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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의 하늘처럼 푸르른 것이 없습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하늘엔 구름이 몇 조각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가 유독 좋았습니다. 좀 춥기는 했지만, 긴 꼬리를 그리며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도 잘 보일 만큼 아주 맑은 날씨였습니다.

그렇게 맑은 하늘의 구름 사이로 무언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울긋불긋한 깃털이 있는 독수리인지, 아니면 나무 사이를 오가는 딱다구리인지, 아니면 커다른 풍선을 매달고 하늘로 오르고 있는 열기구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은 구름 뒤에서 가끔씩 모습을 감추며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눈밭에 피어난 동백꽃처럼 구름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은 백두산 산신님과 함께 있는 진달래 선녀였습니다. 진달래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어딘가로 날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새해가 다가오면 날씨가 유독 맑아집니다. 이제 곧 하늘로 올라갈 분들을 위해서 하늘을 말끔히 청소해 놓아야합니다.

조왕신이 곧 일월궁전에 올라가야합니다. 옥황상제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칠성님들도 열심히 구름차를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섣달이 되면 하늘나라의 선녀들은 구름을 모으고 바람을 풀어놓아 그분들께서 하늘로 올라갈 길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야 언제라도 하늘에 오르고자 하는 하느님들이 있으면 구름차를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올 수가 있습니다.

그날 진달래 선녀는 하늘의 구름조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시는 산신령님들의 길을 막을 것처럼 구름조각들이 가는 곳마다 널려있었지만, 진달래 선녀는 감히 치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섣달 그믐에는 초대 받지 않은 손님들이 하늘나라에 올라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기 때문입니다. 진달래 선녀는 그렇게 청소하는 것이 힘이 들거나 귀찮아서 다른 곳으로 나들이를 가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간 상기된 듯, 볼이 여느 때보다 좀더 발그레하긴 한 것으로보아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저 아래로 산들에 둘러싸인 호수가 보였습니다. 진달래 선녀가 도착한 곳은 동자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동자들이 사는 곳은 이세상의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인간계에 있긴 하지만, 이 세상과는 엄연히 다른 곳이었습니다.

하늘을 닿을 듯 높게 솟은 산이 주위를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마어마하게 넓은 호수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호수 물은 밑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습니다. 그 호수 위에는 집채만한 연꽃 수 만 송이가 가득 피어 호수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혹시 누군가 길을 잃어 깊은 산 속을 헤메다 실수로 그 곳에 이르러 그 화사한 연꽃 모습에 취하여 그 꽃을 가져가려고 한다 하더라고, 아무도 그 호수에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괴물이나 거인 같은 것이 호수를 지키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호수는 주변을 둘러보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산들만 보일 뿐 호수를 지키고 잇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거인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아름답기만한 평화로운 연꽃나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물에는 부력이 전혀 없어서 기러기 깃털이 떨어져도 바로 물 밑으로 빠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아무리 최신식의 모터를 장착한 배를 띄워본들 아름다운 연꽃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 호수 속에는 금강석처럼 빛나는 신비로운 잉어들이 우아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연꽃 사이 사이로 색동옷 같은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 펄펄 날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에 잠시 취해서 구름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으련만 진달래 선녀는 바삐바삐 호수 한가운데 피어있는 연꽃송이로 날아갔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던 연꽃송이는 진달래 선녀가 다가가자 화악 꽃잎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울긋불긋한 도포를 입은 어린아이가 한명 서있었습니다.

진달래 선녀는 가뿐이 연꽃 송이에 내려앉아 그 어린아이의 키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는 반갑게 껴안아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동자님. 그동안 잘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진달래 선녀님, 선녀님이 오시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렇게 정답게 인사를 하자 연꽃 송이 위로 나비 한마리가 날아가는지 무언가가 포로롱 솟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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