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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강소는 미술작업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갈구하는것이다
작가 이강소는 미술작업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갈구하는것이다
1975년 드파리비엔날레는 한국의 미술가가 시도한 새로운 설치 미술에 흠뻑 매료됐다.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뿌려 놓고 그 중간에 말뚝을 설치한 다음 살아 있는 닭을 묶어 놓은 것이다. 닭은 전시 기간 내내 밀가루 위를 다니며 자신의 흔적을 유감없이(?) 남겨 놓았다. 밀가루 위가 캔버스였고, 닭은 캔버스에 그간의 삶의 정적을 깨트리며 발자국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꾹꾹 새겨 놓았던 것.

작가 이강소(51)는 어쩌면 닭이 자신이고 닭의 행위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캔버스를 통해 자유를 표현하기 원했는지도 모른다. 이 설치미술로 그는 당시 프랑스 국영방송에까지 출연하며 주목받는 젊은 작가 대열에 서게 됐다.

대구 태생인 그가 미술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부와 아버지가 한학자이면서 서예와 문인화에 조예가 깊었고 삼촌 또한 문인화를 즐겨 그렸다고 한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별 고민 없이 미술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미술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

그는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설치 작업에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설치 작업은 남달랐으며 너무나 독특하고 세인들에게는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낙동강에서 들었던 갈대의 서걱거림을 떠올리며 낙동강에 가서 직접 갈대를 베어 와 시멘트에 갈대를 심거나, 밀가루 위에 오리를 올려 놓고 오리가 찍어 가는 흰 발자국을 그대로 놔두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닭을 이용한 그의 작품
닭을 이용한 그의 작품 ⓒ 이강소
지금까지도 미술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은 그만의 파격을 알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명동화랑에서 가진 그의 개인전에는 어떠한 작품도 걸려 있지 않았으며 다만 그 곳에는 허름한 선술집에서 사온 낡은 탁자와 의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전시장에 온 관람객들은 1되에 100원 하는 막걸리를 사서 마시며 스스로가 설치 미술품이 되었다. 어떤 이는 곤혹스러웠을 것이고 어떤 이는 대단한 즐거움을 느끼며 자신 스스로가 설치된 기분에 들떴을 것이다.

작가는 그 탁자와 의자에서 수없이 거쳐 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삶의 서글픔을 토해 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술 한 잔에 행복의 순간을 게워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탁자는 단순히 탁자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인간 군상의 때절임이자 삶의 괘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들을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소통을 이루게 하는 것을 그는 꿈꿨을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무의미한 것이며 탁자와 의자가 그 소통의 설렘과 기쁨을 맛보는 것임을 작가는 감지하고 있었으리라.

설치 작업에 주력해 온 그가 본격적으로 평면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부터다. 그리고 싶은 욕망은 있었으나 형식에 매였던 70년대의 평면 작업의 흐름을 과감히 떨쳐 내고 싶었다는 그는 자신의 모든 작업을 캔버스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붓을 들었다.

오리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이다
오리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이다 ⓒ 이강소
여러 과정의 작업을 거치면서 80년대 중반 이후 오리와 사슴, 배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의 오리는 세밀화된 오리가 아니라 마치 사인을 하듯 터치된 오리였으며 멀리 희미하게 실루엣만 처리한 사슴이었고 정적이 감도는 빈 배였다.

그러나 결코 앙상하지 않고 결코 정박되지 않은 느낌의 소재들은 긴장된 이전의 속도와 활동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갖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완전히 멈춘 것도 아니며 갈 길을 새롭게 준비하기 위한 박동이 느껴지는 모습이며 어쩌면 캔버스 밖을 지나 진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동작일 수도 있다.

그가 오리와 사슴을 작품의 주 모티브로 잡은 것은 대학 시절 창경원에서 본 동물들의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추운 겨울, 과천 동물원에서 본 생동하는 오리들을 보면서 살아있는, 생동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바탕으로 까는 회색 빛은 세상과 이상과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색채이지만 주어진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오리는 오리가 가지는 모양의 리듬과 살아있음의 생동감, 그의 붓놀림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은유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서구 미술에 너무 빠져 있어

그는 요즘 젊은 미술학도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 달라는 질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충고를 했다.

"젊은이들이 서구 미술에 빠져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전통은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합니다.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근법적 관습에서 빠져 있는 것은 작가로서 몰개성적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자기 생각을 작품 속에 뿜어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이를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서구 미술계 일각에서는 동아시아 미술을 서구 현대 미술의 대안과 출구로 제기하기도 한단다. 더욱이 동아시아 미술 중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한국 미술은 전통의 맥을 짚어 작품과 연결시킨다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아주 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배워온 서구 미술에 대한 빚갚음이며 동시에 동아시아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작업일 수 있다는 그는 요즘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파격적인 작품과는 정반대로 작업을 할 때 욕심을 내지 않는다.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 비로소 원하는 작품이 나온다고 한다. 파격은 행위의 파격이 아니라 머무르지 않고 미술작업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변화의 모습인 것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순발력과 기억력이 지속되고 작업을 하다가 조용히 잠드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면 한다는 작가 이강소. 그저 살아있음으로 작업하고 작업함으로써 살아있음에 만족한다는 그에게서 자신의 삶과 행동 반경이 모두 캔버스이자 작품 세계임을 알 수 있었다.

설치 미술과 조각, 회화, 판화, 영상에 이어 사진 작업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작품을 펼쳐가는 그는 현재 안성의 작업실에서 9월에 있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아트피아에 전시할 작품과 겨울 뉴욕에서의 전시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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