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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4일부터 8일까지 서울 국제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PUN & FUN' 전시회
ⓒ 오마이뉴스 김태형

무한복제와 무한리플의 소비시대. 그 가벼움과 진중치 못함에 대한 반성이 '유쾌한' 상상으로 펼쳐진다.

실험적 문화콘텐츠 연구모임인 에코(ECHO, Experimental Contents Host) 주최로 지난 4일부터 5일간 서울 국제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된 펀 앤 펀(Pun & Fun) 전시회에는 이러한 고민을 담은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계원조형예술대학을 중심으로 국민대·수원대·상명대 디자인·미디어 관련 학과에서 80여명의 교수진, 학생이 참여한 이번 전시회에는 영상, 그래픽디자인, 플래시, 인터액티브 설치 등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80여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재가공과 패러디가 범람하는 온라인 시대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작가들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못하다. "누군가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세상에 나온 작품이 언제든 냉소와 조롱의 소재로 전락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꺼내놓은 화두는 '기분좋은 가벼움'이다. 불특정 다수와 비실명으로 상징되는 온라인상의 폭력성과 비겁함에 대해 꾸짖기보다, 짓궂지만 밉지 않은 웃음으로 사람의 마음에 다가서고 싶다는 희망을 작가들은 내비치고 있다.

▲ <식민(植民)? 식민(食民)!!>
ⓒ 정은경

백성을 잡아먹는 친미사대주의?

▲ <테러리스트(Terrorist)>
ⓒ 한승민
이날 출품된 작품 중 정은경(계원조형예술대학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의 작품 <식민(植民)? 식민(食民)!!>은 그 제목부터 우선 괴기(grotesque)하다. 정 교수는 "친미정책으로 인한 사대주의는 단순한 식민(植民)을 넘어 '백성을 잡아먹는' 식민(食民)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성조기의 반짝이는 별빛을 위로 올리면 "가난이 점 박힌 식민(食民)지 백성의 고달픈 모습"이 펼쳐진다. 구멍이 숭숭 뚫린 성조기 별빛을 쬐고 있는 남한 민중의 발밑에는 태극기가 청승맞게 놓여있다. 민족 주체성 회복은 요원한 희망?

그 옆 한승민씨 작품 <테러리스트(Terrorist)>에는 인류평화와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행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작품이 걸려있다. '테러리스트(TERRORIST)'라는 글자 조합 속에서 이 작품은 에러(ERROR)와 테스트(TEST), 그리고 어스트(ERST)라는 단어를 뽑아낸다.

그런데 과연 인류의 평화와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세력은 누구일까. 작품 밑에는 영어단어 조합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함께 적혀있다. "에러가 생겼다. 그래서 테스트를 받았다. 이젠 숨을 멈추고 영원한 휴식을 향한다."

신생아에게 명품 모빌을!?

▲ <명품 모빌>
ⓒ 강유선
강유선씨의 작품 <명품 모빌>은 제목 그대로 루이뷔통·구찌 등 각종 고가 명품 로고를 이용해 만든 신생아용 모빌이다. "14만원짜리 구찌 지우개와 7만5000원짜리 에르메스 가죽연필을 33만원짜리 루이뷔통 필통에 담아 다녔다"는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이 작품에는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한 우리 사회의 '명품 선호' 세태를 꼬집고 있다.

강씨는 "어떤 친구들은 이 작품을 보며 예쁜 장식품 정도로만 생각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강씨는 "아이들에게까지 명품을 각인시키려는 일부 부유층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며 "작품에 표현된 것처럼 명품에 대한 일방적인 선호는 결국 그 그림자만을 좇는 웃지 못할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우리의 모나 리자(Our Mona Lisa)>
ⓒ 원종현
익숙한 만큼 곱씹어 볼 만한 모나 리자 패러디 작품 원종현씨의 <우리의 모나 리자(Our Mona Lisa)>에는 "놀랄만한 가격! 겨우 9달러 98센트"라는 문구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원씨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내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을 관객들에게 환기시킨다. "예쁘고 비싼 것을 원하는 사람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

이번 전시회를 총괄한 강윤주(계원조형예술대학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자체도 '주제의 가벼움'이라는 기법과 방식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다"고 전시회 취지를 설명한 후, "학제간의 교류와 학생들의 작품 활동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는 기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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