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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 전남대 분회 소속 노조원들이 12일 대학본부 로비에서 단체교섭과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 전남대 분회 소속 노조원들이 12일 대학본부 로비에서 단체교섭과 노조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대학당국이 하루아침에 시간강사들을 내팽개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인간도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우리의 존재를 쉽게 생각했던 것 아닌가.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 밖에는 다른 기술이 없는데, 지금으로선 막막하다."

전남대학교에서 12년째 노동법 강의를 해온 시간강사 하우영(49)씨. 92년 모교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계속 학자로서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시간강사인 그는 지금 대학당국으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된 처지다.

학생들에게는 '교수'로 통하지만, 비정규직 시간강사 생활 10년째인 그에게 생계의 그늘이 없을 리 만무하다. 그동안 학교보다는 돈이 되는 취업학원을 쫓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노동법 학자로서의 꿈을 접을 수 없었고, 아직도 자신의 강의를 찾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계적 위촉기간 단축... 2006년부터 3년 이상 강사 위촉 배제

10여년 넘게 노동법 강의를 해 온 하우영 강사. 노조 정책실장인 그는 성적제출 거부를 이유로 사법당국에 고발된 상태다.
10여년 넘게 노동법 강의를 해 온 하우영 강사. 노조 정책실장인 그는 성적제출 거부를 이유로 사법당국에 고발된 상태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그는 스스로 "우리는 일용 잡급직"이라고 말한다. 교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보다도 못하다는 것. 방학 기간에는 여지없이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런 그에게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핀잔이 없는 것도 아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것.

다른 선택의 길도 없지 않았다. 올해 초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시간강사로만 10여년을 넘게 일해온 그로서도 주어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벌써 큰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 무렵 학교로부터 간곡한 강의요청이 왔다. 관련 강사가 없다는 것이다. 생계보다 '강단에 설 기회'를 더 소중히 여겼던 그는 고심 끝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새로 일하게 된 직장에서는 말못할 소리까지 들어가며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40여일 가까이 폭염 속에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한국비정규직노조 전남대 분회 소속 시간강사들은 '시간강사 위촉원칙 철회'와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대학본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대학은 올해 초 갑자기 '시간강사 위촉원칙'을 내밀어 올 2학기부터는 10년 이상 강의를 해온 강사들에게 강의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2006년부터는 3년 이상 초과자에 대해서도 위촉을 불허한다는 방침이다. 하씨는 그 첫 대상이 된 셈이다.

대학에 따르면 우선 올해 2학기부터 위촉기간 10년을 초과한 시간강사에 대해 위촉 자체를 불허하고, 2005년 1학기에는 7년 이상, 2005년 2학기에는 5년 이상 초과자에 대해 강사 위촉을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또 오는 2006년 1학기부터는 통산 3년 이상 된 시간강사에 대해서 모든 강사 위촉을 금하도록 했다.

전남대 교수노조준비위·민교협 "시간강사 차별 시정해야"

전남대 교수노조 준비위원회(위원장 이채언)·전남대 민교협(의장 원승룡)은 12일 성명을 통해 "대학당국은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시간강사의 채용과 해고를 본부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위촉문제는 해당 학과에 일임시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합당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서는 특히 "교수가 아직 마감하지 않은 성적을 대학당국에서 강압적으로 제출케 하는 것은 폭력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삼는 반교육적 처사"라며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허무는 잘못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노조 조성식 분회장에 대해 2학기 강의를 맡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일반회사도 해고를 할 때면 합당한 절차와 구실을 제시하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은 교육기관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정과목을 맡은 교수를 임의로 해고할 정도로 가벼운 과목이었느냐"고 반문했다.

노조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나"

35℃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천막농성은 15일로 38일째를 맞고 있다. 노조가 단체교섭 요구안을 제시하며 두 달여 가까이 협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학은 단 한차례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학은 현 정석종 총장의 임기가 16일로 끝난다며 차기 집행부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노조는 "강의라는 것은 3년∼5년 시간이 가면서 틀이 잡혀 완성되는 것인데, 3년마다 바꿔지면 학생들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냐"며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구분이 없이 막무가내로 3년 이내로 자르겠다고 하는 것은 학문의 특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기말고사 성적 제출 거부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하씨는 대학당국으로부터 사법기관에 고발된 상태다. 노조는 "성적처리는 해당 강사들의 고유권한인데도 대학이 최종 수정을 거치지도 않는 성적을 강제로 백업파일을 이용해 장학사정까지 마쳤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부인이 '이제는 나보고 감옥수발까지 하란 말이냐'고 하더군요.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은 지극히 한시적 이용가치밖에 안됐습니다. 대학은 우리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 교섭의 대상이라고는 평가해 주지 않습니다. 생사여탈권은 대학에서 쥐고있고, 여전히 스승과 제자로만 보고 있는 것이죠."

하씨는 "10여년 넘게 노동법을 강의해 오면서도 정작 노동현장의 실상을 전혀 몰랐다"며 "공채 불이익을 두려워해 누구 하나 내놓고 문제삼지 않았던 비정규직 스스로도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잘못 인정하지만 전면 철회는 힘들어"
[학교측 입장] 교육부의 '시간강사 왜 늘었느냐' 지적이 발단

전남대 교육연구처 한 관계자는 13일 "시간강사 위촉원칙을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학기에 10년 이상 초과자에게 강의를 배제하기로 한 결정은 일단 그대로 강행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다음 학기에 10년 이상자를 포함해 모든 것을 풀어 협상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2006년부터 모든 학과에 3년 이상 초과자에 대해 강의를 불허키로 한 것에 대해서는 "학과마다 특성이 있다는 것을 추후에 알게 됐다"며 일부 잘못을 시인했다.

이 관계자는 "교육부로부터 '최근 2∼3년간 전임교원이 100여명 충원됐는데도 시간강사가 왜 늘었느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교육부 정책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시간강사 수를 줄여나가기 위해 내린 방안이었다"고 말했다.

담당 강사의 동의없이 성적을 처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성적처리 시한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며 "문제가 있으면 추후 정정기간을 주고 고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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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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