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이곳에서 무성한 칡덩굴을 보고 있으면 칡의 그 강한 생명력에 압도되는 느낌입니다. 일단 뿌리를 내리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타고 올라갑니다.

ⓒ 이기원

ⓒ 이기원

가녀린 억새 줄기라도 타고 오릅니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도 개의치 않고 아카시아 나무를 타고 오릅니다. 산등성이 높이 솟구친 소나무 줄기를 타고 오른 칡덩굴이 소나무 전체를 휩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나무는 사라지고 거대한 칡나무가 서 있는 느낌입니다.

ⓒ 이기원

ⓒ 이기원

일찍이 방원은 정몽주 앞에서 '하여가'란 시를 읊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서 새 왕조 건설에 동참하기를 권유하는 시였지요.

일단 뿌리를 내리고 덩굴을 뻗기 시작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타고 오르는 칡과 같이 대의와 명분을 떠나 조선 왕조 건설에 참여해달라는 간절한 청원이었지요. 이를 거절했던 정몽주는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방원이 노래했던 만수산 드렁칡이 얼마나 무성한지 볼 수는 없지만 봉화산 드렁칡도 그에 못지 않게 무성합니다. 덩굴 사이로 보랏빛 칡꽃도 보입니다. 저 무성한 칡은 우리네 인간들에게는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유용한 것이었지요.

ⓒ 이기원

보릿고개 넘기던 이들에게 칡뿌리는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먹거리였지요. 어린 시절 납작한 옥수수 반대기를 만들어 양쪽으로 칡잎을 싸서 칡떡을 만들어 먹었지요. 따끈하게 익힌 칡떡을 손에 들고 칡잎을 벗겨내면 노란 옥수수 반대기가 김을 모락모락 올리면서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설탕이나 꿀을 넣은 것도 아닌 단지 소금으로 간을 맞춘 것이지만 그 맛에 대한 그리움은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줄기는 건망증 심한 나무꾼의 나뭇짐을 묶는 데 사용되기도 했지요. 어린 시절 팔기 위해 칡 줄기를 끊으러 산을 오르던 기억도 있습니다. 보랏빛 칡꽃은 따서 말려두면 차를 끓여 먹을 수 있답니다.

비탈진 곳이면 어디나 타고 올라 삶의 터전을 만드는 칡덩굴의 강한 생명력은 때로는 다른 것의 삶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거대한 칡덩굴의 포로가 되어버린 소나무가 안쓰럽게 보이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 이기원

봉화산 드렁칡이 얽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처럼 쑥쑥 자라 햇살을 양껏 받을 수 있는 몸이 아닌지라 햇살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하늘 향해 치솟은 나무들을 타고 올라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오랜 세월 지나서 철갑처럼 단단한 줄기를 두른 소나무처럼 되지는 못하지만 산 짐승의 튼실한 다리보다 굵고 단단한 뿌리를 만들어 비탈진 산허리를 타고 오를 힘을 비축하기 위한 이유겠지요.

중국은 고구려사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 아닌 거칠고 척박한 땅에 의지해서 살아온 이들에겐 봉화산 드렁칡의 그 질기고 강한 생명력은 꼭 배워야할 가치 있는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