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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얼마 전 지난 삶을 되돌아 보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짐을 정리했는데, 상패만 80여개가 나오더군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제 인생의 흔적들이랍니다.”

어린 시절의 장애 경험을 봉사 활동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다. 18년간 웅변학원을 운영하며 봉사 활동의 길을 걸어온 김문규(47. 대전 한민웅변학원장)씨가 그다.

지역 내의 방범대장, 청년회장, 학교 급식후원회장, 학교 운영위원장 등을 하면서 지역 봉사를 해 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운영하는 학원을 통해 불우 아동의 무료 지도는 물론이고 장학금 지급, 낙후 지역 도서 보내기, 어려운 계층에 쌀 지급, 중국 연변에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글 보급 등이 그의 선행의 일부들이다.

그의 선행이 무척 독특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선행이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18년이란 세월 동안 한결같다는 점과 바로 그가 어린 시절의 장애를 극복하고 역으로 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삶을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그가 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76년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시절부터 항시 궂은 일을 도맡거나 소외된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펼치던 그는 지난 83년 학원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사회 교육 봉사를 구체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그가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언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말소리도 모른 채 “아” “어”라는 단음밖에 소리 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겪어야만 했던 가혹한 현실이었다.

“제가 태어나던 겨울에 엄청난 폭설로 방에 불을 뜨겁게 때다 보니 제 몸이 바닥에 달라 붙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언어장애와 지능장애를 갖게 된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학교 꼴찌였어요.”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지극 정성으로 서서히 말문이 트여 정상 회복 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친구들의 놀림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던 그였다. 이것이 바로 봉사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됐고 장애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

“말이 우둔하다” “못 한다"는 친구들의 놀림에 어린 나이에 상처를 받고 자란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웅변을 시작했다. “용기 있게 발표하자”라는 생각으로 응어리를 진 마음 속을 풀어 버린 것이었다. 웅변에 대한 연습과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지난 81년에는 중부권 최초로 전국대회에서 대법원장상을 타는 등 70여 차례의 대회에 나가 각종 상을 휩쓸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졸업 후에도 웅변학원을 열고 체계적인 운영으로 충청권 제1의 운영해 나갔다. 몇 해 전부터 학원을 쉬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반인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룹 지도와 개인 지도를 하고 있다.

그는 ‘조금씩 나누며 살기’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그가 남을 돕는 것은 결코 부유해서가 아니다. “제 신발, 옷, 차는 영 시원찮아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잇는 그가 갑작스레 “이 양복 얼마짜리 같아요?”라며 질문을 던진다.

단돈 5만원이 넘는 양복을, 만원이 넘는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근검절약하는 그는 자신에게 투자할 돈으로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창부수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가 이처럼 살아가는 데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3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다 지키며 살고 있어요. 아들딸 구별 말고 3남매 낳자는 것과 차남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자, 그리고 복지 사회에 환원하자고 말이죠. 아내와 저는 7년 전 장기 기증을 약속했습니다.”

‘눈물 젖은 빵 조각을 먹어 본 자만이 인생을 안다’고 강조하는 그는 자신 역시 언어장애, 보증으로 인한 마음 고생, 다양한 봉사 활동을 경험했기에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훗날 많지 않은 재산일지라도 복지 사회에 환원하겠다’라는 결심을 되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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