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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연
눅눅한 장마에 이어질 찌는 듯한 더위. 공포영화와 괴담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러나, 여름을 넘길 방법이 이뿐이라면 얼마나 쓸쓸할까? '보다 세련되고 더불어 정신적 양식과 지식까지 쌓을 수 있는 여름나기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있다.

나도향과 이기영, 이상과 최서해에 이르는 근대작가에서부터, 장정일과 최인석, 김영하와 김별아 등 현대작가들의 소설 중 '환상'과 '몽환'을 다룬 작품들만을 모은 <환상소설첩>(향연·전2권)이 출간된 것.

리얼리즘이 본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문단 풍토에서 '모던하면서도 다소 기이한' 작품들만을 골라 뽑아 묶은 기획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책의 말미에 붙은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의 해설에서는 협량한 폭으로만 한국문학을 재단해온 기존 관행이 깨어지는 통쾌함까지 맛볼 수 있다.

20여 편의 수록작 중 기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이기영의 '쥐 이야기'와 이평재의 '푸른고리문어와의 섹스'. 1930년대에도 엄연했던 빈부격차와 천민 자본주의의 폐해를 쥐의 눈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이기영의 작품은 유고의 영화명장 에밀 쿠스트리차의 '환상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할만큼 세련돼 있다. 그가 왜 월북해서도 최고 '문인'으로 대접받았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능란하게 구사했던 '미니멀리즘'의 향취가 듬뿍 묻어나는 이평재의 작품은 절대적 진리와 완벽한 명제가 존재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다. 그가 비판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섹스와 소통부재의 역겨움. <환상소설첩>이라는 제목에 값하는 소설이다.

김별아가 '삭매와 자미'를 통해 전해주는 비교대상이 없는 '생경한 가슴떨림'도 너끈히 더위를 내칠만하다. 앞으로도 백년은 다시 만나기 힘든 역작 이상의 '날개'를 다시 읽는 재미야 더 말해 무엇하리.

생활에 이어 이젠 사랑도 '웰빙 시대'?
- 이병무의 <미스터 아플의 웰빙러브>


ⓒ 당그래
2004년 한국은 그야말로 '웰빙 열풍'이 지배하고 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놀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것을 먹고, 술이 아닌 건강음료를 마시고, 방바닥에 배를 대고 쉴 것이 아니라 헬스클럽의 런닝머신 위에 올라 뛰고 또, 뛰라는 '웰빙'의 요구들.

하지만 글쎄. 외형적 삶만 건강해진다고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KBS 지구탐험대'와 '신비의 해마공부법' 등을 제작한 바 있는 만화가 이병무의 <미스터 아플의 웰빙러브>(당그래)는 위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정신적 삶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가장 큰 잣대 사랑 역시 웰빙의 대상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갈등과 반목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보여준 다음 문제해결의 방법을 제시하는 <...웰빙러브>에서는 만화가 가진 특유의 재미와 더해 이병무의 톡톡 튀는 맛깔스런 글 솜씨까지 고루 맛볼 수 있다. 하긴 편식을 하지 않는 것도 '웰빙'의 하나다.

'남성다워야 한다' 혹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청춘남녀들, 연애가 지지부진한 연인들, 예전처럼 남편과 아내가 예뻐 보이지 않는 중년들까지 고루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유쾌한 만화다.

<토지>의 작가, 이땅 모든 생명을 토닥이다
- 박경리 에세이 <생명의 아픔>


ⓒ 이룸
어떤 남성작가도 쉬이 가 닿지 못했던 '장엄한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인간의 이야기를 장중한 문장에 실어냈던 박경리.

그의 근저 <생명의 아픔>(이룸)에서는 "횃대 위에 앉아 가슴 저미는 울음으로 사람을 맞는 꾀고리(문학평론가 정현기의 해설 중 한 대목)"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문장을 악기처럼 다루는 능란한 재주에 이른 박경리. 절정에 이른 노작가의 글 한줄, 한줄은 이미 사막처럼 말라버린 기자의 가슴을 넉넉하게 적셔줬다.

일제시대를 '불행'으로 부르는 진짜 이유가 민족공동체의 근거인 땅과 생명을 수탈 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쉽사리 물든 서양사상이 이성의 바깥에서 인간을 존재케 하는 감성이라는 동양사상을 절멸시켰다는 박경리의 주장은 그와 유사한 말이 입에 발린 환경론자들의 클리쉐가 아닌 탓에 울림이 크다.

"인간 위주의 좁은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거론할 것인가, 범생명적인 차원에서 환경문제를 보다 확대할 것인가"를 준엄하게 묻는 <토지>의 작가. 이 진술의 진정성은 그의 사위이자 시인인 김지하의 '생명론'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땅과 생명을 고민케 한다.

'들국화'는 우리에게 또는, 시대에게 무엇이었나?
- 이해경 장편소설 <머리에 꽃을>


ⓒ 문학동네
'누구는 누구를 낳고, 또 다른 누구는 누구를 낳고...'로 이어지는 잉태의 연대기가 비단 성경(聖經)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어떤 인간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하여, <가위손>과 <빅 피쉬>의 감독 팀 버튼은 "만약 짐 모리슨(60년대 미국 록밴드 '도어즈'의 보컬)이 없었다면 나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라 고백한 바 있고, 팀 버튼의 존경을 받는 짐 모리슨 또한 "니체는 나를 음악으로 이끌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쓸쓸한 아니, 쓸쓸할 수밖에 없었던 80년대. 그 암흑의 한 복판을 지나온 언필칭 '386세대 작가' 이해경의 <머리에 꽃을>(문학동네)은 작가가 흠모와 사랑을 바친 '들국화'(전인권이 보컬로 활약했던 록그룹)를 향한 애끓는 자기고백으로 읽힌다.

카투사로 복무하던 시절 만난 인디언의 후예 '코디어'와 코스모스처럼 심약한 영혼을 지닌 탓에 냉혹한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凍死)한 '임기' 그리고, 작품의 화자인 '상현'으로 하여금 끝끝내 연민의 감정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여인 '연기'를 통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예기치 못한 수렁이 있는가를 담담히 읊조리는 <머리에 꽃을>. 아름다웠지만 불행했던 그들의 영혼 곁엔 언제나 '들국화'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그토록 단단하다고 생각하던 '삶'과 '세상'이 기실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인지를 들국화의 피아노 연주처럼 들려주는 이해경. 등단 3년차의 풋내기지만 그의 문학적 미래를 낙관하는 독자가 비단 기자만은 아니리라.

한줄, 그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유재현 소설 <시하눅빌 스토리>(창비)
캄보디아와 한국.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어디에 발 딛고 살건 왜 인간이란 약한 동시에 악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공학도의 드라이한 문장이 가슴을 치는 생경한 경험.

김완준의 <단돈 50만원으로 해외에서 귀족처럼 살다오기>(디드로)
베트남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태국. 동남아 어디를 가더라도 50만원이면 행복한 여행을 맛볼 수 있다. 단, 철저한 사전정보 인지가 선결요건!

무라카미 류의 <2데이즈 4걸>(이가서)
'이틀 동안 4명의 여자와 섹스하는 방법'이란 카피만 읽고 덤빈다면 실망할 소설. 그러나, 무라카미 류의 세상읽기 방식을 어렴풋이 나마 아는 독자라면 무릎을 칠 것이다.

피레르 앙드레 테르지앙의 <분노의 세월>(해냄)
<태백산맥> <한강>과 함께 조정래의 대하역사소설 3부작인 <아리랑>을 희곡으로 만나는 기쁨. 역사란 우리에게 아니,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마틴 스미스의 <존 콜트레인>(책갈피)
자그마치 20분 동안의 황홀한 즉흥연주를 보여주는 재즈 역사상 최고의 연주자 존 콜트레인. 과연 무엇이 흑인인 그를 백인의 영웅으로 만들었을까?

<떠나요 제주로>(랜더하우스 중앙)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의 젊은 기자들은 제주도에서 무엇을 보고 왔을까? 백 번을 가도 질리지 않을 섬 제주. 바로 그 제주 곳곳에 숨겨진 휘황한 풍광과 만나는 기쁨이 있다.

김우창과의 대화 <행동과 사유>(생각의 나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평론가 김우창. 그는 영민한 후배 고종석, 권혁범, 여건종, 윤평중과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끊임없이 자극되는 지적 호기심.

박수연 평론집 <문학들>(실천문학사)
자끄 라캉 분석의 세련됨에서부터 친일문학에 대한 냉철한 해석까지.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 박수연의 첫 평론집. /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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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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