하다면서 소청을 제기한 상태다.


사법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주소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인권확보 공동행동'은 2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장애인들의 사법차별을 고발하는 한편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특히 "법무부가 지난 8월 29일 51개 조문을 수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장애인들의 인권보호에 관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며 "이번 발표에서 장애인들의 인권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고 토로하면서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촉구했다.

장애인단체,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촉구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형사소송법(이하 형소법) 상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청각장애를 가진 피해자 또는 피의자에게 정확한 수화통역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한 대필과 대독 서비스와 점역서비스, 법정 및 수사상황에 대한 설명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정신지체 및 정신장애인의 진술 과정에서 보호자 또는 변호인 참여가 보장되지 않음으로써 피해를 입고 있으며, 장애유형별로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행 형소법에서 형사절차상 보조인의 범위를 배우자, 친족 등 가족과 법정대리인 등에 한정하는 것을 넘어 '신뢰관계에 있는자'까지 확대해줄 것을 법무부에 촉구했다. 이로써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장애로 인해 보조인의 도움이 불가피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형사상 권리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보조인선정에 대한 고지를 의무화해 실질적인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장애유형에 맞게 통역인이나 보조기기 사용이 가능토록 요구했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시각장애인인 경우 조서를 점자 또는 플로피디스켓 등으로 작성해 음성지원시스템으로 본인이 직접 확인토록 하고, 정신지체장애인의 경우 의사소통보조인 또는 비디오테이프 등을 이용해 답할 수 있도록 해 진술과정에서 무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는 등을 개정안에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수사관을 상대로 장애인 등 진술능력 취약자에 대한 수사상 인권보장에 관한 상시교육을 의무화하도록 촉구했다.

"억울하게 범인되는 경우 비일비재... 수사편의주의·인권감수성의 부재"

주신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사진 왼쪽)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만들어지도록 요청하고 있다.
주신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사진 왼쪽)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만들어지도록 요청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이날 기자회견에는 주신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김정열 소장, 박숙경 인권팀장이 참석했다.

박경숙 인권팀장은 "진술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형사상 불리하게 법을 적용한다거나 강압적으로 자백을 받아 죄 없는 사람을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사건의 범인으로 몰기도 한다"며 "또 피의자가 작성된 진술서를 확인해야 함에도 장애인들, 특히 정신지체장애인들의 경우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인권팀장은 "우여곡절 끝에 범인이 아님을 밝힌다고 해도 이미 판결이 난 이후라느니, 증거가 부족하다느니 등의 이유로 판결의 번복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근본적으로 판·검사, 경찰들의 수사편의주의와 인권감수성의 부재, 자신의 실수를 인정함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 상실에 대한 두려움, 판례를 만듦으로 인한 이후 사건처리의 번거로움 등에 의해 장애인들의 인권이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법무부를 찾아 김승규 법무부장관의 면담을 요청하고, 이번 형소법개정안에 장애인 인권보호조항을 포함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 단체 이외에도 44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에 동참하고 나섰다.

"편안한 마음 갖게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
주신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 현행 수사환경 개선 촉구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주신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회장이 직접 참석했다. 언어장애인인 주 회장은 수화로써 통역사를 통해 인사말을 기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기자들과 김 소장, 박 인권팀장이 나누는 대화를 통역사를 통해 일일이 전해 들었다.

그리고 주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오간 구체적인 개정안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무엇보다 고충을 겪고있는 장애인들의 인권 실태에 대해 말했다.

우선 주 회장은 "장애인들에 대해 형사절차상 배려가 이뤄지지 않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수사상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능은 매우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회장은 "장애인들은 수사에 있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판단하기에 앞서 경찰이나 검찰이라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안감이 앞선다"며 "장애인들에게 (수사기관의 역할이) 열악하다는 피해의식이 앞서기에 편안 마음을 갖지 못하는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편안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주 회장은 "사회인권보장에서도 장애인의 인권 또한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로써 중요하다"며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도 일반인과 똑같이 누릴 수 없다는 점을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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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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