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설거지를 하고 있는 김 위원장
설거지를 하고 있는 김 위원장 ⓒ 인권위 김윤섭
할머니와 마주 앉아 인사를 나누고 방 안을 둘러보다가 또 하나의 벽시계를 발견하고는 한 동안 그 시계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그 벽시계의 시간은 10시 10분 전이었고 그 집을 나올 때까지 혹시나 하고 몇 번이나 다시 쳐다보았지만 시계바늘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약 30분 후 집안 청소를 해줄 목적으로 찾아간 50대 아저씨 혼자 살고 있는 집에 들어서면서도 내 시선은 시계를 찾고 있었다. 방 한구석에 팽개치듯 놓여 있는 조그마한 탁상시계는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개수대에는 음식물 찌꺼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식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혼자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아저씨는 식기를 씻을 힘도 없기에 그 식기들은 식사 때만 찾아와 도와주는 아줌마(?)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식기를 닦으면서도 정지된 시계바늘들의 영상은 계속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1년 6개월 후면 모두 철거될 900여 가구가 밀집된 '마지막 달동네'에는 100여 가구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70세 할머니도, 50대 아저씨도 정부가 주는 최저생계비만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처지라서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일까. 조그마한 공간에 시간과는 무관한 시계를 3개나 배치해 놓은 할머니의 뜻은 무엇일까.

쉼터를 방문한 김 위원장
쉼터를 방문한 김 위원장 ⓒ 인권위 김윤섭
그들에게서는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망이 없는 삶은 바로 '시간이 정지된 삶'이 아니겠는가. 시계바늘이 멈추어선 그 시계들은 그들의 희망도 함께 정지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계바늘들이 다시 움직이게 하고, 그들에게 아주 작은 희망과 소박한 꿈이라도 갖게 해주는 길은 없을까.

우리는 빈곤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문제도 그렇듯이 '복지' 문제로만 접근하기보다는 '인권'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즉, 생명권을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헌법상 의무를 지고 있으므로(헌법 제10조), 빈곤 문제도 정부의 시혜 내지는 복지의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생명권 보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저생계비를 몇 퍼센트 인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시혜 내지는 복지 차원의 소극적 접근방법이라 한다면,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빈곤층의 생명권을 국가가 어떻게 보장해주어야 하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인권차원의 적극적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적극적 접근만이 빈곤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 인권위 김윤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