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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찌는 듯한 더위 속에 강재예(73)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보리쌀을 씻어 밥솥에 올리고 야채를 썰어 된장찌개와 밑반찬을 준비한다. 여느 식당 안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대전 문창동의 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노점상이지만 다른 노점상에 비해 품목이 이색적이다. 바로 보리밥을 파는 곳이기 때문. 이 집의 보리밥을 먹기 위해서는 작은 의자를 놓고 길가에 앉아야 하는 등 다소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강 할머니가 이곳에서 보리밥을 팔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째. 5~6년 전부터 이곳 시장에서 둥지를 튼 후 모자, 부침개 등을 파는 노점을 했지만 돈벌이가 수월찮았다. 힘겨워 하는 강 할머니를 위해 시장 사람들이 권한 것이 “밥 장사를 하라”는 것. 그러면서 자신들이 “먹어주겠다”고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할머니가 준비하는 점심은 보리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콩나물 무침, 겉절이 등 그야말로 시골밥상. 이곳에서 보리밥을 먹고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 사람들이거나 동네 사람들이다.

“동네 인심덕으로 살아갑니다. 이 더운 날 시원하고 좋은 곳에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하지 누가 이런 데서 밥을 먹으려고 하겠어요. 한 그릇이라도 팔아주려고 왔다며 일부러 찾아와서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저 고마울 뿐이죠.”

ⓒ 권윤영
할머니는 오전 10시에 나와 점심 준비를 시작해 오후 4시에 집에 귀가한다. 노환으로 불편한 몸이지만 궂은 날 외에는 하루도 장사를 거르지 않는다. 자신이 나오지 않으면 걱정하고, 더위 속에서도 찾아와 식사를 하는 동네 사람들을 생각해서다.

때로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고, 반찬거리를 가져다주거나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 신문폐지 등을 모아다 가져다주는 고마운 동네사람들….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강 할머니에게는 자식 4형제가 있지만 모두 형편이 어렵다. 항상 고단하기만 했던 살림살이로 인해 지금껏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라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현재는 큰 아들이 맡기고 간 손자 두 명과 살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힘들었던 강 할머니에게는 아이들이 굶지 않고, 자신의 약값을 벌 수 있는 지금의 삶이 가장 행복하단다.

“지금은 천국이지요. 전에는 보따리 장사는 물론, 벽돌 지고 건축가를 따라다니며 일을 하기도 하고 페인트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환갑이 넘어서 하기에는 힘도 들었지만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것도 고역이었어요.”

ⓒ 권윤영
이렇게 자리를 정해서 장사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삶이 즐거운 강 할머니. 그렇기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하겠다는 동장의 말을 일언지하 거절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해주라면서.

“지금도 동네 사람들한테 신세지고 사는데 그런 도움까지 받지 않아도 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장성한 자식들이 있고, 72세까지 사글세를 살다가 이젠 내 집도 있는 걸요. 차비로 나오는 노인연금 3만원도 얼마나 고마운지….”

한 그릇에 2천원 하는 보리밥이 팔리는 숫자는 하루 20그릇 정도. 후한 인심덕에 재료값을 제외하면 2만원 남짓한 돈이 매상의 전부다. 그래도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는 강 할머니가 뜨거운 불 앞에서 주걱으로 보리밥을 정성껏 살피면서 한 마디를 던진다.

“이 한 그릇 팔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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