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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조 케리 대통령 후보의 베트남전 활약상 및 반전운동을 비판한 책 <지휘 부적격 : 쾌속정 참전용사들 존 케리를 반대한다> 표지.
민주당 조 케리 대통령 후보의 베트남전 활약상 및 반전운동을 비판한 책 <지휘 부적격 : 쾌속정 참전용사들 존 케리를 반대한다> 표지. ⓒ 연합뉴스
문제의 발단은 케리가 월남전에서 쾌속정을 타고 메콩강 전선을 누볐을 당시 함께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참전 용사들이 조직한 한 그룹이 케리의 월남전 전과가 조작되었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보내면서 시작됐다.

'진실을 위한 쾌속정 참전용사들'(Swift Boat Veterans for Truth·이하 '쾌속정 참전용사 그룹')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단체는 텍사스에서 공화당에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한 후원자에게 일부 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광고와 동시에 친 부시 성향의 텔레비전과 라디오쇼 등에 등장해 케리의 월남전 전과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에 앞서 <언핏트 포 커맨드(Unfit for command)>라는 책에서 "케리가 무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불확실한 베트콩 틴에이저 한 명을 추적해 살해한 것을 과장해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케리가 월남전에서 돌아와 월남전을 비하하며 격하게 반전운동을 벌였으며, 케리는 이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출세한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 단체의 광고가 펜실베이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등 주요 격전지에 집중적으로 뿌려지며 다른 격전지들로 확대할 조짐을 보이자 케리 진영은 "이들의 더러운 짓을 중단시켜라"라고 부시 진영에 촉구하는 한편 지난 19일 연방 선거위원회에 이들과 부시 진영과의 커넥션을 조사해 달라며 정식 제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부시 진영은 20일 연방 선거위원회에 보낸 서신에서 '쾌속정 참전용사 그룹'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한편, 이 그룹이 광고를 중단하게 해 달라는 민주당 측의 요청도 거절했다. 오히려 부시의 보좌관들은 민주당 진영에 모든 외부 그룹들의 광고를 중단하도록 요구한 부시의 요청에 먼저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케리 진영, 부시의 멕케인 공격 비디오 공개

박빙의 리드를 지키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더 이상 지켜 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케리 진영은 지난 20일 '쾌속정 참전용사 그룹'을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제소했다. 이어 21일에는 지난 2000년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존 멕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공격한 내용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했다. 당시에도 부시는 존 멕케인의 월남전 공훈이 과장되었다고 공격해 멕케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케리 진영은 21일 이메일을 통해 이 비디오를 지지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조지 부시는 그의 케케묵은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비디오에는 멕케인 상원의원이 "부시를 지지하는 외곽단체인 참전용사 그룹들이 나를 공격했을 때, 부시는 단 한마디도 이에 대해 (사과의)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포함되었다.

또 이 비디오에는 멕케인의 동료 상원의원들이 부시를 향해 "(멕케인에게) 사과하라. (부시는)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증언한 장면과, 멕케인이 한 참전용사에게 "부시는 정말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렸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비디오는 멕케인이 "조지, 당신의 이 같은 행위가 나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원망하는 장면도 들어 있다.

한편 21일 버지니아 로아노크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던 케리의 러닝메이트 에드워즈는 공개된 비디오 테이프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이야말로 조지 부시에 대한 진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금 그가 어떤 종류의 인물인지, 어떤 종류의 지도자인지를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는 이어 "(케리를 모략하는) 광고물은 2000년 대선에서 존 멕케인을 공격하는데 자금을 댔던 같은 인물들에 의해 제작되었다"면서 "부시 진영은 이들에게 당장 광고를 중단하도록 명령하라"고 촉구했다.

케리 월남전 동료 "케리 공훈 조작된 것 없다"

한편 케리의 월남전 전과 조작 이슈가 언론에 보도되자 케리의 참전 동료이자 현재 <시카고 트리뷴>의 편집인인 윌리암 루드가 오랜 침묵을 깨고 '35년 전의 진실'을 밝히고 나섰다.

미국 TV에 광고로 방송된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의 베트남 참전 때의 모습.
미국 TV에 광고로 방송된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의 베트남 참전 때의 모습. ⓒ AP=연합뉴스
그 동안 루드는 미국의 유력지중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의 편집인이라는 입장 때문에 케리의 월남전 전과 조작 논란에 대해 자신의 신문에 기고는 물론 인터뷰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최근 케리가 진실을 밝혀주도록 요청한 것도 거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루드는 <언핏트 포 커맨드>의 공동 저작자이자 월남전 참전용사로 쾌속정 요원인 존 오닐이 최근 텔레비전에 출연해 케리의 월남전 전과를 비하하는 것을 보고 격분했고, 케리의 요청을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윌리암 루드는 22일 <시카고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월남전에서 케리가 한 행동들에 대해 제기된 최근의 보도들은 잘못된 것이며, 케리와 함께 근무했던 참전용사들의 명성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당시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부정확한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듣고만 있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반박문을 쓰게된 동기를 밝혔다.

루드는 이어 "케리가 당시 추적했던 베트콩은 성인이었으며, 그와 함께 다른 베트콩들도 도망치고 있었고, 일부는 숲 속에서 사격을 가해 왔다"고 증언하고 "케리의 공훈이 부풀려진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케리는 나중에 상관들에 의해 칭찬을 받았을 만큼 독특한 공격 전략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루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오닐은 "루드는 케리가 자신의 자서전 두 편에서 밝힌 내용과 일치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면서 "그 동안 책을 쓰기 위해 루드를 만나려고 했는데 (만나지 못했고), 이제야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 때문인 게 분명하다"고 루드의 주장에 의혹을 제기했다.

로이터 통신 "케리 월남전 전공 조작, 입증 서류 없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연일 케리의 월남전 공훈 조작시비를 톱기사로 다루고 있는 가운데 <로이터 통신>은 21일 케리가 월남전에서 받은 훈장들이 조작되어 받은 것이라고 주장해온 7명의 참전용사중 하나인 벤 오델이 "이를 입증할 만한 단 한 건의 서류도 갖고 있지 않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이 부시 진영과의 관련성에 대해 질문하자 벤 오델은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으나 '공화당 선거전략가이자 쾌속정 참전용사 그룹 고문인 매리 스패드와 접촉해왔다'고 밝혔다. 매리 스패드는 텍사스에서 공화당에 거금을 기부한 거부이자 부시 행정부의 정치수석 고문인 칼 로브의 보좌관인 봅 페리로부터 주택을 구입하는 등 개인적 거래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트리뷴>은 22일 케리가 1969년 2월 28일 남부 베트남에서 세운 전과는 미군군사 기록 서류들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부시 지지자들이 케리를 향해 이 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를 일종의 맞불작전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들어 케리 진영에서는 여러 차례의 유세와 광고에서 부시가 월남전에 참여할 수 있었는 데도 참여하지 않았던 점과, 부시가 군복무 중 불법적으로 근무지를 이탈해 학업 및 개인 사업을 했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해 왔다.

이번 미국 대선이 경제문제와 더불어 누가 미국을 가장 강력하고 안전하게 이끌 지도자인가에 최대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마당에 부시의 병역문제는 케리 측에 좋은 공격거리임이 틀림없다. 케리도 반전운동 경력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이고, 이번에는 월남전 전과 조작 시비에 휘말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어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월남전 '병풍', 대선 막바지까지 위세 떨칠 듯

부시 진영 선거본부 대변인인 스티브 쉬밋은 21일 <뉴욕타임스>에 "존 케리는 부시 대통령의 월남전 기간 동안의 군복무에 대해 근거 없는 공격을 반복하는 등 무모하게 네거티브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부시의 군복무 문제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케리의 월남전 공훈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35년전의 월남전 망령으로 인한 병풍 공방이 사그러들기보다는 대선 막바지까지 위세를 떨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선 다가올 8월말의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시 진영이 케리의 월남전 전과 조작 문제를 또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으며, 이어 9월말부터 시작될 후보간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전시 지도력' 이슈를 놓고 병역문제가 다시 터져 나올 게 뻔해 양 진영간의 치고 받는 혈전이 예상된다.

양 진영이 이어질 병풍 공방에 어떤 대책을 들고 나올지, 여론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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