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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볼품없고 작은 개복숭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황도나 백도 등의 폼나는 이름도 갖지 못했습니다. 돌이 지난 아이의 주먹만도 못 되는 크기에다, 군침을 돋울 만한 때깔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못생기고 촌스러운 녀석이지요.

온갖 치장을 다하고 매장에 진열된 때깔 좋고 탐스러운 복숭아에 밀려 지금은 별볼일 없지만 녀석도 한때는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지만 많이 달린 개복숭아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간식거리였습니다.

한여름 개울에서 텀벙대다 배가 고프면 개복숭아 나무 아래 몰려들어 따먹었습니다. 작은 열매를 따서 두 손에 잡고 힘을 주면 연한 속살이 드러났지요. 빨간색의 씨도 보입니다. 한 조각 입에 넣고 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갑니다.

ⓒ 이기원
볼품없는 생김새에 비해 맛은 참 좋습니다. 겉모양에 반해 덥석 사온 복숭아가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은 밋밋한 맛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개복숭아는 늘 새콤달콤한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저물어가고 가을 바람이 옷깃을 스칠 즈음이면 개복숭아도 노랗게 익어갑니다. 돌처럼 단단하던 열매가 차츰 물렁해지고 단맛이 늘어갑니다.

개복숭아를 먹다 보면 벌레도 많습니다. 거무스레 변한 과육에서 벌레가 꿈틀대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개복숭아를 먹으면서 그 벌레가 징그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벌레 있는 부분만을 발라내고 나머지 부분은 맛있게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이가 약해 잇몸에 의지해서 사셨습니다. 틀니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개복숭아가 지천으로 달릴 때면 할머니는 긴 막대기와 비료 포대를 들고 개복숭아를 따러 가셨지요.

한나절 지나면 할머니는 개복숭아가 가득 담긴 비료 포대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 많은 복숭아를 마루에 쏟아놓고 생김새도 반듯하고 맛도 좋아 보이는 건 손자 녀석들 몫으로 골라 놓습니다.

남은 건 전부 양은 솥에 넣고 삶습니다. 간혹 단맛을 내기 위해 감미정 몇 알을 넣고 삶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삶았습니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의 간식입니다. 할머니 옆에 턱을 괴고 앉아 있다가 먹어본 삶은 개복숭아는 색다른 맛입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많이 사라지고 달착지근한 맛으로 변합니다.

ⓒ 이기원
개복숭아를 먹고 남은 씨앗은 어머니가 따로 모으십니다. 잘 씻어 말려두었다가 어느 정도의 양이 되면 어머니는 시장 건재 약방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복숭아씨가 중요한 한약 재료라고 합니다. 어머니가 건재 약방에 내다 파신 것은 개복숭아 씨만은 아닙니다. 뽕나무 뿌리, 옥수수 수염, 패랭이꽃을 비롯해서 다양한 것이었지요.

ⓒ 이기원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다 개복숭아 몇 개를 따왔습니다. 어린 시절 먹어보던 개복숭아의 추억에 젖어보기 위해서지요. 아이들 불러 앉혀놓고 개복숭아를 쭈욱 찢어 불그레한 속살을 보여주며 한 조각씩 입에 넣어줄 겁니다. 개복숭아를 처음 먹어보는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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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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