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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1일자 '김대중 칼럼'.
ⓒ 조선일보 PDF
왜 <조선일보>는 ‘과거사청산문제’만 나오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가.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제기해왔던 과거사청산문제를 정치권이 적극 받아들이려는 조짐이 보이고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과거사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포괄입법’과 ‘포괄기구’를 제의한 이후 조선일보의 ‘반발’이 도를 지나쳐 ‘정신분열적 징후’마저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통령의 과거사관련 언급 이후 국정원, 국방부, 검찰 등 국가기관이 시민사회단체 참여 하에 과거사관련 특별기구 등을 구성해 과거사청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이후 조선일보는 사설 <대한민국의 시계는 지금 몇 시를 가리키는가>에서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해 "개개 사안별로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국가기관들을 무슨 범죄단체로 보는 발상', '홍위병', '60년대 중국을 재현하려는 의도' 운운하며 '도둑 제발 저린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고 진상조사에 나서겠다는 국가기관들을 향해 '벌떼처럼 일어선 꼴', '스스로의 권위를 짓밟는 굿거리'라는 독설을 쏟아 부었다.

시민단체들을 향해서도 "아마 시민단체 행세를 하고 있는 정권의 외곽단체, 관변단체, 어용단체들도 곧 성명서를 쏟아낼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의 발목을 잡아두려는 ‘잔꾀’를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신기남 의장 부친 친일행적과 의장직사퇴 관련기사에서 자신들의 ‘교활한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신 의장이 보여온 이중적인 태도와 거짓말은 집권당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문제"라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의 사퇴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조선일보는 18일 사설에서 조선일보류의 ‘적극적 친일’과 ‘일제치하의 백성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 친일행위가 당대에 살았던 모두의 '원죄'라도 되는 양 '물타기'했고 19일 A6면 <아군희생 딛고 "가자! 과거사로">에서 '과거사 청산'을 정치권의 '정략적 싸움의 산물'로 호도하는 한편 신 의장을 그 희생자라도 되는 양 몰아가는 ‘야비한’보도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어진 8월 21일자 '김대중칼럼'은 조선일보의 과거사청산관련 ‘곡필’의 전형으로 평가할 만하다.

“우리의 권력자들은 걸핏하면 ‘역사 바로 세우기’를 들먹인다. 특히 자신의 권력장악의 명분을 ‘개혁’이라는 것에 둔 사람일수록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양 꺼내든다”는 김대중 특유의 ‘야유성 멘트’로 시작하는 이 칼럼은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 잘못 서 있거나 비뚤어져 있다는 말인가?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엉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거꾸로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 잘 서 있는가. 바로 세울 부분이 없을 만큼 반듯한가?”

김대중씨는 이러한 질문을 예상한 듯 다음 문단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긴 세월 속에 많은 곡절이 없을 수 없다. 굴종도 있었고 반역도 있었고 전쟁도 있었고 패배도 있었다. 역사가 길수록 음지도 많은 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러 고비를 넘으며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의 대열에 동참해 있다. 세계에서 열 몇 번째쯤 되는 경제력을 갖고 있다. 올림픽에서도 이만하면 당당히 세계열강과 겨루게끔 됐다. 결코 만족할 수는 없지만, 또 사안별로는 부끄러운 대목도 없지 않지만, 전 세계 여러 민족과 겨루어 볼 때 이만하면 ‘괜찮은 역사’라고 자부할 수 있다.”

김대중씨 스스로 ‘우리 역사의 음지’를 인정하고 있으며 ‘사안별로 부끄러운 대목’도 인정하고 있다. 과거사청산은 바로 김대중씨도 인정한 ‘음지’와 ‘부끄러운 대목’을 다함께 다시 짚어보고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잘못을 다함께 돌아보고 반성하자는데 조선일보는 왜 이토록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인가.

이어지는 김대중씨의 글은 김대중씨가 가진 ‘자괴적 역사관’을 스스로 드러내는 대목인 듯하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권력자와 집권세력은 마치 우리가 낯을 들 수 없는 수준의 역사를 지닌 것처럼 폄훼하는 것일까. 우리가 그렇게 부끄러운 민족이고 형편없는 나라인가. 역사는 그 나라의 대외적 상품이기도 하다. 어째서 외국인이 볼 때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류(下流)역사처럼 여기게 만드는 것인가.”

누구도 우리가 낯을 들 수 없는 수준의 역사를 지닌 것처럼 폄훼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꾸로다. 수많은 외침과 일제시대와 군부정권을 거치면서도 우리는 건재했다.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혹은 친일과 친독재로 이기적 영달을 꾀할 때에도 땀흘려 일하며 ‘민주화’를 진전시켜온 밑바닥 백성의 저력이 있기에 우리는 자랑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밑바닥 백성의 자랑스러운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자는데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난리를 치다니 조선일보가 어찌 이토록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이어지는 다음 문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한편 자신이 저질러온 ‘흔들기형 보도행태의 극치’를 단 한 번도 되돌아 자성한 일 없음을 보여주는 뻔뻔스러움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설혹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해도 ‘우리 것’을 되도록 미화하고 다듬고, 부족한 것은 극복하는 차원에서 함께 자성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닐까.

역사가 긴 나라, 의식이 제대로 박힌 민족을 보면 온통 ‘좋은 역사’로 치장돼 있는 것을 본다.

... 그것은 조상을 위해서도 그 가문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의식과 정신을 위해서이고, 나라를 더 밝은 쪽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되도록 역사를 미화하고 좋은 면을 확대 선전하는 것이다. ... ‘부끄러운 역사’에 주눅든 민족은 부끄러운 현재를 살 수밖에 없다. 잘못 서 있거나 ‘비뚤어진 역사’만을 강조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과연 김대중씨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문민정부시절 문민정부가 개혁정책을 시행하려하면 온갖 논리를 들이대 개혁적 인사와 개혁정책을 후퇴시켜 나라를 욕보이고,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좀더 개혁적인’ 정부에 대해 그동안 조선일보는 어떤 보도 행태를 들이밀었던가.

‘흔들기’, ‘길들이기’로 평가되는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 행태에 대해 김대중씨는 단한 번 돌아본 일이 없다는 말인가. 왜 조선일보는 설혹 개혁정부가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되도록 ‘우리 정부’니까 미화해주고 다듬고 부족한 것을 극복하도록 함께 자성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내가 하면 온당한 비판이고 자신의 반대세력이 하면 ‘정략적 악용’으로 몰아붙이는 조선일보의 부끄러운 이중잣대에는 정녕 ‘약’도 없단 말인가.

김대중씨는 “걸핏하면 우리 역사를 잘못된 것인 양 몰아 자신의 업적(?)을 ‘바로 세우기’로 치장하려는 상황 속에서는 역사는 단지 정치적 도구일 뿐”이라고 썼다.

필자는 김대중씨에게 “걸핏하면 시민단체를 홍위병으로 몰아 자신의 잘못을 물타기 하려는 조선일보의 보도행태 속에서 ‘사실보도’는 단지 조선일보선전의 도구일 뿐”이라는 말로 위 문단을 되돌려주고 싶다.

마지막 문장에서 김대중씨는 과거청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단죄하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일종의 정치적 사디즘(sadism)”으로 치부했다. 소가 하품하고 여우가 그 교활함에 혀를 내두를 일이다.

김대중씨를 비롯한 일군의 조선일보 내 수구적 필진들이야말로 자신과 입장이 다른 반대세력을 군부독재시절에는 ‘용공 좌경’으로 몰며 희열을 느꼈고 소위 색깔론이 먹히지 않는 오늘에는 온갖 선동적 어휘로 욕하고 헐뜯으며 희열을 느끼는 ‘언론권력형 사디스트(sadist)들’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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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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