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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통신의 텔레비전 방송인 APTN이 지난 6월3일 입수했다가 김선일씨가 피살된 직후 공개한 비디오 테이프가 13분 분량의 원본을 5분으로 편집한 것으로 확인된 것은 또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 2일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서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증인들에게 질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일 국회 '김선일씨 피랍사건 진상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공개한 비디오테이프에는 김선일씨가 ▲우리집 주소는 한국 부산시 동구 범일 6동 ▲3일 전에 나의 보스(가나무역 김천호 사장)가 팔루자에 가서 베개와 매트리스 등 상품을 배달하라고 했다고 말한 부분이 들어있다. 이 비디오는 지난 7월30일 AP통신이 감사원에게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 부분이 지난 6월24일 AP가 처음 공개한 김씨 비디오테이프에는 빠져있다. 이른바 원본 비디오테이프 만으로 김씨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도 AP통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이유와 왜 처음에 공개할 때 이 부분을 삭제했는지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그동안 김씨의 비디오 테이프만으로는 그가 납치당했는지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없었고 한국 외교통상부에 문의했으나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보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해왔다.

따라서 AP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외교부에 사실 확인을 정확하게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제대로 확인을 했으나 다른 이유로 보도를 유예한 것(엠바고)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AP 외교부에만 문의한 것이 맞는가?

일단 AP가 외교부에 제대로 확인을 했는가부터 논란이다. AP통신은 그동안 6월3일 외교부에 "김선일로 발음되는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실종됐는가"라고 물었지만 비디오테이프의 존재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해왔다. 따라서 AP통신이 별 성의없이 취재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7월30일 청문회에서 6월3일 외교부에 문의했던 AP통신 서울 지국의 서수경 기자는 "나 뿐만 아니라, 최상훈·이수정 기자도 외교부에 문의했다"고 말했다. 3명의 기자가 나섰다는 것은 AP가 상당히 집요하게 취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대해 서 기자의 전화를 받았던 외교부 공보관실 정우진 사무관은 "서 기자한테 전화를 받았으나 김선일이라는 이름을 들은 바 없다"며 "최 기자 등과는 통화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 기자와 이 기자는 외교부 공보관실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사실 확인 요청을 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공보관실을 통한 취재의 경우 공식 경로를 통한 '정식 취재'다. 민감한 사안의 경우 공식적인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거나 아니면 다른 언론사에 새나갈 우려가 있다. 따라서 기자들은 특종 기사의 보안을 위해 공보관실이 아닌, 평소 알고있는 내부 취재원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루트는 단지 외교부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알만한 위치에 있는 다른 안보·정보 부처가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국회 진상조사 특위는 지난 30일 청문회에서 최·이 두 기자한테 2일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일 비디오도 원본일까?

지난 6월24일 오전 김선일씨가 피살당한지 하루가 지나서 AP통신이 지난 6월3일 APTN 바그다드 지국이 입수한 김선일씨 비디오를 공개했을 때부터 과연 원본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총 5분인 이 비디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중간에 촬영 각도가 조금 변하고 중간에 멈추는 부분이 있는 등 편집된 흔적이 있었다. 이는 2일 AP통신이 지난 7월30일 감사원에게 제출했던 비디오를 통해서 확인됐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비디오도 과연 원본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김씨가 자신의 집 주소를 말하는 내용 다음에 화면은 없이 아랍어 음성만 나오는 부분이 3분 정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고려로 보도하지 않은게 아니냐"

2일 청문회에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내가 확인한 바로는, 테이프 원본을 AP서울 지국 기자들이 최근에야 처음으로 봤다고 한다"며 "AP 본사에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아닌가? 국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AP본사와 APTN 본사, APTN 바그다드 지국 3자에게 답변서를 보내야 한다"고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

송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6월3일 AP통신 한국인 기자들이 외교부에 문의를 할 때 이들은 비디오 테이프 원본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는 AP통신 본사에서 비디오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서울 지국 직원들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채 취재를 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더 나아가 "AP통신이 외교부에 문의했던 것은 알리바이를 맏들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이는 AP통신이 누군가로부터 엠바고 요청을 받거나 또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앞두고 있는 한국 정부의 상황을 고려해 김씨 비디오테이프를 보도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확인을 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외교부에 문의하는 시늉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제기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도 "문제의 테이프가 AP측에 전달된 시기에 이집트인 1명과 터키인 2명이 미군 군수품을 수송하다가 무장세력에게 피랍됐고, 이들의 모습은 비디오로 공개됐는데 왜 한국인 김선일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았는지도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2일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지난 6월 3일 APTN이 입수한 김선일씨 생전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원본이 방영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는 한편으로 미군의 사전 인지설과도 강력하게 연관된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김씨의 피랍 사실이 알-자지라에 의해 알려진 지난 6월2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씨는 17일께 피랍됐고 이같은 사실을 미군으로부터 통보받았다"며 "20일 모술에 갔던 것도 이 문제를 미군 당국과 협의하기 위해서 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달 23일 이후 그는 "당시 통화 상태가 좋지않아 <연합뉴스> 기자가 잘못 알아듣고 쓴 것"이라며 미군 사전 인지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터뷰를 했던 <연합뉴스> 안 아무개 기자는 "김 사장이 말한대로 그대로 기사를 썼다"며 반박하고 있다.

즉 김씨의 피랍 사실을 사전에 알았던 미군 당국이 APTN 바그다드 지국이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한 사실을 알고 엠바고를 요청했다는 가설이 세워지는 것이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 학대 파문도 엠바고 경험

지난 4월28일(미 현지시각) 미 CBS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자행된 미군들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을 보도했다. 그러나 CBS는 이 보도를 하기 3주 전에 이미 관련 자료를 입수했었다. 그러나 사실 확인에 들어가자 미군 당군은 포로 학대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직 진행중이고, 당시 팔루자를 봉쇄하고 폭격을 실시하고 있는 와중에 사건이 공개되면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미 CBS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엠바고를 지켰다. 그러나 주간지 <뉴요커>의 세이모어 허쉬 기자가 미 육군 소장 안토니오 타구바 소장의 포로 학대 보고서를 입수해 곧 보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CBS는 보도를 했다. 당시 미 CBS는 지나치게 오랜 기간동안 미군 당국의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AP통신이 처음 공개한 비디오만으로도 충분히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더구나 AP통신은 초 단위로 신속한 보도 경쟁을 하는 통신사다. 그런데 왜 비디오를 입수할 당시 이를 공개하지 않았는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고있다.

핵심 참고인, 증인들 출석안해 논란

이날 청문회는 시작부터 논란이 일었다. 일부 핵심 증인과 참고인들이 사전 예고없이 갑자기 출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원들은 강제 구인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할 틈도 없었고 공개 청문회는 3일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일단 가나무역의 이라크 현지 직원인 장계민씨와 이나라 씨가 이라크에서 귀국하지 않았다. 특히 장계민 씨의 경우 지난 6월10일과 16일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의 지시를 받아 원청업체인 AAFES에 김선일씨 피랍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던 사람이다. 이들은 반드시 청문회에 나와야 할 사람이었으나 귀국을 거부했다.

가나무역의 의뢰를 받아 이라크 무장단체와 협상에 나섰다는 이라크인 여성 변호사와 가나무역 현지 이라크인 여성 직원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현지 항공편 사정으로 이라크를 떠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3일 오전 한국에 들어와 이날 오후 비공개 조건으로 청문회에 나올 예정이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지난 30일 청문회가 참고인으로 신청한 AP통신 서울 지국의 최상훈·이수정 기자의 불출석이다. AP통신이 김선일씨 비디오의 핵심 내용을 삭제했음이 드러난 이상 이들의 출두는 대단히 중요하다.

부실덩어리 감사원 조사부터 감사해야 할 판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감사원 조사가 총체적 부실덩어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감사원부터 감사해야 한다는 비난이 나올 정도다.

감사원은 한 달 이상 매달려온 '김선일씨 피살사건' 조사 결과를 지난 28일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이미 감사원의 '카드특감'도 부실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일단 2일 박 진 의원이 공개한 김선일씨 원본 비디오는 지난 7월30일 AP통신이 감사원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박진 의원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30일 청문회에서는 김선일씨 피랍 여부를 외교통상부에 문의한 AP통신 기자가 감사원 조사대로 1명이 아니라 3명이란 사실이 AP통신 서울지국 서수경 기자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김씨의 피랍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인 6월22일 주 이라크 한국대사관이 '정확한 피랍일자를 당분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비문'을 외교통상부 본부에 보낸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이 내용들은 감사원 보고에는 빠져있었다.

김천호 사장과 현지 대사관의 유착 의혹도 새로 드러났다. 지난 4월말 현지 대사관이 팔루자 지역에 담요 5500여장 10만달러어치를 제공하기로 하고 납품을 가나무역에 맡겼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금 10만달러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담요 보관료 매일 100달러도 가나무역이 부담하고 있다.

현지 대사관은 김 사장한테 모두 6만5000달러를 빌렸다가 이자도 주지않았던데다 물품마저 사실상 외상으로 10만달러나 구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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