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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최초로 처벌받은 정치 패러디 작가 신상민(26)씨가 활동중인 '아마추어 패러디 작가연대'.
ⓒ 아패연 제공

닉네임 '하얀 쪽배'로 유명한 정치 패러디 작가 신상민(26·대학생)씨. 그는 22일 법원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정치 패러디 작가가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처벌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신씨는 지난 17대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등에 20여점의 패러디 작품을 게재한 혐의로 2월 불구속 기소됐다. 신씨의 작품은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주요 야당 정치인이 희화화된 채 등장해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을 야기했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병운 부장판사)는 22일 판결문에서 "신씨의 패러디물 대부분이 특정 정당 의원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패러디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풍자·해학·악의를 넘어섰다"며 "피고인은 이를 통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신씨의 작품이 국민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려 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벌금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 지난 총선 직전 특정 정당 정치인에 대한 '희화화'로 논란을 일으켰던 신씨의 패러디 작품
ⓒ 신상민
이러한 재판부 결정에 대해 신씨는 2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의 결정은 현행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없이 선거법의 유·무죄만을 따진 것"이라고 반발하고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씨는 "패러디 작품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애매하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결국 이와 같은 무리한 법 적용이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노 대통령과 야당 대표에 대한 패러디물에 대해 신씨는 "작금의 논란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라기 보다는 당리당략적인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 이를 두고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호들갑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씨는 "패러디의 급신장으로 기존의 정치풍토가 상당부분 개선됐다고 생각한다"며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들은 당연히 패러디를 규제하고 싶은 유혹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네티즌들의 보다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주문하기도 했다.

다음은 신씨와 가진 인터뷰 일문일답. 신씨는 얼굴 사진을 찍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패러디의 대상은 당연히 패러디를 규제하고 싶을 것"

- 이번 법원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항소할 예정이다. 벌금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패러디 표현물이 유죄라는 게 문제다. 현행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은 간과한 채 패러디 표현물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 되는지 여부만을 판단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다. 이러한 점을 항소 이유를 밝히는데 최대한 반영할 것이다."

- 다른 대응방안도 준비하고 있나.
"법원 판결을 '패러디'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중이다. 주위에서는 법원 결정 자체를 '패러디'하면 사법부 권위에 도전한다는 인상을 줘 항소심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리지만, 법원의 결정이라도 패러디 대상이 된다면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주위 분들과는 주말 쯤 논의를 거쳐 연대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 신상민
- 이번 판결을 놓고 패러디 표현의 한계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 자체에 너무도 길들여져 왔다. 비단 패러디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표현물을 놓고 '이것까지 허용하면 세상 다 뒤집어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떨어 왔다.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이다. 왜 거기에 범죄 여부를 따지는 잣대를 들이대나. 행여 어떤 작품이 개인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한다는 논란이 있다면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떤 예술행위와 작품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판단 자체를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패러디만의 문제가 아니다."

- 특히 선거법 위반이 문제가 됐는데.
"패러디 표현 한계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만약 선거에서 상대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패러디를 제작·배포해도 처벌할 수 없느냐'고 반문할 거다. 하지만 내가 제기하는 문제점은 현행 선거법이 '과도하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그 적용에 있어서도 '자의적인' 적용을 한다는데 있다.

현행 선거법에는 선거 180일 전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을 상당 부분 제한한다. 그리고 그 처벌에 있어서도 왜 이 작품은 처벌대상이 되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은지 기준도 애매하다. 이걸 고쳐야 한다. 법적인 표현의 한계를 정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작가, 법률가 등 전문가가 참여해 논의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오프라인 시대의 법률로 온라인 시대를 무리하게 재단해서는 안 된다."

"애매하고 자의적인 법 적용 우려... 누구나 해당될 수도"

ⓒ 신상민
- 무리한 법 적용을 지적하는 건가.
"이번 판결을 보면 내 패러디 작품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무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 때문에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인데, 어떻게 그런 애매한 기준을 적용하나.

법원의 판단은 패러디 작품이 실제로 어느 정도 퍼져나갔는지, 그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 네티즌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 유독 패러디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폭발적 영향력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패러디는 기본적으로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패러디 하나로 사안의 본질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게 하는 게 패러디의 묘미이다. 패러디는 새로운 촌철살인의 미학이다.

그러다보니 정치인들로서는 자신의 한 마디, 한 행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패러디의 급신장이 정치풍토를 바꾸는데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처럼 당리당략적으로 정치를 하면 당장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패러디를 규제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겠나."

- 최근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대표, 일부 장관 등을 패러디한 작품을 두고 국가원수 모독, 여성 비하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패러디에는 작가의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라 사회를 보는 시각이 녹아들 수 밖에 없다. 해당 작품의 경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란은 패러디 표현 자체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 진행되는 것 같다.

야당 대표의 패러디의 경우, 청와대 직원이 그것을 첫 화면에 올려놓은 것은 논란이 되겠지만, 그 야당에서 과연 '여성 비하적인' 패러디라고 주장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평소 소속 의원들의 여성 비하적인 언행들로 문제를 일으켰던 당이 해당 작품을 놓고 '여성 비하' 운운하니 진정성이 의심되는 것 아닌가. 패러디 작품이 문제되는 게 아니라 그 작품을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문제가 더 크다."

"패러디 표현보다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이 더 문제"

▲ 신씨가 활동중인 아패연(www.bangbup.com) 홈페이지 첫 화면
ⓒ 아패연 캡쳐 화면

-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국회의원의 권위의식을 꼬집었던 '물은 셀프', 국민의 혈세를 갖다 부어도 나아지지 않는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했던 '병렬연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병렬연결'이란 한국 정치의 발전 수준을 전지의 연결 방식에 따른 전구 밝기를 빗댄 표현으로,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병렬연결 아닌 직렬연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최근 작품 활동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졸속 버스교통체계 개편을 비꼰 패러디를 만들었다. 최근 소송 등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꾸준히 활동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패러디 작가 역시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 독자들에게 부탁 내지 당부의 말을 남기면?
"패러디 작품이 처벌받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하나하나 규제받기 시작하면 결국 인터넷 상의 표현 모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같이 나서서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네티즌 1100여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입건됐다고 한다.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니다. 18대 총선에서는 이러한 불합리한 선거법으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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