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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씨에 의해 토막살해된 여성들의 사체들이 발굴된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부근 계곡에서 19일 오후 한 시민이 숨진 이들을 추모하며 숨진 이들과 같은 수의 벽돌을 세워 놓고 분향한 뒤 절을 하고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에 의해 토막살해된 여성들의 사체들이 발굴된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부근 계곡에서 19일 오후 한 시민이 숨진 이들을 추모하며 숨진 이들과 같은 수의 벽돌을 세워 놓고 분향한 뒤 절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장면 1. 봉원사 신도들
"왜 엊그제도 사람이 보자기에 덮여 산에서 내려왔데."
"아녀! 그건 권씨 아저씨가 술 먹고 나자빠진 거랴."

#장면 2. 동네 슈퍼 아주머니들
"그 사람이 엄씨네 집 뒤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간 거래."
"세상에! 난 이토록 이 동네 살면서 거기 계단있는 것도 모르고 살았네."

연쇄살인 용의자 유영철(34)씨가 살해한 사체 10구가 발굴된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은 다음날인 19일에도 뒤숭숭했다. 사체 발견 현장은 경찰이 쳐놓은 노란색 폴리스라인만을 제외하면 어제의 끔찍했던 기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있었다.

19일 발굴 현장 바로 앞에서 만난 공사장 관계자 전흥영(52)씨는 "간밤에 어제 본 일이 자꾸 떠올라 못내 마음에 밟혀 어쩔 수가 없었다"며 공사장 벽돌 11개로 위패를 마련하고 종이컵에 막걸리를 정성껏 부었다.

전씨는 "이 공사장을 방치해 이런 피해를 입은 것 같아서 죄송하다"며 "오늘 아침에 다시 왔는데 물 한잔 가져다 놓은 사람이 없어서 밑에 내려가 막걸리를 사왔다"고 말했다. 전씨는 "계곡과 가깝기 때문에 땅을 파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을 고른 것 보니 머리가 좋은 것 같다"며 유씨의 치밀한 범행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바로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이 동네 토박이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6.25때는 저 산에서 무지하게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무섭냐"며 "사실 이사를 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푸념을 늘어놨다.

노인들은 "열린우리당이 사형 폐지를 한다더니 쏙 들어가 버리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사람을 죽여도, 안 죽인다고 (사형 폐지하면) 하면 더 죽이려고 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인들은 "금전 때문도 아니고, 여자 욕심도 아니고 불우한 사정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봉원사 신도들은 앞으로 절을 올라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목에 사체가 유기되어 있었다는 것이 꽤나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절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신도 4명은 "저기가 거기"라며 폴리스라인이 쳐진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한 여신도는 "어제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 보니 머리가 쭈뼛 선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른 신도들도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말했다. 신도들은 "여긴 외지라 새벽이면 인적이 뚝 끊긴다"며 "절에서 제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사를 위해 현장을 자주 찾는다는 남성들은 "저 자리에서 자장면 시켜먹고 했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 곳에서 그걸 먹었다"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다른 공사장 관계자는 기자를 찾아와 "공사에 차질이 생기니 보도를 하면서 건물은 노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동네 슈퍼엔 부녀자 3명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어제 갑자기 어떤 기자가 오더니 사체 유기 현장이 어디냐고 물어 깜짝 놀라 TV를 켜보니 우리 동네가 나오고 있어 너무 놀랐다"며 "싸움 한 건 없는 조용한 동네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라고 말하면서 한숨쉬었다.

슈퍼 주인은 "간혹 밤이면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찾아와 '가게는 언제까지 하느냐', '버스는 언제 끊기느냐'를 물어보곤 했는데 어제 일을 접하고 혹시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살인범이 아니었나 싶어 떨린다"고 말했다.

다른 아주머니 역시 "집에 가려면 거기를 지나가야하는데 어떻게 지나가야 하느냐"며 "정말 굿이라도 지내야 할 판"이라고 울상 지었다.

사체들이 발굴된 현장에는 노란색 경찰통제선만 있을 뿐 끔찍한 현장이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사체들이 발굴된 현장에는 노란색 경찰통제선만 있을 뿐 끔찍한 현장이라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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