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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남 현장사진연구소장
이용남 현장사진연구소장 ⓒ 이준희
이 소장은 음독 이유에 대해 "스토리 사격장 안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친구 아버님(우재욱씨)에게 미군과 국방부의 토지 강제 수용으로 발생한 농토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노인네가 지뢰라도 안고 죽겠다는 심정을 여러 번 피력해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절박감이 강했다"고 밝혔다.

음독 당시 위장 세척 등 일체의 치료를 거부했던 이 소장은 병원에서 잠적해 오랜 동안 연락을 끊었다. 그러다 지방에서 요양을 하고 서서히 회복된 그는 지난 달부터 조금씩 외출도 하고, 다시 사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행히 음독 사건은 미수에 그쳤지만 후유증으로 그는 현재까지도 오른손 마비 증세를 겪고 있다.

이 소장은 "그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며 "미군과 군부대와 협의해 토지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31일 일본 다나까와 현에서 의원, 시민단체 대표 등 13명이 스토리 사격장을 방문해 한국의 미군 훈련장의 실태와 폐쇄 운동을 견학할 예정"이라며 스토리 사격장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 연대 활동에 적극 나설 뜻을 밝혔다.

이 소장은 "주한 미군 문제를 이제는 미국에 직접 가서 알리겠다"며 "다시는 외도(음독)를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그는 오는 10월 17일부터 미국 뉴욕 PS1 갤러리에서 파주 등 한국의 미군 피해와 환경 파괴, 실향민들의 삶 등을 주제로 한 작품 40점을 두 달간 전시할 계획이다. 이 전시회는 PS1 갤러리의 초청으로 이뤄진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지난 5월 음독 당시 심정은.
"그때 당시에는 여러 갈래 해석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복잡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세상을 뜨는 게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졌다. 지금에 와서 후회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러한 시도를 후회하는 게 아니라 잠시나마 내가 '외도(음독)'을 했다는 것에 자책감을 느꼈다.

친구 우경복이나 그의 아버지 우재욱씨, 스토리 사격장 농민들은 유서를 써 놓고 농지에 들어간다. 그들이 '지뢰를 하나 가져 와서 죽겠다'는 것들을 내가 말렸다. '나를 믿어라, 지금 내가 군 부대와 국방부로부터 땅을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지금 이렇게 일을 벌려 놓으면 지금 이 땅도 못 받는다'고 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대토를 약속했던 부대장이 다른 데로 가버린 다음에 느낀 자책감은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며, 이제껏 해 왔던 정면 돌파가 나를 짓눌렸다. 저 노인(우재욱씨)이 죽는 게 아니라 내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중생 추모비는 내가 가끔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오는 곳이었다. 답답했을 때나 사건 때마다 찾던 곳이다. 박승주씨가 죽었을 때도 찾아 갔다. 박승주씨는 여중생이 죽은 지 석달 만인 9월 23일께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종합훈련장에서 미군이 이동을 하다가 트레일러로 받아 죽음을 당했다.

여중생 사건이 일어나면서 주한 미군은 이동을 할 때 마을에 통보를 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불과 석 달 만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사고가 났다. 그 날(음독 당시)도 답답해서 추모비에 갔다. '나의 잘못이, 그 판단이 시위를 자제시키고, 잘 될 것이다'라고 한 약속이 무너지면서 그 원망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음독에 재판(2003년 8월 한총련 학생들의 동두천 영평사격장 기습시위를 취재하다 이용남 소장이 시위대로 오인되어 경찰에 불구속된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나는 그 재판 건에 대해 매우 당당하다. 그 재판은 오히려 두 미군의 거짓 증언을 한국 경찰이 받아들여 재판을 하는 것이다. 그 재판에 매우 당당한 상태로 임했기 때문에 괴로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 우경복씨에게 미안해 하는 이유는? 
"우경복씨의 아버지인 우재욱씨가 유서를 써 놓고 스토리 사격장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논으로 쫓아 갔다. 그리고 그 노인네를 붙들고 설득을 했다. '여기서 죽으면 어떤 것이 해결되겠는가. 땅을 주기로 다 돼 있으니까…' 그래서 노인네가 자살 생각을 접었다."
 
- 사건 두 달 후 지금 심경은?
"그 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절대로 타협은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정부가, 주한미군이 어떻게 해 주겠다, 조금만 참으라'는 얘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 타협은 없고 정면 돌파만이 문제의 해결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 이제 사진운동가로서 다시 현장 활동을 재개하는 것인가?
"그렇다. 얼마 전에 일본 다나까와 현에서 반미군기지운동을 하는 의원단과 시민대표 13명이 한국을 방문해 스토리 사격장 등을 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31일 스토리사격장과 여중생 추모비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우리가 보기엔 스토리 사격장과 여중생 사건은 부끄러운 일인데 남의 나라 사람들이 사격장을 견학하고, 여중생을 추모한다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민주노동당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찾아올 곳이 여기(여중생 추모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아쉽다. 광주 망월동, 전태일 묘지를 찾았지만 여중생 추모비에는 오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여중생 사건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싸워 왔는데 의원 전원이 여중생 추모비에 추모를 했으면 미국이 여중생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압박을 받게 되지 않았겠는가? 4·15 총선 끝나고 6·13 추모기였는데 시위 현장에서 시위하는 것보다 엄청난 의미가 있었는데 아쉬웠다."

- 스토리 사격장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스토리 사격장이 민통선 안에 있다는 자체가 정치적인 문제이다. 면책 특권이 있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이 문제를 거론해 줘야 한다. 미군과 국방부에서는 '군인이 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장소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단지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전략적 기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훈련장이라고 하면 다른 곳에서 훈련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부분까지 몰아가면 대답이 나올 수 있다."

- 대안이 있는가.
"민통선의 스토리 사격장을 폐쇄하고, 한국군 훈련장에서 차라리 병합 훈련을 해라. 이게 대안이다. 다그마노스 훈련장도 마찬가지다. 한국군 전차훈련장이 있다. 다그마노스 훈련장을 폐쇄하고 한국군 훈련장에서 훈련하면 된다. 현재 무건리 한국군 훈련장에서 마을을 재수용하고 미군이 훈련을 하고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도 무건리사격장에서 미군이 훈련하다 이동하다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군 훈련장에서 한국군도 훈련하고 미군이 훈련하면 공여지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군이 나와서 한국군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훈련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미군은 너무 방만하게 훈련하고 있다."

ⓒ 이준희
- 미군 사진을 주로 찍어 왔는데 왜 미군 문제에 주목하는가.
"미군에 대해 단순하게 이러 이러한 일을 저지르니까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땅에서 50년간 미군과 같이 살아 왔다. 나는 미군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훈련장에 찾아갔다가 깡통을 제대로 놓지 않았다고 해서 맞아 죽었고, 내 친구 여동생이 집단 강간 당해 정신병자가 된 사건도 있다. 내가 살아온 과정 하나 하나가 미군과 얽혀 있다.

우리 아버지는 여중생을 깔아 죽인 부대의 종업원으로 수십년간 일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는 미군으로부터의 우리 가정의 생계가 유지됐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를 원하는 것은 미군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한국민을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이 이 땅에 와 한국민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한국민에 대한 인격적 예우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도) 사과를 하면 실수가 된다. 하지만, 경기 북부에서 일어난 미군 범죄에 대해 항상 정당했고 공무 중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한국 국민으로서 미군들로부터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싶다. 오만한 자세로 국민을 대하는 것에 대해 나는 침묵할 수 없고, 침묵한다는 것은 이 땅의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 미국에서 작품을 전시하는데, 어떤 내용인가.
"PS1 갤러리에 40점 정도를 보낼 계획이다. 일본에서는 탱크나 훈련장 피해 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환경 문제를 더하려고 한다. 기지 반환이 이뤄지겠지만 소파 규정에는 원인자 부담 원칙을 배제하고 있다. 판문점 보니파스 경비대가 분뇨를 정화하지 않고 임진강으로 흘려 보낸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 파주 캠프 하우TM 쪽에서 3m 깊이로 기름이 오염돼 있다. 기지 밖에 있는 것만 해도 복귀 비용만 50억 정도다. 부대 안까지 한다면 100억 정도 든다. 소파 개정 없이 반환됐을 때 매우 위험하다. 미군들이 오염시켰으니까 복구 비용을 내놓든지 해야 한다. 각 국의 나라가 미군 주둔을 싫어하고 왜 반대하는지 환경 측면에서 보여 주려고 한다."

-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중립은 양 쪽의 힘의 균형이 엇비슷했을 때 작용을 하지만, 점령된, 압박된 상태에서 중립의 가치는 허구다. '사진가'는 '사진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사진운동가는 지금의 현실이 동등한 위치로 될 때까지는 유지돼야 한다. 그 이후에 나는 사진가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사진 운동가라는 이름을 갖고 투쟁적인 사진을 할 것이다. "

- 국민들 사이에서 미군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크게 엇갈리고 있는데.
"동두천, 의정부가 미군기지 반환되니까 이전 반대 운동하고 있는데 지금 동두천 상인들은 전체적인 지역 발전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민족사의 비극 속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정부가 '기지촌지원특별법'을 만들어 육성을 해 줘야 한다. 미군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그것을 매개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미군이 떠나는 상태에서는 정치권들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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